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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핫한 연출가 이보 반 호브 "21세기 연극 역할 커질것"

등록 2017.03.30 15:46:34수정 2017.03.30 15: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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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보 반 호브, 벨기에 출신 연출가. 2017.03.30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보 반 호브, 벨기에 출신 연출가. 2017.03.30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소설 '파운틴헤드'에서는 선택이 부각됩니다. 공동체의 일부가 될 지 개인으로 남을 지에 대한 선택이 대립하죠. 이러한 질문 자체가, 우리의 삶에 중요한 질문이에요."  

 벨기에 출신의 세계에서 가장 핫한 연출가인 이보 반 호브(59)는 30일 오전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열린 연극 '파운틴헤드' 간담회에서 "예술가 역시 사회 공동체의 일부지만 예술가로서 자신을 얼만큼 믿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는 31일부터 4월2일까지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파운틴헤드'는 러시아 태생의 미국 작가 아인 랜드(1905~1982)가 1943년 발표한 동명 작품이 원작이다. 지금까지 2500만부 이상 팔리며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에게 필독서로 꼽힌다.

 번영을 구가하며 앞 다퉈 마천루를 더 높이 세워 올리던 1920~30년대 미국이 배경. 관습에 대한 순응, 다수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오직 자신만의 신념과 예술적 가치관에 따라 건축가로서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주인공 '하워드 로크'의 폭풍 같은 삶을 그린다.

 1957년 발표한 소설로 미국의 몰락을 그린 '아틀라스'를 통해 현지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랜드의 사상은 작품에서 한 인물을 영웅화시킴으로써 드러난다. 인물의 성취와 이성이 유일한 절대적 요소이자, 가장 고귀한 활동인 것으로 그려낸다.  

 '파운틴헤드'에서 모더니즘 건축 양식에 심취한 로크가 그렇다. 건축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지닌 개인으로서 언제나 이성의 원칙에 따라 행동하며, 대중이 원하는 헬레니즘 건축 양식과 타협하지 않고 그의 일생에 걸쳐 대항해 나간다.

【서울=뉴시스】이보 반 호브, 벨기에 출신 연출가. 2017.03.30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보 반 호브, 벨기에 출신 연출가. 2017.03.30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사람들 요구에 맞추는 등 사회적 평판과 성공에 매달리며 오로지 야망으로 점철된 길을 걷는 건축가 '피터 키팅'이 그의 반대편에 있다.

 두 사람을 통해 창작의 본질, 예술적 진정성, 전통과 혁신을 그리며 특히 개인의 자유의지와 이를 구속하는 집단주의 사이에서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과 마주하게 한다.  

 무려 750쪽에 달하는 방대한 원작을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버린 반 호브는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과 이야기 속 철학에 매료, 이를 연극화하기로 결심했다.  

 "하워드 로크와 피터 키팅으로 상징화되는 대립은 제게도 중요한 주제였습니다. 예술가로서 고민해야 하는 선택의 지점을 발견한 거죠. 이상을 좇아야 하는지 아니면 관객의 요구에 순응하거나 타협을 해야 할 지가 고민의 지점이죠. 소설 속 그 대립이 흥미로웠어요. 랜드는 이상주의자인 로크의 편을 들어주지만 저는 양쪽의 관점을 모두 보여주고 싶었어요."

 반 호브는 '파운틴헤드'를 150쪽 분량의 연극으로 압축했는데 이 소설이 무대로 옮겨진 건 이 작품이 처음이다. 반 호브가 이끄는 네덜란드의 토닐그룹 암스테르담(TA)이 2014년 6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초연했다. 그 해 여름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선보여지며 찬사를 받았다. 올해 말에는 미국 등지에서 공연이 예정됐다.  

【서울=뉴시스】이보 반 호브, 벨기에 출신 연출가. 2017.03.30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보 반 호브, 벨기에 출신 연출가. 2017.03.30 (사진 = LG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하지만 연극으로 옮기기까지 과정은 험난했다. 2007년 이 소설을 처음 읽고 바로 연극화하기로 했으나 저작권을 얻는데 수년이 걸렸다. 소설을 연극으로 옮긴다고 했을 때 비평가들은 뚜렷한 정치색을 지닌 책을 연극으로 옮긴다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저는 복합적인 것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술가로서 저는 하워드 로크가 되고 싶어요. 하지만 시민으로서의 로크는 극단적인 사람일 수 있죠.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 하는 사람이거든요. 세금도 낼 필요 없고 건강 보험도 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돌봐야지, 다른 사람을 돌 볼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하죠. 하지만 저는 시민으로서 생각했을 때 기꺼이 세금도 내고 건강 보험료도 내요. 양식의 삶을 살아야 하고, 일종의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죠."

