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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천박(淺朴)의 최후

등록 2016.12.06 05:00:00수정 2016.12.28 18: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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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사진

대통령 탄핵은 법치주의의 실현 누구나 법을 지키도록 만들어야 탄핵 무산을 위한 친박의 시도 국민들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 1793년 1월 21일 파리의 혁명광장(콩코르드광장)은 한겨울 아침인데도 후끈 달아올랐다. 파리 시민들은 중년 사내의 사형 집행을 지켜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사내의 이름은 루이 카페, 죄목은 '국가 전복' 기도였다.

 무심한 칼날이 그의 몸을 두 동강냈다. 사형집행인은 루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머리를 흔들어댔다. 시민들은 루이의 피로 손수건이나 편지 봉투 따위를 적시기 위해 기요틴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피에 젖은 손수건을 승리의 깃발인양 격렬히 흔들었다. 

 시민들은 일제히 "공화국 만세!", "자유 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사형 집행을 정의의 구현이라고 믿었다. 공화국을 위협하는 모반세력의 수괴를 처단함으로써 조국 수호를 위한 의지를 불태웠다.

 루이는 넉 달 전만 해도 루이 16세로 불렸다. 프랑스 국민공회는 1792년 9월 21일 왕정 폐지를 선언했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는 평범한 시민 '루이 카페'로 내려왔다. 그는 왕위에서 물러난 지 넉 달 만에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파국을 막을 기회는 많았다. 개혁을 시도하다가도 왕비와 귀족들의 반대로 번번이 백지화했다. 민심을 파악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했다. 여론은 밀물처럼 고조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이내 썰물처럼 가라앉는 것이라고 믿었다. 왕과 백성의 상황 인식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백성들의 고통과 분노는 켜켜이 쌓여갔다. 왕실 금고는 텅 비어 있었지만 씀씀이는 헤펐다. 왕비는 틈만 나면 축제와 무도회를 열었고, 왕은 수시로 측근들에게  돈을 듬뿍 집어줬다. 세금은 평범한 백성들만 부담했다. 지속될 수 없는 구조였다.

 개혁은 환골탈태를 요구했다. 기득권에 대한 과감한 수술은 필수였다. 재정 전문가들이 제시한 해결책은 한결같았다. 이들은 특권을 최소화 또는 폐지하고, 일반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모두 단명(短命)으로 끝났다. 튀르고는 세금에 평등 개념을 도입했다가 귀족들의 반발로 1년 9개월 만에 물러났다. 귀족들은 루이 16세에게 "튀르고가 왕을 마네킹으로 만들고, 결국에는 왕정 폐지를 기도할 것"이라고 속삭였다.

 튀르고의 후임자 네케르는 개혁 성공을 위해 여론몰이를 시도했다. 네케르는 1781년 2월 '프랑스 예산 보고서'를 통해 특권 계급을 위한 국고 낭비 실태를 고발했다. 이 보고서는 불과 몇 주일 사이에 10만 부나 판매될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루이 16세는 그 해 5월 네케르를 전격 해임했다.

루이 16세는 1788년 네케르를 다시 기용했지만 귀족들의 요구로 1년 만에 그를 쫓아냈다. 네케르 해임 소식이 알려지자 파리 시민들은 무기고를 약탈한 후 바스티유 감옥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프랑스대혁명은 이렇게 막을 올렸다. 백성들은 귀족을 적(敵)으로 간주했고, 더 이상 "국왕 만세!"를 외치지 않았다.

 루이 16세의 비극적 최후는 상황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그는 절대군주로서 그 누구도 자신을 대신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왕권을 되찾기 위해 오스트리아 등 외국에 군대 파견을 요청했다. 프랑스 공화국 국민 입장에서는 명백한 반역죄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천박(淺朴)'-천박(淺薄)한 친박(親朴)-의 행태를 보면 섬뜩한 기시감(旣視感)을 느낀다. 국민들의 생각과는 동떨어진데다 법치주의를 송두리째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23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은 지난 주말 '천박(淺朴)'의 꼼수에 분노를 터뜨렸다. 국민들은 '천박(淺朴)'이 시간을 벌어 정권을 연장한 후 박근혜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자마자 '특별사면'에 나설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명예 퇴진'이나 '질서 있는 퇴진' 주장은 법치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국정을 볼모로 정의를 깔아뭉개겠다는 시도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죄를 지었다면 징치(懲治)는 필수다. 죄인에게는 보장해야 할 명예가 없다. 피의자는 스스로의 진퇴를 결정할 권리도 가질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법치주의의 구현이다. 탄핵 무산은 대역죄나 다름없다. 권력을 잡으면, 돈만 많으면 죄를 저질러도 대충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깨트려야 한다. 그게 국민들의 요구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 할 '천박(淺朴)'을 한 명, 한 명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이제 '천박(淺朴)'의 최후도 머지않았다.

참고문헌 1) 막스 갈로 지음. 박상준 옮김. 2013. 프랑스대혁명. 민음사 2) Adams, Charles. 2001. For Good and Evil : The Impact of Taxes on the Course of Civilization. Maryland. Madiso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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