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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브렉시트 선언]유럽의 운명, 두 여성에 달렸다…메이 대 메르켈

등록 2017.03.29 1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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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AP/뉴시스】올 1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테리사 메이 영국총리. 그는 런던의 의사당 앞 테러사건에 대해 22일 밤(현지시간) 심야성명을 발표, 영국국민은 테러에 굴복하지 않고 정상적인 활동을 전개할 것을 강조했다. 2017.03.23

【워싱턴=AP/뉴시스】올 1월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테리사 메이 영국총리.  그는 런던의 의사당 앞 테러사건에 대해 22일  밤(현지시간) 심야성명을 발표,  영국국민은  테러에 굴복하지 않고 정상적인 활동을 전개할 것을 강조했다. 2017.03.23

【서울=뉴시스】이지예 기자 =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이 막을 올리면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두 여성 정치인의 손에 유럽의 운명이 쥐어졌다.

 메이 총리는 영국의 선봉장으로서, 메르켈 총리는 EU의 사실상 1인자로서 브렉시트 협상 과정에서 각자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양보 없는 줄다리기를 벌일 전망이다.

 메이 총리는 29일(현지시간) '리스본 조약 50조'(브렉시트 협상 개시)를 발동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EU에 제출한다. 이날을 기점으로 앞으로 2년간 영국과 EU의 '이혼 절차'가 진행된다.

 메이 총리는 서명하기 앞서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메르켈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하고 서한의 내용에 관해 미리 설명했다.

 메르켈은 지난 11년간 유로존 경제 침체, 난민 대량 유입 등 역내 위기 해결을 주도하며 EU의 독보적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안정적인 국내 지지 기반을 바탕으로 9월 독일 총선에서 4연임을 노리고 있다. 

 메르켈은 영국의 '체리 피킹'(유리한 것만 챙기는 행위)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국이 자본, 인력, 상품, 서비스 등 '4대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야 EU 단일시장 접근권을 주겠다고 거듭 밝혔다.

 메이는 아예 '하드 브렉시트'(단일시장-관세동맹 탈퇴)를 천명하며 맞섰다. 그는 "'배드 딜' 보다 '노 딜'이 낫다"는 표현을 썼다. 만족스러운 합의가 없다면 협상 타결 없는 EU 탈퇴를 무릅쓰겠다는 엄포다.

 브렉시트로 대립하고 있지만 사실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많다. 메이(1956년생)와 메르켈(1954년생)은 전후 세대의 동년배다. 둘다 아버지가 기독교 목사다. 결혼은 했지만 자녀는 두지 않았다는 점도 같다.

 둘 모두 신중하고 침착한 성격으로 정평이 났다. 기독교 보수주의를 바탕으로 실용적 정치 노선을 추구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영국과 독일이 서방의 핵심 동맹국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둘은 꽤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국 장관은 폴리티코에 "어쩌면 둘은 너무 비슷한 지도 모르겠다"며 메이는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인 마거릿 대처와 비교하기 보다 '영국판 메르켈'이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브렉시트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메이가 EU 탈퇴 뒤 영국의 손해를 충분히 만회할 대책을 찾으려 한다면, 메르켈은 회원국의 탈퇴 도미노를 멈추고 EU라는 공동체를 지켜내야 한다.

【브뤼셀=AP/뉴시스】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17.3.13.

【브뤼셀=AP/뉴시스】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10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17.3.13.

 두 정상의 입장 차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잘 드러났다. 메이는 지난 1월 트럼프 취임 직후 해외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그를 만나 '자국 우선주의' 기조에 발을 맞췄다.

 메르켈은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에서 이견을 그대로 보여줬다. 메르켈은 본인이 원하든 않든 서구 자유주의 가치의 '수호자'라는 별칭을 달고 EU와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메르켈은 영국과 최대한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브렉시트에 더해 경제 안보 위기, 극우 포퓰리즘 득세 등의 문제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인 EU를 지키는게 그에게는 최우선 순위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메르켈 총리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융커 위원장 등 다른 EU 지도자보다 신중한 어조로 브렉시트를 평가하면서 상대적으로 영국에 유화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르켈 총리가 EU 내 강경한 브렉시트 반대 국가들을 달래면서 영국 내 독일과 EU 시민의 권리도 지켜내는 방향으로 합의를 이끄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독일 외교관계위원회의 다니엘라 슈바우처는 뉴욕타임스(NYT)에 메르켈은 침착하고 전략적이라며 유럽 안팎에서 갖가지 위협들이 터져 나오고 있는 현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기질이라고 강조했다.

 메이 역시 연륜 있는 정치인이다. 그는 하원의원을 거쳐 작년 총리 취임 전까지 6년간 내무장관으로 일했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은 그를 "영리하고 사려깊으며 절제력 있고 박식하다"고 평가했다.

 메이의 전기를 집필 중인 작가 로사 프린스는 영국과 독일이 브렉시트 과정에서 실용적 관계를 구축하는 일이 쉽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분별있는 두 여성의 지휘 아래서라면 분명 확률이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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