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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영국판 오세훈' 캐머런의 자충수

등록 2016.06.27 10:26:06수정 2016.12.28 17: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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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성

【서울=뉴시스】문예성 기자 =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가 국민투표 결과로 현실화되면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사의를 표명했다. 

 캐머런 총리는 투표패배와 국론분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하면서, 자신있게 던진 승부수가 자신의 발목을 잡는 자충수로 돌아오는 순간을 맞게 됐다.

 EU 잔류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캐머런 총리가 거대한 도박을 했고 결국 졌다"고 한탄했고 이코노미스트는 "다른 누구의 잘못도 아닌 캐머런 자신의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1966년생인 캐머런 총리는 44세 때인 지난 2010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어 노동당 집권 13년에 마침표를 찍고 보수당 정부를 출범시키면서,1812년 로드 리버풀 총리(43세 때 총리 취임) 다음으로 최연소 총리가 됐다.

 지난 2013년 1월 캐머런 총리는 2015년 총선 공약으로 브렉시트 국민투표라는 정치적 카드를 던졌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위기를 계기로 반(反) EU를 주장하는 극우 성향 영국독립당(UKIP)이 대중적 인기를 얻으면서 영국 사회에서 EU 탈퇴에 대한 요구도 커졌기 때문이었다. 승부수가 통했던지 지난 해 총선에서 캐머런 총리의 보수당은 승리했다.

 애초 보수당 내에서는 캐머런 총리라면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다수였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비록 박빙이기는 했지만  '잔류' 쪽이 우세한 듯 보였다. 그러나 예상보다 컸던 이민자에 대한 불만과 뿌리 깊은 반EU 정서는 결국 초유의 결과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한국내 일각에서는 이번 투표를 주도한 캐머런 총리와 2011년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가 결국 조기 사퇴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비슷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캐머런은 명문 중의 명문인 이튼 스쿨과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중상위 계층의 엘리트 출신으로 젊은 시절 보수당원이 됐고, 1992년 재무부 장관 보좌관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변호사 출신인 오 전 시장역시 45세 때인 지난 2006년 서울시 최연소 민선시장이 되면서 차기 대권주자로 촉망받았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닮은 점은 소속 정당의 양분된 당론에도 불구, 민감한 현안에 대해 무리수를 둠으로써 자신과 소속 정당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차기 총리로 유력한 보리스 존스 전 영국시장, 정치적 동반자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 마저 브렉시트 찬성론자였을 만큼 보수당 내에 심각한 분열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캐머런 총리의 소신이 지나쳤다는 아쉬움이 크다.

 이런 자충수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캐머런 자신뿐만 아니라 영국과 영국 국민들이다. 브렉시트로 인해 이제 영국은 물론 유럽과 전 세계가 모두 가보지 못한 불확실한 길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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