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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서부 르비우 주민들 외지인 러 공작원 의심

등록 2022.04.01 13:18:43수정 2022.04.01 13:4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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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비우 미사일 공격당한 날 공작원 체포되는 등

실제 공작원 다수 침투한 듯…주민들 신고로 전쟁 기여

[르비우=AP/뉴시스]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의 한 건물 입구에 방어용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다. 2022.03.23.

[르비우=AP/뉴시스] 2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의 한 건물 입구에 방어용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다. 2022.03.23.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전선은 주로 수도 키이우와 동부 및 남부 지역에 형성돼 있다. 르비우처럼 서부의 대도시 지역은 거의 러시아군의 공격에서 벗어나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러시아 공작원들의 사보타지 가능성을 크게 걱정한다.

이때문에 동부 지역에서 피난온 사람들에 대한 주민들과 경찰, 국토방위대원들의 의심과 검문이 어느 때보다 민감한 상태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3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서부 대도시 르비우 주민들 사이에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때보다 커져 있다고 보도했다.

배우 겸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발레리예가 키이우의 집을 떠난 우크라이나 서부로 온지 2주만에 현지 경찰의 심문을 받았다.

누군가 그가 시내 광장, 교회 등 곳곳을 사진 찍으며 다닌다고 신고했다. 이들 시설들은 대부분 보호를 위해 모래주머니로 덮여 있는 상태다.

경찰관이 그를 차로 데려가 휴대폰에 찍힌 사진과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을 살펴보고 그가 팔로우하는 텔레그램 채널을 검사했다.

"내가 우크라이나나 러시아를 비방하는 내용이 있는지 밈(meme)까지도 일일이 읽었다"고 했다. 다행이 경찰관들이 러시아의 막강한 선전전을 가리키는, 머리 대신 TV가 그려진 러시아군인들 밈을 발견하고는 그를 풀어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두달째 접어들면서 우크라이나 전역에 마치 안개처럼 의심이 드리워지고 있다. 분노와 단결의 정서 못지 않게 말이다.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디베르산티(dyversanti)"가 주민들 사이에 침투해 혼란과 불신을 일으키고 적군에게 공격 표적을 알려준다는 보도에 경각심을 가져왔다. 디베르산티는 공작원이 반대단체를 뜻한다. 공포 속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이 곳곳에 간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발레리예는 "지금처럼 위험 요인을 찾는데 혈안이 돼 있으면 짐승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면서 상상만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의심은 폴란드 접경 도시 르비우에서 특별히 강하다. 이 도시는 동부 지역과 달리 파괴되지 않고 거의 공격도 받지 않았기에 수많은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피신해 있기 때문이다. 또 폴란드로 가는 피난민들이 거쳐 가는 곳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이곳 인구가 최대 40만명 가량 늘어난 상태다.

르비우 시내에 낯선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현지 주민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전쟁 발발 첫 일주일 동안 경찰서와 관공서에 수상한 신고 접수가 1만7000건이 넘었다고 막심 코비츠키 르비우 지방장관이 밝혔다. 지금은 줄어서 하루 1000건 정도라고 했다.

경찰관과 국토방위군 대원들이 르비우 시내를 정찰하면서 배회하는 차량들을 검문하고 있다. 모든 도시와 마을의 진입로마다 검문소에 배치된 사람들이 증명서를 검사할 수 있도록 허가돼 있다.

르비우에 있는 네오르네상스식 건물 오페라 하우스에선 1,2차 세계대전 동안에도 공연이 계속됐다. 그러나 현재는 오페라 공연을 중단한 상태다. 사보타지 공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라고 바실 보우쿤 오페라 하우스 감독이 밝혔다. 그 대신 공연을 촬영해 공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엔 우크라이나에 대한 비행금지설정을 요청하는 짤막한 발레 공연 영상을 올렸다.

전쟁 발생 첫 한달 동안 우크라이나 정보기관 SBU가 적발한 사보타지 단체가 20곳이 넘으며 350명 이상의 공작원을 체포했다고 아르템 데흐티아렌코 SBU 대변인이 밝혔다.

