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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용사 기리고 나치에 승리한 러 전승절…푸틴 힘 과시로 변질

등록 2022.05.09 09:45:53수정 2022.05.09 10: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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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전사자 가족이 초상화 들고 벌이는 '불사조 연대' 행진

선두 현수막의 두루미 그림 "Z" 문자로 바꾸고 푸틴이 직접 참가

행사 시작한 단체 "더이상 관계없다"는 성명 발표

러시아인 단합 위한 행사가 21세기 침략전쟁 정당화로 변해

[상트페테르부르크=AP/뉴시스] 7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드보르초바야 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77주년 기념 열병식 총 리허설에서 러시아의 T-72 전차가 시민들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2.05.07.

[상트페테르부르크=AP/뉴시스] 7일(현지시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드보르초바야 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77주년 기념 열병식 총 리허설에서 러시아의 T-72 전차가 시민들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2.05.07.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9일(현지시간)은 러시아의 전승절이다. 러시아인들이 2차세계대전 당시 2700만명의 군인과 민간인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독일군의 공격을 막아내 나치 독일의 패망을 결정적으로 이끌어냈다는 자부심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이 집권한 이래 러시아의 전승절은 승리를 축하하는 날에서 러시아군의 현대화를 과시하는 날로 변질됐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그같은 변화가 더 심해졌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8일 보도했다.

올가 로마노바(44)의 할머니는 2차세계대전 당시 간호사로 최전선에서 싸웠다. 작고 말랐던 할머니가 "덩치가 큰 남자 부상병"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고 했다. 동부 전선에서 4년 동안 싸우면서 만난 군인과 결혼도 했다.

그런 로마노바에게 러시아의 전승절은 "할머니에 대한 사랑을 되새기고 존경을 표시하는" 날이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이 전승절의 의미를 변질시켰다. 9일 전승절에는 정부가 우크라이나를 나치 독일의 계승자로 비방하면서 전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러시아의 위력을 과시하고 옛 제국의 회복을 강조할 예정이다.

전투기들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지지를 상징하는 "Z"자 대형으로 비행하고 우크라이나 전투에 참여한 공수부대가 장갑차를 타고 붉은 광장을 행진한다. 러시아 전역에서 2차대전 참전 가족의 초상화를 든 사람들의 벌이는 "불사조 연대" 퍼레이드가 발트해해군기지가 있는 발티이스크에서는 우크라이나 참전 부상 해군들이 참가한다.

이 같은 전승절을 정치화해온 푸틴의 정책으로 2700만명의 희생을 기리는 전승절의 의미가 퇴색했다. 러시아인들을 하나로 묶는 중요 행사가 21세기 침략전쟁을 뒷받침하는 행사가 된 것이다.

러시아 언론인 막심 트루돌류보프는 "러시아 단결의 신화가 전쟁을 일으킨 것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변질됐다. 모든 것이 교묘하게 뒤집혔다. 승리 축하가 전쟁 미화로 변했다"고 썼다.

트루돌류보프는 전승절이 러시아 사회의 군사화에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학생들이 2차대전 당시 군복을 입는 곳도 있고 러시아의 투쟁은 항상 옳다고 주장하는 전쟁 영화가 상영된다. "다시 해 낼 것"이라고 쓰인 표어를 붙이고 다니는 자동차도 많다. 2020년 러시아 정부는 모스크바외곽 러시아육군 성당을 개관했다. 성당의 돔 지붕 높이가 1945cm이며 성당 바닥은 독일 탱크를 녹여 만든 철로 깔았다.

투르돌류보프는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정부의 전승절 집착이 푸틴에 대한 지지를 끌어내는 것을 넘어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것임을 몰랐다고 했다. 러시아내 푸틴 반대자들조차도 옛 소련의 승리가 "우리가 역사의 정의 편에 서있다는 그럴듯한 생각"을 갖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돌이켜보면 정부가 정치적 캠페인으로 활용했다. 이론과 상상속에서 있던 것을 탱크와 총과 군대가 벌이는 실제 지상공격으로 재연했다"고 강조했다.

푸틴은 이날 붉은 광장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열병식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서방 전문가들은 푸틴이 연설에서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포하거나 러시아 국민의 총동원을 선언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8일 러시아 정부는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지원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지도자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러시아인들이 "쓰레기 같은 나치들로부터 조국을 해방하기 위해 힘을 합쳐 싸우고 있다"고 선언하고 "1945년처럼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승절 행사중 가장 크게 정치화된 것이 불사조 연대 행진이다. 전사자 가족 초상화를 들고 벌이는 행진이다. 2012년 시베리아의 톰스크에서 주민들이 처음 시작한 이 의식이 노년층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고 전 소련 지역 모든 지역과 소련 시절 국민들이 거주하는 전세계 곳곳에서 수백만명이 참가하는 행사가 됐다.

그러자 러시아 정부가 민간 행사에 개입했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여러번 행진에 참여하면서 전사자를 기리는 정서를 자신의 통치에 대한 지지로 활용했다.

지난 달 불사조 연대 행진을 처음 시작한 세르게이 라펜코프가 자신들의 행사가 변질됐다면서 "더이상 자신들과 관련이 없는 행사가 됐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라펜코프는 올해 당국이 행렬 선두에 등장하는 현수막에서 두루미 그림을 지웠다고 했다. 두루미가 너무 근엄해 "참여"를 유도하지 못한다는 이유라고 했다. 두루미 대신 "Z" 문자를 넣어 행진자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도록 수정했다는 것이다. 라펜코프는 "이런식으로 계속 하면 러시아가 위험해진다.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촉발할 것"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간호사였던 로마노바는 모스크바 인근 이바노보시 불사조연대 행진 주최자다. 그는 불사조 연대 행진을 우크라이나 전쟁 지지로 악용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두가지 일을 분리해야 한다. 하나만을 강조하면 의미를 알 수 없게 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 행진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발티이스크에서 행진을 준비하는 안드레이 베드무크(59)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나치 압제자들에 대한 투쟁이라는 정부의 주장을 받아들인다. 현지 병원에 입원한 해군 부상병들이 행진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들 모두가 투쟁한 것은 우리가 나치를 제거하길 원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1945년 러시아 승전의 어두운 면이 재연되는 불길한 조짐을 보인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럽대학 역사학자 이반 쿠릴라는 2차대전 승리 기념품으로 약탈한 물건들이 러시아 가정에 여전히 놓여있고 붉은 군대가 독일 여성들을 강간한 일을 새롭게 주목하고 있다.

그는 며칠 전 전승절 퍼레이드를 연습하는 탱크들을 보면서 이 살인기계들도 곧 전장에 투입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다면서 "전승절을 축하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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