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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저소득층 '냉방 에너지 바우처' 도입 서둘러야

등록 2016.08.16 17:27:04수정 2016.12.28 17:3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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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

【세종=뉴시스】박상영 기자 = 단칸방에 사는 A 씨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전월에 비해 전기요금이 세 배나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A 씨는 더위에 약한 노모를 위해 중고 에어컨을 마련, 평소보다 오래 켜뒀다. 저소득층 가구에 적용되는 전기요금 할인 혜택도 A씨에겐 무용지물이다. 전기요금 할인 한도가 8000원에 그치기 때문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사우나를 연상케 하는 폭염이 2주 넘게 계속되고 있다. 1994년 이후 최대 폭염이란다. 올 서울의 폭염 발생일은 무려 16일. 43일이었던 1994년 이후 최장이다.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온열 질환자도 늘고 있다. 16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7~13일 열탈진, 열사병 등 온열 질환으로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는 520명이다. 온열 질환자 집계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역대 최대치이다. 사망자 수도 13명에 달한다.  

 추위 못지 않게 더위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하다. 가마솥 더위에 노약자나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냉방 요금을 낼 여력조차 없다. '에너지 빈곤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다. 소득의 10%를 냉방비와 난방비로 써야 하는 계층으로 전국적으로 150만 가구에 달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추정이다. 4인가구로 치면 무려 600만명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바라본다는 나라에서 이들을 위해 시원한 그늘이 돼 줄 만한 대책은 마련돼 있는 걸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겨울철 저소득층에 난방비를 지원하는 '에너지 바우처' 같은 제도는 여름철엔 없다. 겨울철에 비해 비해 에너지 수요도 낮고 사망자도 훨씬 적다는 게 이유다. 고작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중인 무더위 쉼터와 약 8000원의 취약 계층 전기요금 할인이 전부다.  

 에너지 바우처는 취약계층이 전기, 도시가스, 연탄 등을 구입할 수 있도록 이용권을 지원하는 제도로 지난해 처음 도입됐다. 겨울철 3개월(12~2월) 간 가구당 가구원 수를 고려해 1인 가구(8만 1,000원), 2인 가구(10만 2,000원), 3인 이상 가구(11만 4,000원) 등으로 나눠 차등 지급한다.  

 정부는 그동안 에너지 빈곤층의 전기 요금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이유로 누진제 개편에 반대했다. 누진제 개편이 1%를 위한 부자 감세와 같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누진제는 당초 취지와는 달리, 에너지 빈곤층 보다는 1인 가구를 위한 요금제로 변질된 지 오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국정감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누진제 1단계인 100kWh 이하를 쓰는 가구에서 서민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10% 수준에 불과했다. 누진제를 도입할 당시,12%에 불과했던 1·2인 가구가 지금은 50% 에 달한다는 점도 누진제 개편 필요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사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은 많다. 복잡하기 짝이 없고 말도 많은 누진제 개편이나 폐지까지 갈 것도 없다. 여름철만이라도 저소득층이 주로 쓰는 누진제 일부 구간을 융통성있게 통합해 부담을 완화할 수도 있다. 그 것마저 어렵다면 저소득층을 위한 '냉방 에너지 바우처' 지급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올해 같으면 이 제도가 여름에도 확대 적용돼야 할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정부는 더이상 누진제 개편은 부자 감세라는 주장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 푼이 아까워 반지하 단칸방에서 선풍기로 버티는 사람들의 고통을 당장 헤아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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