코지츠키 지방장관은 지난 26일 러시아 미사일이 르비우의 산업시설 2곳을 공격한 당일 텔레그램에 경찰이 의심스러운 차를 검문해 승객 2명의 휴대폰을 조사했으며 우크라이나군의 이동을 담은 동영상과 사진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적이 있다"는 뜻을 가진 eVorog이라는 앱을 통해 신고가 가능하다. 매달 20만건의 신고가 접수되고 있다고 경찰이 밝혔다.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대해 모두가 신경을 곧두세우고 있다. 특히 새로 이곳에 온 사람들에 대해 그렇다. 키이우에서 르비우의 작은 아버지 아파트로 온 IT 전문가 안톤 이바노우도 경찰과 국토방위군의 조사를 받았다. 무장한 군복 차림의 사람들이 매번 같은 질문을 했다.

"신분증을 요구하고 뭐하는 사람이며 어디로 가는지, 왜 이곳에 머물고 있는 지 등등. 누군가 숨기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처럼 질문을 해댔다"고 했다. 

르비우 번호판이 아닌 차가 숲속 마을에 들어선 것을 보고 누군가가 신고했다고 했다. 신분증을 점검한 뒤에는 아무 탈이 없었다.

자갈길이 깔린 한 동네에선 일흔한살의 나탈리아 코우툰은 악당이 폭탄을 설치할까봐 무서워 아파트 지하에 있는 대피소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누군가 이곳에 폭탄을 들여오면 어떻하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않고. 집 전체가 날아갈 걸. 문 자물쇠가 신통치 않아서 부수고 집으로 들어오기 쉬워"라고 이웃에게 말했다.

인근 테르노필 지방에선 두 그룹이 서로를 의심해 경찰에 신고한 일도 있었다.

테르노필 경찰서는 "외지인 두 그룹이 서로를 공작원이라고 의심해 다툰 일이 있었다"고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밝혔다.  한 그룹이 다른 그룹 뒤를 밟았고 뒤를 밟힌 그룹이 경찰에 자신들을 쫓는 사람들이 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테르노필 경찰은 "주민들에게 경고합니다. 마음대로 외지인을 억류 또는 무기로 위협하거나 몸싸움을 해선 안됩니다"라고 썼다.

사람들은 러시아군이 르비우까지 군대를 보낼 순 않았더라도 적들이 수많은 외지인들 사이에 섞여서 침투해 있다고 생각한다.

한 당국자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동부지역에서 8년 동안 싸워왔음을 지적하고 인도지원 봉사자를 위장한 공작원들을 최근 체포했다고 공개했다. "그들이 오랫동안 준비해왔다"고 했다.

밤 10시에 통금이 시작되지만 저녁만 되도 길거리엔 인적이 끊어진다. 러시아가 키이우에서 옮겨온 서방 대사관이나 원조기관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밑도 끝도 없는 경고 메시지가 돌아다닌다.

지역 주민들 가운데도 러시아 협력자가 있다. 키이우 북쪽 루츠크 출신의 한 아마추어 조종사가 러시아 정보기관에 2017년부터 정보를 제공해온 것을 이달초 SBU가 적발해 구금했다. 전쟁 초기 1주일 동안 우크라이나군의 이동상황을 러시아에 알렸다고 했다.

이호르 폴리슈축 루츠크 시장은 "체포된 사람이 시민활동가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격분했다"고 전했다. 그 사람이 체포되면서 스파이에 대한 경계심리가 커졌다고 했다.

SBU는 이바노-프란키우스크와 비니치아에 있는 공항에 대한 러시아군 공격이 공작원들 정보에 따른 것이라고 발표했다.

르비우에선 지난 26일 미사일 공격을 당한 뒤 공포심이 커지고 있다. 발레리예는 자신에 대한 검문이 정당한 이유로 적법하게 이뤄졌다면서 평상시라면 가만 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경계와 피해망상 사이에 줄타기가 벌어진다"면서 "피해망상 때문에 죄없는 사람이 불편을 겪지만 피해망상이 아니라면 사람이 죽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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