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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왔어? 축구화 신어봐" 돌아올 미수습자들의 이야기

등록 2017.03.27 07: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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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세월호 선체 인양작업 이후 첫 주말을 맞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추모 공간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7.03.25.  stoweon@newsis.com

【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세월호 선체 인양작업 이후 첫 주말을 맞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 참사 추모 공간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7.03.25.  [email protected]

【진도=뉴시스】배동민 기자 = "아들 왔어? 축구화 사뒀어. 신어봐"

 지난 25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 세상에서 가장 슬픈 항구가 된 이곳은 다시 한 번 눈물이 흘렀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서울 대학로 예술인들이 꾸민 '팽목연가'는 2014년 4월16일 이후 1077일째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9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딸 잘 다녀왔어? 배고프지? 집에 가자", 상황극 속 대사가 현실이 될 수 있길 추모객들은 간절히 기도했다.

 짧은 극으로 모두 담지 못했던 아홉 가족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풀어본다.

 ◇단원고 학생 조은화·허다윤양, 남현철·박영인군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은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양, 2학년 2반 허다윤양, 2학년 6반 남현철·박영인군, 단원고 교사 고창석·양승진씨, 일반인 승객으로 불리는 권재근씨와 혁규 부자, 이영숙씨다.

 조은화양은 엄마에게 친구 같은 딸이었다.

 '버스에 탔다', ‘학교에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 엄마의 걱정을 덜었고 집에 돌아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곧잘 이야기했다. 참사 당시 수학여행비가 32만원이나 된다고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 착한 딸이었다.

 수학을 유독 좋아했고 전교 1등을 도맡아 해왔던 그의 꿈은 회계 분야 담당 공무원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여고생의 꿈을 앗아갔다.

 희귀병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엄마를 걱정했던 허다윤양. 다윤양은 중학생 때부터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해왔다. 꿈도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다윤양의 가족은 수학여행 전 가족사진을 찍었고,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16일은 사진관에서 가족사진을 찾기로 한 날이었다.

 2남 중 막내인 박영인군은 성격이 무척 활발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와 야구 등 모든 구기 운동을 종아했다.

 특히 축구를 좋아해 체육대 진학을 꿈꿨다. 영인군의 어머니는 세월호 사고 전 축구화를 사달라는 아들의 말을 들어주지 못한 게 마음에 남아있다. 팽목항에는 영인군의 부모가 사놓은 축구화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사랑하는 그대 오늘 하루도 참 고생했어요. 많이 힘든 그대, 힘이 든 그대 안아주고 싶어요. 지금쯤 그대는 좋은 꿈 꾸고 있겠죠. 나는 잠도 없이 그대 생각만 하죠. 그대의 어깨를 주물러주고 싶지만 항상 마음만은 그대 곁에 있어요.('사랑하는 그대여' 가사 中)', 남현철군이 가사를 만든 노래다. 곡은 세월호 희생자 이다운군이 썼다.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현철군은 기타와 작사 실력이 상당했다. 팽목항에는 현철군을 기다리는 기타도 놓여있다.

 ◇단원고 고창석·양승진 선생님

 단원고 고창석(사고 당시 40세) 교사는 지난 2014년 3월 단원고로 발령받은 지 한 달여 만에 사고를 당했다. 세월호 사고 당일 "빨리 나가라"고 객실 곳곳을 뛰어다니며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던 모습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제자들의 탈출을 돕던 자신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했다.

 제자들은 고슴도치 머리의 그를 '또치쌤'이라고 부르며 따랐다.

 단원고 인성생활부장 양승진(사고 당시 59세) 교사는 '단원고 지킴이'였다. 오전 6시40분이면 출근해 하얀 장갑을 끼고 호루라기를 불며 학생들의 등굣길을 지켰다.

 학교 뒷산 주말농장에 사과나무를 심고 천년초를 키웠고 이를 팔아 '천년초 장학금'을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제자들을 도왔다. 참사 당일에도 자신이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제자에게 벗어주고 학생들이 있던 배 안으로 뛰어들어간 뒤 빠져 나오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3년여만에 세월호가 물 위로 떠오른 23일은 그의 부부 결혼기념일이었다.

 ◇권재근·혁규 부자, 이영숙씨

 권재근(사고 당시 51세)씨는 베트남 출신 아내 한윤지(당시 29세)씨, 아들 혁규(당시 6세)군, 딸 지연 (당시 5세)양과 함께 감귤농장을 운영하기 위해 제주로 귀농하던 길이었다.

 아내 한씨는 시신이 발견됐지만 권씨와 아들은 여전히 뭍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유일하게 생존한 지연양은 친가에서 돌보고 있다. 재근씨의 친형 권오복(63)씨는 생업을 접고 동생과 조카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팽목항을 지키고 있다. 새 삶을 그렸던 가족들의 꿈이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아버렸다.

 16년 전 남편과 사별한 이영숙(당시 55세)씨는 1년 뒤 외아들과 제주도에서 살기 위해 짐을 싣고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부산에서 일하는 아들은 제주로 파견 올 예정이었다. 과거 아들과 함께 관광을 왔다가 제주에 정착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그는 올레길을 아들과 함께 걷고 싶었던 꿈을 이루지 못한채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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