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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사법부 관료화' 드러난 인권법연구회 사태

등록 2017.04.20 13: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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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승모 기자

【서울=뉴시스】김승모 기자

【서울=뉴시스】김승모 기자 = "이번 사태로 명확히 드러난 사실이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행정 시스템과 그 속에서 돌아가는 법관들의 관료 문화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파문까지 몰고 온 국제인권법연구회 사태를 조사한 진상조사위원회 발표를 보고 어느 일선 판사가 이런 평가를 내놨다.

 법관 독립을 최고 가치로 꼽는 사법부가 실상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법관들을 '줄' 세우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고, 결과적으로 관료 문화에 빠져있다는 우려다. 소위 찍히거나 윗분 눈 밖에 나면 좋을 게 없다는 현 사법부 분위기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인권법연구회 소속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인사모)'을 주목한 시점은 2015년 8월이다. 당시는 양 대법원장의 역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사법부가 총력을 기울이던 때다.

 하지만 인사모는 상고법원 도입에 대한 찬반 토론 결과 참석자 중 18명이 반대하고 1명이 찬성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이런 활동은 양 대법원장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을 게 뻔하다. 여기에 인사모는 지난 3월 대법원장 권한과 법관인사 제도 개선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다.

 인사모가 학술대회를 준비한 2016년말부터 지난 3월 사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과 맞물려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대법원장 권한에 대한 지적이 불붙은 시점이다. 또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사법부 관료화 저지 필요성과 대법원장 인사권한 축소 논의가 활발한 시기였다.

 이런 민감한 시기에 사법부 역점 사업과 대법원장 뜻을 거스르는 인사모 활동은 눈엣가시로 보였을 테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인사모 학술대회 저지 의혹이 불거졌고 조사 결과 이모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의 부당지시 등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일부 확인됐다. 조사위는 실장 회의에서 인사모 대책 문건으로 논의가 이뤄진 점을 볼 때 법원행정처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사태가 이 상임위원 탓인지 의문이다. 법원행정처 책임이라는 의미도 모호하다. 양 대법원장 지시로 이뤄졌다는 뜻인지 혹은 고영한 법원행정처장이나 행정처 실·국장 등 다른 고위 법관 지시로 이런 행위가 이뤄졌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법원 내부에서는 "이 상임위원이 결국 총대를 멘 것 아니냐. 꼬리 자르기다", "대법원장 역점 사업임을 잘 아는 실무 책임자들의 과잉충성이 원인이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일선 판사들 사이에는 대법원장이나 법원장 정책에 반하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불이익이 없더라도 결국 상사를 의식하거나 눈치를 본다면 재판을 맡는 법관의 독립성에도 악영향을 줄 소지가 크다. 

 대외적으로 법관 독립을 부르짖는 사법부가 스스로 화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이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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