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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징용' 최고 전문가 정혜경 "한일 협상 '무기'는 진상 조사"

등록 2017.05.14 14:5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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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터널의 끝을 향해'의 저자 정혜경 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 조사위원회 조사과장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05.14.  stoweon@newsis.com

【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터널의 끝을 향해'의 저자 정혜경 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 조사위원회 조사과장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05.14.  [email protected]

11년간 일제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에서 주축 활동
 희생자 유골 봉환, 명부 입수 등 진상 조사 큰 진척
 위원회 활동 종료 후 조사 더뎌…유골 봉환도 중단
 "정부 차원 진상조사 없이 한일관계 개선 어려워"
 "우리가 먼저 피해 입증해야 일본 압박할 수 있다"

【서울=뉴시스】이혜원 기자 = "일본에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라고 얘기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에요. 일본 입장에선 무시하면 그만이니까. 우리 스스로 먼저 피해 진상규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일본에도 요구할 수 있어요."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경색된 한일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이 우선 과거사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근 저서 '터널의 끝을 향해-아시아태평양전쟁이 남긴 대일역사문제 해법 찾기'를 발간한 정 위원은 14일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지난 11년간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위원회에 있으면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과거사 청산에 있어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얼마 전 외교부 동북아국은 이 책에 주목해 한 번에 다량을 구매해 직원들에게 배포했으며, 정 위원은 지난 1일 외교부 직원들을 상대로 직접 강연도 가진 바 있다.

 정 위원은 2004년부터 2015년 12월까지 강제동원 피해조사위 주축으로서 조사과장 등을 맡아 일했다. 주요 업무는 강제동원 증거 발굴과 피해자 지원으로, 일제 징용 관련 자료 수집 및 일본 정부나 전범기업의 책임 추적, 피해자 조사 등과 관련된 전방위적 활동을 펼쳤다.

 "11년간 활동에서 변곡점이 된 사건은 유골 봉환과 주일대사관 명부 발견이었어요. 특히 유골 봉환은 일본인이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게 한 계기가 됐죠."

 2008년 1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진행된 유텐지(祐天寺) 안치 유골 봉환은 일본이 처음 경험한 '봉인 해제'였다.

 정 위원은 "일본 정부가 과거를 봉인해 감춘 탓에 일본 국민들은 가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유골 봉환식에서 유족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일본인들은 과거에 일본이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3년 주일대사관에서 이승만 정부 시절 작성한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가 발견된 사건은 진상조사의 핵심 변곡점이었다.

 정 위원은 "당시 발견된 명부는 피해 증명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 유족들이 자신의 조상이 강제동원 당했다고 주장해도 당사자가 사망한 상태에선 증명할 방법이 없다. 2013년 발견된 명부는 피해 사실을 입증해줄 큰 증거자료"라고 강조했다.

 당시 열악한 환경에서도 정부가 자국민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 위원은 "워낙 물자가 부족한 시대이다 보니 일본인들이 쓰다 만 공문서를 이면지로 사용해 명부를 작성했다. 일본에 피해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정부가 한 사람 한 사람 찾아가 기록한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터널의 끝을 향해'의 저자 정혜경 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 조사위원회 조사과장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05.14.  stoweon@newsis.com

【서울=뉴시스】권현구 기자 = '터널의 끝을 향해'의 저자 정혜경 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 조사위원회 조사과장이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05.14.  [email protected]

 하지만 위원회 활동 종료로 진상 규명 활동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2015년 11월 행정자치부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유족회 대부분이 위원회 존속을 반대하고 있다"는 이유로 위원회 활동 기간 연장에 반대했다. 결국 위원회는 다음달 말 문을 닫게 됐다.

 정재근 당시 행자부 차관이 근거 자료로 제출한 "31개 유족회 중 29곳이 위원회 폐지에 찬성한다"는 내용의 명단은 조작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뉴시스 2016년 5월23일 '[단독]일제징용 피해자들 "정부가 공문서 조작해 진상조사위 해산"…행자부 고발 예정' 기사 참조>

 위원회 업무는 현재 행자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지원과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연구과로 이관된 상태이나, 뚜렷한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일본과 시베리아에서 발굴해야 할 유골만 23만1000여구에 이르지만 진전을 못 보고 있어요. 발굴된 유골조차 봉환이 어려운 상황이죠."

 정 위원은 국내 유골 수습 관련 인프라 부족으로 충분히 찾을 수 있는 유골을 가족 품으로 돌려주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정 위원은 "일본이 발굴한 유골엔 한국과 일본 뿐만 아니라 중국, 필리핀 등 다른 민족 유골도 섞여있다. 일본은 DNA 확인을 거쳐 이 중 일본인 유골만 분류한 뒤 나머지는 전몰자 묘원에 합골해놓은 상태"라며 "우리도 DNA 은행을 만들면 얼마든지 한국인 유골을 찾을 수 있지만 예산 통과가 안 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정 위원에 따르면 DNA 은행 설치에 필요한 비용은 2억원이다.

 자료 활용을 위한 인프라도 열악한 상황이다. 정 위원은 "지금까지 발견된 피해자 명부가 180만건에 이르지만 학자들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에서 자료를 보관 중인데, 공개하지 않다 보니 접근 자체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가기록원에서 자료를 공개하려면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사회적 요구가 없다보니 관련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진상조사가 피해 보상과 외교 문제에 직결되는 만큼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게 정 위원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이다.

 정 위원은 "진상 조사는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어디서 어떤 피해를 받았는지를 확인하면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줄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진다. 진상조사보고서는 유네스코 유산 등록에도 중요한 자료"고 설명했다.

 이어 "진상조사는 일종의 '무기'다.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로 외교 문제에서 우리가 먼저 일본을 압박할 수 있다"며 "보고서를 바탕으로 일본에 추도비 설립이나 강제동원 관련 추가 자료 제공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 위원은 "강제동원 피해조사는 다른 국가와 협력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 위원은 "자료가 일본, 러시아, 중국 등에 많은데 개인적으론 접근할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는 특히 기록물을 국가가 소유해 우리 정부 차원에서 요구해야 한다"며 "현재 행자부 임시조직으로 있는 강제동원 조사 업무를 정규조직화하거나 피해조사위원회를 회복시켜 진상규명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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