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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배우 서지영 "10년만에 소극장, 두려움반 설렘반"

등록 2017.02.23 19:43:22수정 2017.03.06 10: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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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서지영, 뮤지컬 '밑바닥에서' 타냐. 2017.02.23.(사진=쇼온 제공)  phot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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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전블루 '밑바닥에서' 타냐로 변신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대표적인 1.5세대 뮤지컬배우 서지영은 지난 10년 간 대극장 뮤지컬 무대를 누볐다. 창작뮤지컬 '밑바닥에서'를 통해 소극장으로 돌아온다.  2006년 마지막으로 출연한 소극장 뮤지컬이다.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서지영은 "관객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 떨려서 두려움도 있지만 설렘도 크다"면서도 즐거워했다.

 '밑바닥에서'가 공연하는 학전블루소극장은 대표적인 소극장뮤지컬 '지하철 1호선'과 '모스키토' 등이 공연한 장소다. 서지영 역시 이 뮤지컬들을 거쳤고, 이 극장 무대에 올랐었다.

 1998년 '지하철 1호선' 당시에는 설경구, 1999년 '모스키토' 당시에는 황정민이 함께 출연했다. 현재 영화계를 이끄는 기라성 같은 배우들과 함께, 두 작품을 연출한 극단 학전 김민기 대표의 혹독한 조련으로 목을 틔웠다.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다시 연기를 할 생각을 하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해요. 호호."

 소문난 미모 역시 변치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만큼 10년 전에는 나타샤를 연기했지만 이번에는 타냐를 맡았다. 나타샤(김지유)는 희망과 현실 사이에서 발버둥 치는 '페페르'(최우혁)가 좀 더 나은 삶을 꿈꾸게 하는 역이고, 타냐는 극 중 배경이 되는 선술집의 주인이자 페페르의 누나다.

 러시아 극작가 막심 고리키의 1902년 희곡 '밤 주막'을 각색한 '밑바닥에서'는 하류 인생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가슴 곳곳을 저릿하게 만든다.

 "10년 전 나타샤를 연기했을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워낙 발랄한 성격인데 나타샤도 그렇게 표현됐어요. 하지만 그녀가 초반에 주던 행복, 희망도 마지막에 꺾이고 좌절되는데 그 낙차가 심하다 보니 정말 견디지 못하겠더라고요."

 지금 자신이 맡는 타냐는 당시 문희경이 연기했다. "그 때 제가 지켜본 타냐의 모습은 억척스럽고 강하며 포근한 면을 갖고 있는, 주변의 어머니상이었어요. 제가 이번에 표현하고 싶은 타냐는 그런 모습도 포함돼 있지만 조금 더 여성적이면서 여린 인물이에요. 살아온 척박한 환경 때문에 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인물로 그리고 싶어요."

【서울=뉴시스】서지영, 뮤지컬 '밑바닥에서' 타냐. 2017.02.23.(사진=쇼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서지영, 뮤지컬 '밑바닥에서' 타냐. 2017.02.23.(사진=쇼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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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삼총사'에서 미모의 여간첩인 '밀라디', 뮤지컬 '로빈훗'에서 비운의 여인 '마리안',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격투장 여주인 에바(프랑켄슈타인 누나인 엘렌과 1인2역) 등 강렬함을 갖춘 캐릭터라도 서지영은 그 안에서 여성성을 끄집어냈다. '러블리하다'는 세간의 평답게 부드러운 여성성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배우는 자기를 배제할 수 없어요. 제가 털털해 보이지만 여성적이에요. 어렸을 때는 미래 희망란에 '현모양처'를 적었을 정도니까요. 요리와 정리하는 것을 너무 좋아하고요. 호호."

 서지영의 감성과 서정성은 제주에서 보낸 유년시절 덕도 있다. 부모, 배우이자 오빠린 서태화와 함께 그는 상당 기간 이곳에서 살았다. 

 "엄마가 발레 학원에 보내고 싶었지만, 학원이 없어 포기할 정도로 문화 혜택은 못 받았어요. 대신 감성적인 혜택을 받았죠. 학창시절에는 여름방학 들어가기 전에 '임해 훈련'이라고 바닷가에 가서 다 같이 노는 시간도 있고요, 한라산 등반 도중 중간 지점에서 캠핑도 하고. 고3때는 학교 옥상에 있으면 퇴임하신 뒤 등단한 국어선생님이 시를 읽어주시기도 하셨어요."

