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여년 만의 일왕 양위…왕실전범 개정에 2~3년 걸릴 듯
【도쿄=AP/뉴시스】4일 도쿄(東京) 참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190회 정기국회 개회식에 참석한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국회가 민생 안정과 향상,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국내외 여러 문제에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16.01.04.
일본에서는 에도(江戶) 시대 후기의 고가쿠(光格) 일왕(1780∼1817년 재위)을 마지막으로 약 200년간 양위(왕이 생전에 왕위를 물려주는 것)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일본 왕실 제도를 규정한 '왕실전범'에도 국왕의 생전퇴위 규정은 없기 때문에 양위가 이뤄지려면 법 개정이 선행되야 한다.
일왕의 생전퇴위 표명 소식을 외신들도 일제히 속보 처리했다. 로이터 통신은 "아버지 시대의 전쟁이 낳은 아시아 각국의 상처를 보듬고, 왕가와 시민의 거리를 좁히는데 노력한 인물"이라고 아키히토 일왕을 소개했다. 또 지난해 8월 전후 70년 전몰자 추도시에서 '깊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쓴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11세에 일본의 패전을 눈으로 지켜본 뒤 전후 부흥기에 청춘시절을 보내 일왕은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잘못을 절감하고 있으며 평화를 강조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우경화 행보에 제동을 걸어온 인물이기도 해, 그의 생전퇴의 의사는 더욱 안타깝다.
그러나 고령으로 건강 악화설에 휩싸여온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퇴위는 실현될 전망이다. 일왕이 퇴위하기 위해서는 1947년 제정된 왕실전범 개정이 필요하다고 아사히, 도쿄신문은 14일 전했다.
【도쿄=AP/뉴시스】아키히토(明仁) 일왕이 2일 2016년 신년사에서 세계 평화에 대한 자신의 희망을 밝혔다. 이날 아키히토 일왕은 도쿄(東京) 황궁에서 밝힌 신년사에서 "우리 나라와 세계인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고 밝혔다. 일왕이 미치코(美智子) 왕비 옆에서 신년사를 전하는 모습. 2016.01.02
왕실전범 개정은 일반 법률과 마찬가지로 국회에서 심의, 통과시키는 절차를 밟게 된다. 일본 언론은 전범을 개정하려면 2∼3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아키히토 일왕의 뜻대로 생전퇴위가 실현되면 그의 장남인 나루히토 왕세자(56)가 왕위를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
일왕이 생전퇴위를 표명한 것은 고령 등 건강상의 이유로 공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해석했다.
일왕은 지난해 12월 82세 생일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나이를 느끼는 일이 많아졌다", "행사 때 실수할 때도 있었다"면서 고령으로 인한 공무 수행의 어려움을 시사했다. 일왕이 말한 '실수'란 지난해 8월 전몰자 추도식에서 순서를 헷갈리고 이어 10월25일 도야마(富山) 현 행사 때 이미 진행된 메인 행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등의 실수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이 같은 일왕의 실수가 일본의 일부 매체에 보도돼 ‘건강 이상설’이 돌기도 했다.
【도쿄=AP/뉴시스】아키히토(明仁) 일왕(앞줄 왼쪽)과 미치코(美智子) 왕비(앞줄 오른쪽), 나루히토(德仁) 왕세자(둘째줄 왼쪽), 마사코(雅子) 왕세자비(둘째줄 오른쪽), 아키시노(雅子) 왕자(셋째줄 왼쪽) 등 일본 왕족들이 12일 도쿄 아카사카(赤坂) 왕궁에서 열리는 가을 정원 파티에 참석하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언덕을 내려가고 있다. 2015.11.12
이러한 주위의 배려에 하키히토 일왕의 심중은 복잡했다고 아사히는 분석했다. 지난해 12월 기자회견에서 일왕은 "부담 경감은 형평의 원칙을 바탕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충분히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14년 '어린이날'과 '경로의날'을 기념한 시설 방문을 끝으로, 학교나 고령자 시설 방문 등에 관한 공무는 장남 나루히토(德仁) 왕세자 부부가 수행하고 있다.
올해 2~3월에는 독감에 걸려 치료 받은 뒤 왕실에서 경찰 본부장들로부터 인사를 받는 순서도 없애는 등 공무를 한층 경감했다. 이러한 공무 경감에 아키히토는 "일왕은 해야할 공무를 모두 해야 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낸 것으로 궁내청 관계자는 전했다.
이에 궁내청 관계자는 생전퇴위의 뜻에 대해 "공무를 줄인다면 일왕의 지위를 유지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라고 유추했다.
국왕의 생전퇴위 소식에 일본 정가는 놀라워하면서도 뜻에 따르는 분위기다. 아베 내각의 한 각료는 "그런(생전퇴위의)말씀이 있었다면 정부로서 제대로 대응해야 한다.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또 연립여당 공명당 간부도 "황실전범 개정에 진행될 것이다. 다만 전문가 회의를 설치하는 등 신중하게 절차를 밟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도쿄=AP/뉴시스】아키히토(明仁) 일왕은 일본의 패전 70주년인 15일 개최된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의 뜻을 밝혔다. 이날 일본 부도칸(武道館)에서 2차 세계대전 전물자 추도식이 열린 가운데 아키히토 일왕은 연설에서 "앞선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을 것을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아키히토 일왕과 미치코(美智子) 왕비가 행사에 참석한 모습. 2015.08.15.
그러나 모모치 아키라(百地章) 니혼대학 헌법학 교수는 "양위 제도의 신설 여부는 국회와 내각에 매우 무거운 숙제"라면서 양위를 부정한 왕실 규정의 전통을 존중하면서 양위보다는 섭정을 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아니냐며 생전퇴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올해 82세인 일왕은 선친인 쇼와(昭和) 일왕(1926~1989 재위)이 사망한 1989년에 즉위해 25세 때인 1959년 미치코(美智子) 왕비와 결혼해 세 자녀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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