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저소득층 '냉방 에너지 바우처' 도입 서둘러야
숨이 턱턱 막히는, 사우나를 연상케 하는 폭염이 2주 넘게 계속되고 있다. 1994년 이후 최대 폭염이란다. 올 서울의 폭염 발생일은 무려 16일. 43일이었던 1994년 이후 최장이다.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온열 질환자도 늘고 있다. 16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7~13일 열탈진, 열사병 등 온열 질환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는 520명이다. 온열 질환자 집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역대 최대치이다. 사망자 수도 13명에 달한다.
추위 못지 않게 더위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 가마솥 더위에 노약자나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냉방 요금을 낼 여력조차 없다. '에너지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소득의 10%를 냉방비와 난방비로 써야 하는 계층으로 전국적으로 150만 가구에 달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추정이다. 4인가구로 치면 무려 600만명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본다는 나라에서 이들을 위해 시원한 그늘이 돼 줄 만한 대책은 마련돼 있는 걸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겨울철 저소득층에 난방비를 지원하는 '에너지 바우처' 같은 제도는 여름철엔 없다. 겨울철에 비해 비해 에너지 수요도 낮고 사망자도 훨씬 적다는 게 이유다. 고작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중인 무더위 쉼터와 약 8000원의 취약 계층 전기요금 할인이 전부다.
에너지 바우처는 취약계층이 전기, 도시가스, 연탄 등을 구입할 수 있도록 이용권을 지원하는 제도로 지난해 처음 도입됐다. 겨울철 3개월(12~2월) 간 가구당 가구원 수를 고려해 1인 가구(8만 1,000원), 2인 가구(10만 2,000원), 3인 이상 가구(11만 4,000원) 등으로 나눠 차등 지급한다.
정부는 그동안 에너지 빈곤층의 전기 요금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이유로 누진제 개편에 반대했다. 누진제 개편이 1%를 위한 부자 감세와 같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누진제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에너지 빈곤층 보다는 1인 가구를 위한 요금제로 변질된 지 오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누진제 1단계인 100kWh 이하를 쓰는 가구에서 서민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수준에 불과했다. 누진제를 도입할 당시,12%에 불과했던 1·2인 가구가 지금은 50% 에 달한다는 점도 누진제 개편 필요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사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은 많다. 복잡하기 짝이 없고 말도 많은 누진제 개편이나 폐지까지 갈 것도 없다. 여름철만이라도 저소득층이 주로 쓰는 누진제 일부 구간을 융통성있게 통합해 부담을 완화할 수도 있다. 그 것마저 어렵다면 저소득층을 위한 '냉방 에너지 바우처' 지급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올해 같으면 이 제도가 여름에도 확대 적용돼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정부는 더이상 누진제 개편은 부자 감세라는 주장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푼이 아까워 반지하 단칸방에서 선풍기로 버티는 사람들의 고통을 당장 헤아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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