 원작에서 상당 부분을 덜어냈지만 과거의 전통적인 건축디자인들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는 건축기업가 가이 프랭컨, 이타주의의 가면을 쓰고 대중을 조종하는 지식인 엘스워스 투히, 대중과 영합하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론재벌 게일 와이낸드, 로크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도미니크의 이야기를 담다 보니 러닝타임이 무려 4시간에 달한다.

 무대에서 보기 힘든 건축가의 이야기인데다가 규모도 방대해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큰 도전작이었다.

 "배우들에게 건축가처럼 도면을 그리고 디자인을 할 수 있도록 주문했어요. 그래서 로크가 무대 위에서 도면을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죠. 무대 위에서 건축의 실제적인 예술이 표현되는 거예요. 영상이나 라이브 음악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서울=뉴시스】연극 '파운틴헤드'. 2017.03.30 (사진 = Jan Versweyveld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연극 '파운틴헤드'. 2017.03.30 (사진 = Jan Versweyveld 제공)  [email protected] 

 2012년 LG아트센터에서 '오프닝 나이트'로 한국 관객을 처음 만난 반 호브는 1981년 자신이 쓴 작품을 직접 무대에 올리면서 연극을 시작했다.

 이후 플랜더스 지방의 대표적인 극단을 두루 거치면서 성장한 그는 현재 세계 연극계의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영국의 영 빅 씨어터와 함께 만든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으로 2015년과 지난해 영국과 미국의 권위 있는 공연예술상인 올리비에상과 토니상의 '작품상'과 '연출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각광받는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프랑스의 코메디 프랑세즈, 영국의 내셔널 씨어터, 독일의 샤우뷔네 베를린, 도이체스 샤우슈필하우스 함부르크, 슈투트가르트 국립극장, 미국의 뉴욕 씨어터 워크숍 등 세계 공연예술 중심지를 대표하는 극장들과 함께 작품을 제작하며, TA와 함께 세계를 누비고 있다.

 지난해 타계한 글램록 스타 데이비드 보위가 쓴 뮤지컬 '라자러스(Lazarus)'와 오페라를 비롯해 최근에는 TV와 영화 연출까지 도전하고 있다. 오는 4월에는 이탈리아의 거장 감독 루치노 비스콘티의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 '강박관념(Obsession)'을 할리우드 스타 주드 로와 함께 런던의 바비칸 센터에서 세계 초연할 예정이다.  

 반 호브는 자신이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이유에 대해 "스무 살 때 세상을 향해 마음이 열렸는데, 다른 예술가와 연출가의 작품이 어떠한지 궁금했고 많이 보러 다녔다"며 "이후 세계라는 맥락 안에서 작품을 만들려고 했고 그래서 지금 국제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여겼다.  

【서울=뉴시스】연극 '파운틴헤드'. 2017.03.30 (사진 = Jan Versweyveld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연극 '파운틴헤드'. 2017.03.30 (사진 = Jan Versweyveld 제공)  [email protected] 

 "성공과는 다른 개념으로 세계에서 제 작품과 생각이 존중을 받고 이해가 된다는 자체가 즐겁죠. '파운틴헤드'도 다른 문화권에서 존중을 받는데, 한국관객들 역시 좋아해주시고 이해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미국 독립영화계의 대부 존 카사베츠, 스웨덴의 전설적인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 등 거장 감독들의 영화를 무대로 옮기고 작품에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반 호브는 "21세기에 연극은 더 큰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믿었다.

 물론 "디지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지금 여러분들(기자들)도 컴퓨터를 보느라 저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있지만요"라고 웃으며 "그렇기 때문에 연극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컴퓨터로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실제 사람은 만날 수 없어요. 사람들이 극장에 가는 이유죠. 현장성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컴퓨터가 제공할 수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더 연극을 좋아하고 더 중요하게 여길 겁니다."  

 왜 연극 연출가가 됐냐는 질문에 "존재론적 질문이에요. 왜 지구에 존재하는가랑 비슷한 이야기"라고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연극을 통해서 저라는 사람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비전도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인생에서 행복을 주는 직업을 찾는 것이었어요. 18세가 될 때까지만 해도 연출가가 될 지 몰랐습니다. ('파운틴헤드' 속) 키팅처럼 기회주의적으로 선택하면 불행할 거 같았어요. 마음의 소리를 따랐고 연극을 하게 됐죠. 사랑에 빠지는 일과 비슷해요. 이유를 잘 모르겠고 쉽게 설명하지 못하죠. 하지만 좋은 결혼생활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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