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기자수첩] '말로 흥한 트럼프, 말로 망한다'

등록 2016.08.05 15:12:01수정 2016.12.28 17:28:11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권성근 기자 = 미국 공화당의 전당대회를 취재하기 위해 지난 7월 21일 오하이오주  도시인 클리블랜드을 찾았을 때 보기 드문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시 곳곳에 중무장한 경찰이 배치되고 기마 경찰과 오토바이 순찰대가 수시로 시내를 순찰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전당대회장에 들어가기 전 모든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검문검색도 무척 까다로웠다. 몸수색은 기본이고 노트북 등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소지품은 모조리 꺼내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경찰관은 심지어 노트북에 폭발물이 설치돼 테러에 사용되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전원을 켜보라고 요구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전당대회가 열린 퀵큰 론즈 아레나 안으로 일단 들어가보니, 대회장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대회장 주변의 분위기도 비슷했다. 밴드가 대회장 밖에 마련된 무대에 올라가 연주를 하며 흥을 돋구었고, 일반 당원이나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스크린으로 전당대회를 관람하는 모습도 많이 눈에 띄였다. 그곳으로부터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선 트럼프 반대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전당대회가 활기를 띨 수 있었던 이유는 트럼프가 대통령선거에서 선전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전당대회장에서 만난 워싱턴 주의 대의원은 "트럼프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말할 수 있고 여러 도전과제 앞에서 미국을 되살릴 능력을 갖추고 있는 유일한 후보"라고 트럼프를 추켜세웠다. 다른 대의원들도 트럼프에 대해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미국 정치권은 요즘 매우 시끄럽다. 트럼프의 ‘막말’ 때문이다. 파문은 일파만파로 퍼지고 있다. 발단은 트럼프가 이라크서 전사한 무슬림계 미국인 참전용사 부모를 두고 종교적 비하 발언을 한 것에서 비롯됐다.

 트럼프의 막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가볍게 여기기 어려워 보인다. 민주당은 물론이고 우군이라 할 수 있는 공화당 내에서도 등을 돌릴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당 내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에 이어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은 “그의 이 같은 의견은 공화당의 시각을 대변하지 않는다”라며 트럼프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 불참했던 매케인은 베트남전에 참전한 전쟁영웅이다. 트럼프의 측근으로 알려진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도 트럼프의 발언은 적절하지 않았다며 그에게 조언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지한 탓인지 오는 11월 상·하원과 주지사 선거에 나선 공화당 후보 중 상당수는 트럼프의 지지유세를 바라지 않는다며 그와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지지유세가 득보다 실이 크다고 판단한 것.그런가 하면 뉴욕이 지역구인 공화당의 리처드 해나 하원의원은 지켜야 할 선이 있다며 대통령선거에서 같은 당 트럼프가 아닌 민주당 클린턴에 투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더 큰 문제는 막말 논란으로 공화당이 분열 양상을 보이는 등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정작 분란의 당사자인 트럼프는 해명이나 공개 사과 등 분위기 전환을 위한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슬로건을 내놓으며 본선에 돌입했다. 대의원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받는 트럼프이지만 계속된 막말로 신뢰가 떨어지면 그의 인기도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다.

 ‘말로 흥한 자 말로 망한다’는 격언을 트럼프는 과연 알고나 있는 것일까. 만약 트럼프가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존경받는 지도자로 남기 바란다면 이제는 자신이 하는 말의 무게를 인식해야 할 때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 것같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