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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안에서 새던 바가지'의 결말

등록 2016.06.29 18:00:49수정 2016.12.28 17: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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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필재

【서울=뉴시스】정필재 기자 = 국가적인 경사라는 평가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성과라는 이야기도 퍼졌다.  

 지난해 11월 쯤이다. 한국에서 AIIB 부총재 자리를 확보했고, 한국 정책금융기관의 맏형인 산업은행 홍기택 당시 회장이 그 자리를 꿰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런 상찬이 관가와 금융계에 무성했다. 

 한데 산은은 이 경사스런 소식을 애써 감추려 했다. 외교적으로 민감한데도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인사가 언론에 알려져 자칫 무산될까 노심초사했다.

 홍 전 회장이 AIIB로 자리를 옮긴다는 기사가 나올 때 마다 산은 홍보실은 뒤집혔다. 직원들은 퇴근도 미루고 언론사를 찾았다. 성급한 보도로 어렵게 확보한 자리가 사라질 수 있어, 국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보도자제를 요청했다.

 홍 전 회장은 AIIB 리스크 관리부문 부총재로 임명됐다. 올해 2월3일이다.

 2003년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 수임 이후 13년 만에 국제금융기구 부총재에 한국인이 임명되는 순간이었다.

 기획재정부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과 범정부 차원의 노력에 대한 결실이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홍 부총재는 애초부터 국제금융기구 부총재라는 감투를 담을 만한 그릇이 못됐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는 속담처럼 산은 회장 시절부터 문제 투성이였다.

 단지 그가 낙하산이라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2013년 4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일했고, 산은 회장에 임명됐으니 낙하산은 맞다. 문제는 성공하는 낙하산이냐, 실패하는 낙하산이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낙하산이라고 다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말 그는 내려보내서는 안될 낙하산의 전형이었다.

 홍 부총재가 산은에 있던 3년 간 적자가 두 번이나 났다. 부족한 금액은 모두 세금으로 채웠다. 홍 부총재 이전의 적자는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당시 뿐이었다. 

 또 그가 지휘했던 STX조선해양 구조조정은 실패했고 회사는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대우조선해양은 5조원의 부실이 발견돼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도 홍 부총재는 책임을 발뺌했다. 모든 것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결정된 일이라고 주장했다.

 수습은 이동걸 산은 신임 회장이 했다. 이 회장은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홍 부총재에 대해서는 함구한 뒤 홀로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전 회장에 배려이자 국제기구에서 국익을 위해 나가 있는 인사에 대한 보호차원이었다.

 그렇게 애써 보호했던 홍 부총재는 지난 25일 베이징에서 열린 제1차 AIIB 연차 총회에서 보이지 않았다. 진리췬 AIIB 총재와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참석한 자리였다. 

 곧바로 홍 부총재의 휴직 소식이 들렸다. 사실상 사퇴나 다름 없다. 개막식에도 참석하지 않은 부총재가 얼마나 애정을 갖고 일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에서 들려오는 부실에 대한 책임 문제 등이 부담으로 작용했던 모양이다. 청문회가 열리고 검찰조사까지 이뤄질 경우 한국에 자주 와야 하는 만큼 업무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결국 홍 부총재를 국제기구 임원에 앉히려던 박근혜 정부와 기획재정부, 산업은행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본인이야 그렇다 치자. 더 중요한 건 이렇게 안에서 새고 또 새는 바가지를 "샌다, 새도 너무 샌다. 그러니 국익을 대표하는 AIIB 부총재로 임명해서는 안된다"고 어느 국가기관도 대통령에게 직언하지 않았다.

 청와대 참모진, 기획재정부와 산업은행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책임을 통감해야 할 정부 고위 관계자가 이제 와서 "나라망신"이니 "국익 침해니" 하며 홍 부총재에게 손가락질 하는 것 자체가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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