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원칙 안지킨 건설현장 곳곳이 위험'...되짚어본 역삼동 철거공사 붕괴현장

등록 2017.04.30 07:00:0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건물 철거 중 붕괴사고 일어난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매몰자를 찾고 있다 2017.04.22. myjs@newsis.com

【서울=뉴시스】박대로 기자 =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건물 철거공사 과정에서 건물이 내려앉으면서 몽골인 노동자 2명이 매몰됐다가 구조되는 일이 있었다.

 원칙을 지키지 않고 매뉴얼을 소홀히한 현장 상황은 우리의 안전불감증을 다시한번 드러냈다.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불과 3개월전인 올 1월 종로구 낙원동에서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발생했고 날씨가 풀리면서 건설공사가 본격화되는 시기란 점에서 당시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했던 구조대원들의 설명을 통해 급박했던 상황을 재구성해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자 한다.

 이날 오전 10시께 강남구 역삼동 지상 5층 지하 3층짜리 편입학원 건물에서는 철거공사가 한창이었다. 굴삭기가 철거에 동원됐고 현장에는 공사감독자 2명, 감리자 1명, 굴삭기 기사 1명, 분진 제거를 위한 살수작업자 2명이 있었다.

 그러던중 굴삭기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바닥이 갑자기 붕괴됐고 큰 구멍이 뚫리며 굴삭기와 작업자들이 아래로 추락했다.

 붕괴의 충격으로 공사장 가림막은 연신 펄럭였고 콘크리트 덩어리와 잡동사니가 인근 도로로 날아들었다. 간발의 차로 봉변을 피한 시민은 황급히 현장을 벗어났고 밖에 있던 공사 관계자는 붕괴현장으로 뛰어갔다.

 붕괴 직후 공사감독자와 감리자, 굴삭기기사는 대피에 성공했지만 살수작업을 하던 몽골인 노동자 J(37)씨와 D(33)씨는 빠져나가지 못했다.

 굴삭기 바로 옆에 있던 J씨는 다행히 하반신만 묻혀 상반신은 밖으로 노출돼 있었지만 D씨는 콘크리트 더미에 완전히 파묻혀 위치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건물 철거 중 붕괴사고 일어난 22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매몰자(하얀 헬멧)를 구조하고 있다. 2017.04.22. myjs@newsis.com

 현장에는 철근이 곳곳에 널려있었고 콘크리트 더미와 철근이 엉켜 있어 2차 붕괴 시 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우려가 있었다.

 사고 직후 강남소방서 구조대원들을 비롯해 관악·서초·용산소방서 구조대, 서울 소방본부 특수구조대 등 40여명이 출동했다. 진입 도로가 좁고 추가 붕괴 우려가 커 중장비가 투입되지 못했고 결국 대원들은 손으로 건물 잔해를 치워가며 J씨와 D씨를 구조해야 했다.

 하반신만 매몰된 J씨는 사고 발생 2시간만인 낮 12시께 구조됐다. 붕괴 당시 충격으로 발목은 골절됐지만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하지만 매몰된 D씨가 문제였다. 매몰 위치가 어디인지 파악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파헤쳤다가는 곳곳에 널려 있는 철근 탓에 D씨가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있었다.

 구조방법을 논의하던중 강남소방서 대원 1명이 이재두 구조대장에게 "대장님, 저기 돌이 움직입니다"라고 말했다. 대원이 가리킨 곳을 봤지만 움직임은 없었다. 유심히 지켜보던 그 대원은 곧 "또 움직인다"고 말했다.

 심상찮은 낌새에 대원들은 모두 그쪽을 주시했다. 그러자 정말로 돌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달싹거리는 돌을 치우니 발바닥이 드러났다. D씨는 붕괴때 하늘을 바라보며 누운 상태로 파묻혔고 특히 상반신이 하반신보다 아래에 있는 불편한 자세였다. 구조대원들의 목소리가 들리자 D씨가 오른발을 있는 힘껏 움직여 자신의 위치를 알린 것이었다.

 구조대원들은 통역을 통해 D씨에게 말을 걸어 진정시키면서 발 주위 건물 잔해를 제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다행히 D씨는 철근에 의한 관통상 없이 온전히 매몰돼있었고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원칙 안지킨 건설현장 곳곳이 위험'...되짚어본 역삼동 철거공사 붕괴현장

 그러나 호흡이 곤란해지면서 D씨의 상태가 급속히 악화됐다. 구조대는 통역을 통해 "숨 쉴 공간을 마련하라. 작업을 하다보면 흙가루가 떨어지니 뱉어내라"고 조언했다. 잔해제거 작업이 막바지에 다다를 때쯤에는 D씨의 의식이 흐려지는 게 감지됐다. 손발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지더니 의식을 잃은 듯 손발이 축 처졌다.

 마음이 급해진 구조대원들은 잔해 제거를 생략하고 D씨를 급히 밖으로 꺼냈다. 목 등에 철근이 박힐까봐 주위의 잔해를 제거한 뒤 안전하게 꺼내려 했지만 이제 그럴 여유가 없었다.

 꺼내놓고 보니 D씨의 코와 입에 흙이 가득했다. 긴급히 흉부압박을 시작하자 D씨는 겨우 의식을 되찾아 흙을 뱉어냈고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때가 사고 발생 3시간30분여만인 오후 1시30분께였다.

 현장을 지휘한 이재두 강남소방서 구조대장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우리 강남구조대는 구조뿐만 아니라 화재진압 건수에서도 전국 1~2위를 한다. 강남이 번화해서 출동이 많이 없을 것 같지만 서울에서도 전국에서도 1~2위를 할 정도"라며 "(출동이 잦아) 경험이 많은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대응해 구조에 성공했다. 경험과 반드시 구조하려는 마음가짐이 주효한 듯하다"고 평했다.

 이 대장은 이번 사고에 관해선 "철거업체가 나름 최선을 다한다고 한 듯한데 무게를 못 버티니 내려앉은 것이다. 지지대를 촘촘히 박아놓고 작업을 해야 했다"며 "신호위반과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가 나듯이 원칙을 안 지키면 (어디서든) 사고가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