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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친일 윤치호-애국 안창호, 학자 명예훼손?

등록 2012.08.25 17:05:01수정 2016.12.28 0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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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310>  ‘현충일, 오늘 부르는 이 노래는?’-‘이것은 민중의 선택이었다’-‘수난기, 순결·비장한 나라사랑’-‘윤치호인가 안창호인가…밝혀지지 않은 애국가 작사자’-‘미상이라니…작사자, 윤치호’-‘국사편찬위원회가 책임져라’-‘애국가 작사자도 모르는 정부’….  문화부장 reap@newsis.com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310>

 ‘현충일, 오늘 부르는 이 노래는?’-‘이것은 민중의 선택이었다’-‘수난기, 순결·비장한 나라사랑’-‘윤치호인가 안창호인가…밝혀지지 않은 애국가 작사자’-‘미상이라니…작사자, 윤치호’-‘국사편찬위원회가 책임져라’-‘애국가 작사자도 모르는 정부’….

 지난 6~7월 ‘신동립의 잡기노트’는 애국가를 작사한 사람은 윤치호라는 사실을 이렇게 연역적으로 증명했다. 이후 8월22일, 흥사단이 움직였다.

 반재철 이사장은 “애국가 작사자 역시 분명 도산 선생님임을 선배님들의 수많은 증언을 통해 심증적으로 확신해온 우리 흥사단은 그간 많은 자칭 ‘작사자론’을 접하며 참으로 안타까움을 느껴온 한편, 도산 선생님께 죄의식을 가지고 지내왔다. 이제 우리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대한민국 애국가 작사자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임을 밝힘으로 그간 가슴 깊이 앙금으로 갖고 있던 사죄를 구하고자 한다”며 애국가작사자 규명발표회 ’대한민국 애국가 작사자 도산 안창호‘를 주최했다.  

 이날 안용환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장이욱, 이광수 등의 글과 안익태, 황사성(목사) 등의 말을 근거로 애국가 작사자는 안창호라고 밝혔다. 1950년대 세광중학교 음악교본에 ‘작사 안도산·작곡 안익태’라고 적혀있다는 기록도 내놓았다.

 오동춘 짚신문학회 회장은 독립운동가(윤형갑)와 평안북도 선천예배당 권사(김정수)의 채록증언을 제시했다. “1907년 3월7일 경칩 무렵 선천예배당에 들른 안창호가 ‘백두산과 두만강물’이라는 찬미가를 듣고 새롭고 웅장한 시상에 젖어 평양으로 가서 이틀씩이나 금식해가며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을 배경으로 기승전결의 4단 시짓기 구성법에 따라 애국가를 4절까지 지어 선천예배당으로 보내줘 올드랭사인 곡에 올린 안창호의 애국찬미가가 선천예배당은 물론 선천 일대에 애창곡이 됐다고 김정수 권사가 증언했다”는 것이다.

 또 “안창호는 윤형갑에게 함부로 도산이 한 말의 발설을 금지한다는 주의를 환기시키고 애국가 원작자는 도산 자신이라고 자주 밝혔다고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불리는 클레멘타인 민요처럼 국민이 널리 불러서 민요로 정착될 때까지 애국가의 원작과 이름이나 가사 뜻풀이는 밝히지 말고 보류해두는 것이 좋겠다고 함구령을 내렸다”, “안창호 선생은 선배(윤치호) 하나가 애국가를 자기가 지었다고 자주 나서서 자신이 나서기가 곤란하다고 했다”고도 알렸다.

 1955년 국사편찬위원회가 위촉한 애국가작사자조사위원은 19명이다. 이들 중 11명은 윤치호, 2명은 안창호를 작사자로 봤다. 흥사단은 당시 조사위원 가운데 최남선, 이병도, 서정주, 현제명 등 친일파가 9명인 데다 이승만 독재정부가 이들 친일파를 옹호한 결과라고 짚었다.

 그렇다면, 윤치호의 친일행적을 문제삼아 애국가 개정여론이 일 것을 우려한 이승만이 작사자 미상으로 처리토록 했다는 전언은 무시할 것인가. 뿐만 아니다. 안창호처럼 윤치호도 숨었다. “애국가를 내가 작사했다고 말하지 마시오. 내가 지은 줄 알면 나를 친일파로 모는 저 사람들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겠다고 할지 모르니까”라는 당부를 들은 이가 있다.

【서울=뉴시스】박문호 기자 = 22일 오후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흥사단 주최로 '애국가 작사자 규명 발표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발표회에는 정영모 민족문화연구가(왼쪽부터), 오동춘 짚신문학회 회장, 박만규 전남대 교수, 안용환 명지대 교수, 정인교 서울신학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go2@newsis.com

 ‘윤치호 작’, ‘치호 윤 선생’, ‘Korean Words of Yun Chi Ho’ 등으로 기명된 숱한 문헌자료는 ‘신동립의 잡기노트’가 이미 마르고 닳도록 인용했다. 변절자 윤치호에게는 있고, 애국자 안창호에게는 없는 것들이다.

 심지어 흥사단이 안창호 작사설의 증인으로 내세우는 주요한도 과거 딴소리를 했다. “안도산이 지었다고 하는 것은 세간에 널리 유포되고 있는 설이지만은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은 일종의 신화적인 설이다. 도산이 작사자라고 하는 직접적인 증명을 가진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하였다. 또한 도산 자신의 입으로 그러한 말을 하는 것도 들어 본 적이 없다”는 고백이다.

 14년 전 ‘애국가 작사자 연구’서를 펴낸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는 ‘애국가 작사자=윤치호’라고 확언했다. “안창호 작사설은 도산을 존경하는 정서적 바람일 뿐”이라며 흥사단의 주장을 일축했다. 

 흥사단과의 법정시비도 예고했다. 발표회를 지켜본 김 이사는 “흥사단은 나의 연구를 거짓과 조작으로 매도한 것으로도 모자라 내가 윤치호 문중의 앞잡이인양 모독했다”며 명예훼손으로 형사고소한다는 방침이다. 다음 단계는 정부당국을 상대로 한 모종의 조치다. 곧 가시화할 것 같다. 

 한국의 음악사료에 관한한 박물관급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신나라레코드(회장 김기순)도 김연갑 이사 편이다. “친일파 최남선이 독립선언문을 지었다는 사실이 싫어 공약3장 만큼은 한용운이 지었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 흥사단의 논리”라고 지적했다.

 일이 커지고 있다. 안창호가 작사자라는 것보다 윤치호는 작사자가 아니라는 부분에 천착한 느낌이 없잖은 흥사단은 더 많은 물증을 확보해야 할 듯하다.

 안창호가 애국가 작사자이면 정말 좋겠다. 하지만 아니어도 괜찮다. 위인 도산의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은 민족의 영원한 사표이기 때문이다. 금상첨화 의욕이 소탐대실로 반전될까봐 두렵다.

 문화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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