 대학 진학을 위해 독어독문을 전공으로 택한 서지영은 본래 뮤지컬배우에 대한 꿈은 없었다. 하지만 '노래 잘한다'는 숱한 칭찬을 들어왔던 그녀의 끼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연극만 하던 대학동아리에서 뮤지컬 '찰리 브라운'을 앞장서 연출하다 뮤지컬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러닝타임 내내 뛰어다녀야 하는 아동극으로 뮤지컬배우의 경력을 시작한 서지영은 1990년대 중반부터 창작뮤지컬 '결혼일기', 라이선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에서 앙상블로 활약하며 실력을 다졌다. 이후 홀로 213회 동동안 여주인공을 소화해낸 '풋루스'로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우뚝 섰다.

 하지만 직후 슬럼프가 찾아오면서 힘든 시간도 보냈다. 2006년 '밑바닥에서' 시즌 3는 그런 그녀에게 배우로서 내공을 다지게 만들었다. '밑바닥에서'는 또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게 해준 작품이기도 하다. 

 2005년 이 뮤지컬을 초연, '한국뮤지컬대상' 음악 부문을 수상하는 등 호평을 받은 왕용범 연출이다. 이미 자신의 이상형으로서 서지영을 마음에 품고 있던 왕 연출은 시즌 3에서 서지영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공연 동안은 철저하게 연출과 배우의 관계였고, 끝난 이후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다. 

【서울=뉴시스】서지영, 뮤지컬 '밑바닥에서' 타냐. 2017.02.23.(사진=쇼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서지영, 뮤지컬 '밑바닥에서' 타냐. 2017.02.23.(사진=쇼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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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연출에게 서지영은 뮤즈다. 대부분에 작품에 서지영이 나온다. 하지만 결혼 초기에는 조심했다. 서지영에게 '연출가의 아내'라는 수식이 붙으면서 서지영이 오히려 저평가가 된다며 왕 연출은 그녀에게 미안해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한 작품이 잇달아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하지 않은 뮤지컬에 먼저 의아하다는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3~4년 동안은 너무 힘들었어요. 저도 일이 없고 연출님도 일이 없었거든요. 제가 가지고 있던 금도 다 팔 정도였죠. 저희는 부부 사이와 배우와 연출 사이는 철저하게 구분해요. 저는 왕 연출이 가장 훌륭한 연출가라고 생각해요. 그건 아내가 아닌 배우로서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남편 왕용범을 이야기할 때는 볼이 발그레해지다가도 연출 왕용범을 이야기할 때는 분명한 어조로 이야기하는 서지영은 앞으로 "미쳤나봐"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의 '절대 악역'을 해보고 싶다고 웃었다. "제가 없고, 온전히 캐릭터로만 표현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그 인물에 너무 집중해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유체이탈을 하는 연기죠."

 '밑바닥에서'의 나타샤 역은 맡은 김지유가 자신에게 거듭 조언을 구하지만 "무대에서 배우 대 배우로 만나는 것이니, 선배라고 감정까지 터치를 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서지영에게 후배들을 위한 조언을 거듭 청했다. 

 "앙상블은 적어도 5년 이상 해야 무대를 안다는 이야기를 해워죠. 그래야 무대 활용법과 무대와 배역의 소중함을 알게 되거든요. 앙상블을 10년 이상 한 친구들에게는 절대 무대를 떠나지 말라고 하죠. 무대를 떠나지 않으면 기회가 반드시 오니까요. 참고 견디는 것이 물론 배우의 힘든 과제에요."

 제목처럼 감정의 밑바닥까지 표현해야 하는 뮤지컬 '밑바닥에서' 역시 배우들에게 힘든 과제다. 소극장 창작뮤지컬임에도 완성도를 위해 배우들이 10명이나 나오고, 완성도에 자신이 있어 대학로에 흔한 할인도 적용을 하지 않았다. "인생의 혼란기에 놓인 관객들이 보신다면, 오히려 희망을 얻을 작품이에요. 인생은 살만하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저 역시 작품 끝날 때에는 감정의 밑바닥에 내려가 있지만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이래서 배우를 계속 하나봐요." 3월9일부터 5월21일까지 대학로 학전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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