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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지도자의 반역

등록 2017.03.14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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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 사진

탄핵은 국가기관의 공적 결정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순리
불복은 또 다른 허물을 쌓고 
역사에 두고두고 오명을 남겨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아테네 앞바다에 버려진 난파선을 봐라. 지도자가 시민들로부터 버림을 받으면 저런 꼴이 되고 만다."

 아버지의 경고는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적국(敵國)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은 이제 페르시아 왕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아테네, 아니 그리스의 영웅 테미스토클레스는 두고두고 드라마의 소재로 쓰인다. 그의 삶은 너무나 극적이다.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준다. 한 사람의 삶에서 영광과 오욕이 이처럼 극명하게 교차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테미스토클레스는 BC 480년 그리스를 망국의 위기에서 건져냈다. 크세르크세스 1세가 이끄는 페르시아 육군은 그리스 반도를 초토화했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王)이 이끄는 결사대가 전멸한 후 그리스 군대는 전투다운 전투도 치르지 못했다. 페르시아군이 나타나면 꽁무니를 빼기 급급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전략가답게 전쟁의 판을 바꿔버렸다. 지상전에서는 페르시아의 우위를 뒤집을 수 없는 만큼 해전에서 승부를 결정짓자고 주장했다. 반대파를 설득하기 위해 신탁까지 날조했다. 신관(神官)을 매수해 "아테나신(神)이 도시는 자신에게 맡기고 바다로 가라고 말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페르시아는 해군 전력에서도 그리스를 압도했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무려 1,200척의 전함을 동원했다. 반면 그리스 연합함대의 전함은 180척뿐이었다. 전력은 1/7에 불과했지만 테미스토클레스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리스 연합함대는 지형과 풍랑을 최대한 활용했다. 페르시아군을 폭이 좁은 살라미스만(灣)으로 유인했다. 페르시아군은 전력의 우위를 살릴 수 없었다. 그리스 함대는 좁은 바다에서 1대1로 페르시아 함대와 맞섰다.

 풍랑(風浪)도 그리스를 도왔다. 페르시아 함선은 뱃머리와 갑판이 높은 데다 무거웠다. 강풍이 불고, 파도가 높으면 기동력이 떨어졌다. 그리스 함대는 마치 사냥하듯 페르시아 함대를 무너뜨렸다.

 살라미스 해전은 그리스 연합군의 압승으로 끝났다. 페르시아 육군은 그리스에 발이 묶일까 두려워 서둘러 퇴각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리스의 영웅으로 칭송됐다.

 테미스토클레스의 영광은 여기까지였다. 자만은 그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틈만 나면 "아테네와 그리스는 나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더욱이 테미스토클레스는 군함 건조 과정에서 나랏돈을 횡령했다.

 아테네 시민은 테미스토클레스를 응징했다. 도편추방(陶片追放)을 통해 테미스토클레스가 10년간 아테네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망명 길에 올랐다.

 도편추방은 범죄자를 단죄한다기 보다는 권력의 전횡을 막기 위한 예방조치였다. 권력자가 시민들의 자유를 짓밟는 것을 방지하려는 제도였다. 권력이 지나치게 커지면 누구나 도편추방 대상으로 떠올랐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악수(惡手)를 거듭했다. 친구 파우사니아스가 아테네에서 반역 사건으로 기소되자 테미스토클레스의 연루 의혹이 제기됐다. 시민들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소환을 요구했다. 그는 귀국 대신 페르시아 망명을 선택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크세르크세스 1세에게 "살라미스 해전 후 그리스군이 폐하를 추격하려는 것을 제가 막았다"며 "이제는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간청했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그의 망명을 받아들였다.

 그리스 구국(救國)의 영웅은 이렇게 반역자로 전락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아테네 귀국 후 적극적인 소명에 나섰다면 이런 오욕은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나친 자기애(自己愛)때문에 동료 시민에 대한 존중, 나라 운영에 대한 배려는 뒷전으로 밀어냈다.

 아테네의 도편추방은 현대사회의 탄핵과 유사하다. 도편추방은 예방적 성격이 짙은 반면 탄핵은 사후적 제재다. 둘 다 권력자의 전횡이나 부정부패를 견제하는 기능을 갖는다. 불복은 공동체에 대한 반역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대해 수긍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애(自己愛)를 갖는다. 하지만 공인이라면 동료 시민, 공동체에 대한 배려도 고려해야 한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그렇지 못해 역사에 오명을 남겼다. 선택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몫이다. 


참고문헌
1) Adams, Charles. 2001. For Good and Evil : The Impact of Taxes on the Course of Civilization. Maryland. Madison Books.
2)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성규 옮김. 2000.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현대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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