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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의 '리영희 선생' 추모시 잔잔한 감동

등록 2010.12.05 14:47:29수정 2017.01.11 12:5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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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현아 기자 = 고은 시인이 5일 별세한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를 위한 추모의 시를 트위터에 올려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5일 한겨레신문 트위터에 따르면 고은 시인은 이날 '뼈 마디마디로 진실의 자식이고자 한 사람-리영희 선생 별세에 부쳐' 라는 시를 써 리 선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했다.

 고 시인은 시에서 "그리도/ 불의에 못 견디고/ 불의가 정의로 판치는 것/ 그것 못 견디는 사람"이라며 리 선생의 치열했던 '행동하는 지성'을 설파했다.

 고 시인은 또 "만인이 선생님이라 선생이라 고개 숙이는데/ 당신께 형이라 부르는 사사로운 사람도 있어야겠기에…"라며 리 선생과의 막역한 우정을 소개하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다음은 추모의 시 전문이다.

 우리한테 기쁨이나 즐거움 하도 많았는데
 배 터지게
 참 많이 웃기도 웃어댔는데
 그것들 다 어디 가버렸습니까
 슬픕니다
 가슴팍에 돌팔매 맞았습니다

 리영희 선생!

 지금 만인의 입 하나하나
 제대로 말 한 마디 못하고
 그냥 캄캄한 슬픔으로 울먹이는데
 마음 한쪽 가다듬어
 이 따위 넋두리 쓸 사람도 있어야겠기에
 그렇습니다
 만인이 선생님이라 선생이라 고개 숙이는데
 당신께 형이라 부르는 사사로운 사람도 있어야겠기에
 이제 막 이 이승의 끝과
 저승의 처음이 있어야겠기에
 황진 몰려오는 날
 돌아봅니다
 당신의 단호한 각성의 영상
 당신의 치열한 형상

 그리도
 지는 해 못 견디는 사람
 그리도
 불의에 못 견디고
 불의가 정의로 판치는 것
 그것 못 견디는 사람
 그리도 지식이란 지식 다 찾아가건만
 그 지식이 행여
 삶의 골짝과 동떨어진 것
 윗니 아랫니
 못 견디는 사람
 그리도
 뼈 마디마디로 진실의 자식이고자 한 사람
 허나 옥방에서
 프랑스어판 레미제라블 읽으며
 훌쩍훌쩍 울었던 사람
 죄수복 입고
 형무소 밀가루떡 몇 개 괴어 놓고
 1평 반짜리 독방에
 어머니 빈소 차리고 울던 사람
 그럴수록 뼈 마디마디로 진실의 자식이고자 한 사람
 시대가
 그 진실을 모독하는 허위일 때
 또 시대가
 그 진실을 가로막는 장벽일 때
 그 장벽 기어이 무너뜨릴 진실을
 맨앞으로 외쳐댄 사람
 그런 어느날 밤
 지구 저쪽에서
 사상의 은사가 있다 한
 그 은사로 젊은이들의 진실을 껴안은 사람
 아니
 고생만 시킨 마누라 생각으로
 설거지를 하다가
 설거지 못한다고 꾸중 들은 사람
 아시아의 아픔
 조국의 아픔
 조국에 앞서
 사회의 아픔
 아니
 세계 인텔리의 아픔으로
 등불을 삼았던 사람

 대전 유성병원 침대에서
 껄껄 웃다가
 그 웃음 틈서리로
 아무래도
 아무래도
 이번은 내줄 수밖에 없겠어
 하고 슬며시 내보이던 사람

 환장하게 좋은 사람
 맛있는 사람
 속으로
 멋있는 사람
 벅찰 역사 차라리 풍류일러라
 아름다운 사람
 
 리영희 선생! 형!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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