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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신용 대출 확대하고 빚 탕감…공약 남발에 속타는 금융권

등록 2022.02.06 16:00:00수정 2022.02.07 08: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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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다음달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저신용·저소득층 금융 지원에 초첨을 맞춘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대출규제 강화 등으로 자금줄이 막힌 저소득·저신용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책들이 오히려 취약계층을 금융 절벽으로 내모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경기도에서 시행한 '극저신용대출 사업'을 확대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경기지사 시절 시행했던 극저신용대출은 저신용 도민들에게 이율 1% 대출상품을 최대 300만원까지 최대 5년간 이용할 수 있게 한 정책이다. 시행 첫해인 2020년부터 약 2년여간 총 8만5000여명의 경기도민에 총 917억원의 대출이 나갔다.

이에 앞서 이 후보는 1000만원 이내 자금을 은행 금리(3%) 수준으로 장기간 빌려주는 '청년 기본대출'을 도입하고, 현재 20%인 법정 최고금리를 연 11%대까지 추가로 낮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년 등 생애최초주택 구입자들에게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최대 90%까지 완화해준다는 공약도 내놨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자영업자·소상공인 위기 극복을 위해 초저금리 특례보증 대출 50조원을 추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소액 채무의 경우 자영업자 상각채권 원금 감면율을 현재 70%에서 90%까지 확대한다는 공약도 제시했다. 생애 최초로 주택을 구입하는 신혼부부·청년을 대상 LTV는 80%까지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 차이(예대금리차)를 투명하게 공시하는 등 금융소비자보호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보공개를 통해 대출 차주들의 이자부담을 줄인다는 구상이다. 또 필요시 가산금리 적절성을 검토하고, 담합요소 점검제도도 도입한다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과감한 부채 경감을 통한 저소득 청년층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2020년~2022년 중 저소득층 청년이 받은 생계비 대출 '햇살론 유스'의 이자를 전액 지원하고, 상환 기간을 15년에서 30년으로 늘려 채무상환 부담을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또 21세부터 29세 청년들의 경우 매년 300만원씩 20대가 끝날 때까지 한시적으로 기초자산을 지급하겠다는 '원조 청년기초자산제' 공약도 내놨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생애최초주택구입자, 장기무주택자, 청년들에게 45년 초장기 모기지론을 통해 청년의 내 집 마련을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45년 초장기 모기지론이란 청년,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 장기 무주택자에게 집값의 80%까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를 적용해 45년 간 주택 담보 대출을 지원하는 제도다. 이와 함께 전세로 사는 청년들을 위해 전세금 대출의 원금분할 상환방식 의무화도 폐지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대선을 앞두고 남발되는 포퓰리즘성 공약들에 금융권은 속이 타 들어가고 있다. 극저신용자 대출이나 기본대출, 채무 탕감 등과 같은 정책들이 서민과 취약계층을 배려하기 위한 취지라는 점엔 공감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이 금융권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모럴해저드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능력에 맞게, 갚을 수 있을 만큼만 빌려준다'는 현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에도 역행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대출 관련 공약들을 보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질 수 있겠단 우려가 든다"며 "기본적으로 금리라는 것은 누적된 신용 리스크를 바탕으로 매겨지는 가격인데, 이러한 원리를 다 무시하면 앞으로 가격과 가치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 지 의문이 든다. 오히려 열심히 빚을 갚는 이들만 역차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권은 이러한 금융시장의 질서를 거스르는 공약들에 대한 책임을 결국 금융사들이 지게 될 것이라는 점에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이재명 후보는 "소외계층의 최후 보루는 고리대부업체나 악덕 사채업자가 아닌 국가여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소액일지라도 극저신용자들로부터 대출을 회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1% 저금리로 포장을 했지만 사실상 그냥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이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지게 될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기본적으로 상환 능력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대출한도와 이자율을 정해주는 것이 레버리지의 원리"라며 "이러한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책들이 남발된다면 과연 금융기관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최고금리 추가 인하를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고금리를 계속 인하해주면 소비자 입장에서 좋을 것 같지만 전반적인 생리를 보면 그렇지 않다"며 "저축은행과 대부업체들이 그만큼 리스크를 더 많이 떠안는 것이기 때문에 저신용자들에 대한 대출을 더 줄일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서민 등이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스탠스와 현재 우량 차주들도 대출을 받기 힘든 환경을 감안하면 저신용자 대출 확대와 같은 정책은 난센스로 볼 수 있다"며 "무엇보다 단순히 대출을 해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빌려준 후에 어떻게 회수를 할 것인지, 문제 발생 시 어떻게 메울 것인지 등 사후관리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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