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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다시 온 70대 복서와 10대 소년, 아쉬운 이질감

등록 2021.12.20 17: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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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전블루 소극장 2인극 '복서와 소년' 26일까지

[서울=뉴시스]지난 2012년 초연된 연극 '더 복서' 공연 사진. (사진=극단 학전 제공) 2021.12.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지난 2012년 초연된 연극 '더 복서' 공연 사진. (사진=극단 학전 제공) 2021.12.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싸우면 질 수도 있지만, 싸워보지도 않으면 벌써 지는 거야."

70대 후반의 전직 복서 '붉은 사자'는 10대 고등학생 '셔틀'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 말은 어느새 인생의 뒷길에 접어들고 있는 자신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하다.

극단 학전의 연극 '복서와 소년'은 70대 노인과 10대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2인극이다. 독일 청소년 연극상을 받은 '복서의 마음(Das Herz eines Boxers)'이 원작으로, 학전 김민기 대표가 한국적 정서로 새로이 번안·각색한 작품이다. 지난 2012년 초연 당시 '더 복서' 제목으로 공연했으며, 2014년 이후 7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극은 노인과 소년이 세대를 뛰어넘어 서로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이야기를 그린다. 월남전을 경험한 70대와 랩에 빠진 10대, 서로의 언어와 세계가 너무 다른 두 사람의 세대 간극은 크지만 모두 사회적으로 결핍되고 외로운 이들이다.

셔틀은 강한 척 하지만 학교에서 힘이 없는 약자다. 가정도 그의 단단한 울타리가 되기엔 일부분 허물어져 있다. 그는 자신이 하지 않은 잘못을 대신 뒤집어쓰고 요양원으로 사회봉사를 하러 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장 후미진 곳, 장례식장 바로 앞 창고였던 허름한 독방에 살고 있는 70대 노인을 만나게 된다.
[서울=뉴시스]연극 '복서와 소년' 공연 연습 사진. (사진=극단 학전 제공) 2021.12.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연극 '복서와 소년' 공연 연습 사진. (사진=극단 학전 제공) 2021.12.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노인 앞이기에 소년은 한풀이하듯 센 척하며 속내를 쏟아낸다. 하지만 사실 의지할 곳 없는 노인은 일부러 온몸을 떨며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척했던 것. 두 사람은 누구에게도 말 못 하는 자신들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면서 벽을 허물고 천천히 그들만의 우정을 쌓게 된다.

소년은 노인이 지니고 있던 오래된 신문을 통해 그가 전직 복싱 챔피언 붉은 사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권투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붉은 사자는 싸워보지도 않고 물러나는 건 이미 진 것이라며 그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운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짝사랑하는 누나와의 관계에서도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북돋아 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방적이지 않다. 어른만이 아이를 구원하는 것은 아니다. 극 후반에는 붉은 사자가 요양원을 떠나려다가 오히려 용기를 잃고 어둠 속에 주저앉게 된다. "사자 우리 안에 스스로 들어간 늙은 사자"라고 일침을 놓는 소년은 스스로 쳐놓은 사각 링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붉은 사자를 일으켜 세운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극은 소외된 이들이 소통을 통해 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변해가는 모습으로, 희망을 찾고 '함께'의 의미를 되새긴다. 멈춰있는 시간은, 누군가의 관심과 도움으로 다시 흐를 수 있다. 복서는 소년을, 소년은 복서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했고 서로가 갇혀있던 우리를 탈출하게 했다.
[서울=뉴시스]연극 '복서와 소년' 공연 연습 사진. (사진=극단 학전 제공) 2021.12.2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연극 '복서와 소년' 공연 연습 사진. (사진=극단 학전 제공) 2021.12.20.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세월이 흘러도 이 같은 메시지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현재의 시대 변화와 떨어진 캐릭터의 모습이 괴리감을 주는 면이 있다. 아이폰을 쓰고 있지만, 외형이나 말투는 90년대나 2000년대 초에 머무는 듯한 10대 캐릭터는 이질감을 안겨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초연 당시 김민기 대표와 정재일 음악감독의 만남으로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이번 공연에도 영화 '기생충',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 등을 작업한 정재일 감독의 2012년 버전 음악을 그대로 사용했다. 26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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