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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 잡기노트]윤치호, 애국가를 작사한 친일파

등록 2012.11.24 06:01:00수정 2016.12.28 01: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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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327>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을사오적이다.  문화부장 reap@newsis.com 

【서울=뉴시스】신동립의 ‘잡기노트’ <327>

 1883년부터 1943년까지 윤치호는 일기를 매우 상세히 썼다. 1883년 1월1일~1887년 11월24일 한문, 1887년 11월25일~1889년 12월6일 한글, 1889년 12월8일~1943년 12월7일은 영어로 적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에서는 진작 번역된 이 ‘윤치호 일기’가 우리말로는 아직 완역 전이다. 국문으로 옮겨진 일부 일기에는 윤치호에게 불리한 팩트가 많다.

 캐나다에 거주하는 후손 윤경남 여사(국제펜클럽 회원)가 혈육지정으로 윤치호의 영문본 일기 이틀치에 주목했다.

 1905년 11월17일 금요일자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올바른 정신을 가진 조선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 조약에 도장을 찍지 않을 것이오. 미국의 베네딕트 아널드(독립전쟁때 조국을 배반하고 영국편에 가담한 장군)라는 이름을 얻게 될 테니까. 무엇 때문에 조선사람이 그런 오명을 뒤집어 씁니까? 조약이 체결되면 일본은 실컷 이용해 먹은 야비한 흡혈귀들을 모두 쫓아낼까요? 그들은 조선인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본인들을 처벌할까요? 일본은 조선사람을 정의롭고 친절하고 공평하게 대해줄까요? 일본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할 것입니다만, 우리는 일본을 믿지 않습니다. 일본이 저지른 사악한 사실을 직시할 때 일본에게 최선의 대책은 무엇일까요? 일본의 허무맹랑한 약속에 날인한다면 조국을 팔아먹는 일이 될 뿐입니다. 제정신을 가진 조선사람이라면 아무도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겁니다.”

 우려가 현실로 확인된 다음날의 일기는 비장하기만 하다. “대한제국의 독립은 오늘 새벽 1시 혹은 2시에 꿈속에서처럼 조용하게 조인함으로써 끝이 났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그러나 기정사실이 됐음을 알았다. 나는 외부대신 박제순이 의정서에 조인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참정대신 한규설은 마지막까지 조인을 거부한 유일한 분이다. 어전에 나오는 일을 거부함으로써 해직된 분이다! 참정대신 만세!!”

 이어 뜻을 같이했다. 외부대신 서리직 제의를 거절했다. 2년 후 안창호 등이 주도한 신민회 회원으로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 교장이 됐다. 1912년 조선총독부가 민족운동가들과 기독교세력을 말살코자 날조한 ‘105인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복역했다. 여기까지는 당당한 애국지식인의 면모다.

 출옥한 윤치호는 그러나 달라져 있었다. 조선은 자치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황국신민으로서 일본에 충성하고 협력하겠다는 결의문을 낭독했다. 친일파의 소굴인 조선임전보국단의 고문 자격으로 이땅의 젊은이들더러 징병에 응하라고 권했다. 일본제국의회의 칙선 귀족원의원이 된 것은 어떤 화룡점정이다.  애국자 시절 애국가를 작사한 윤치호는 어느 순간 그렇게 변절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애국가 작사자로 윤치호를 지목한 지 오래다. “애국가 작사가 윤치호는 만선일보에 실린 친일논설이 확인됐고, 친일성향의 시 세 편(首, 北斗星, 前夜)이 친일 혐의를 받고 있다”고 공개했다.

 조선어학회의 배후핵심인 독립운동가 신현모(제헌국회의원)는 생전 “윤치호는 민족의 대선각”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옥중에서 일본의 소위 역대 천황 이름을 외우는 것이 일과였다고 공언하는 등 계속된 훼절행동”을 지적했다. 다만 “검박절제하여 짧은 두루마기와 바지에는 호주머니를 달아 입는 등 실질과 진보를 취하는 마음이라든지 인력거를 타지 않는 등 일종의 풍격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라며 양면을 두루 봤다.

 학부대신 이완용,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군부대신 이근택,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을사오적이다. 1905년 11월17일 대한제국 정부의 외부대신 박제순과 일본제국 정부의 주한공사 하야시 곤스케가 체결한 불평등 조약이 을사늑약이다. 일제가 강제했다고 ‘굴레 늑(勒)’자를 쓴다. 일본은 일한협약(2차)이라고 부른다. 조선의 외교권 박탈이 골자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 정확히는 식민지가 됐다. 107년 전 엊그제의 일이다. 

 문화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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