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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백기완 "임을 위한 행진곡, 다시는 억압돼선 안 돼"

등록 2017.05.17 14:3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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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제창곡으로 다시 지정된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인 백기완 소장은 “묏비나리는 매 맞아 죽어가던 나를 일으켰던 달구질이요 을러대기야.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 것을 내것, 네 것하면서 따질 이유가 없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가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 2017.05.17.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제창곡으로 다시 지정된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인 백기완 소장은 “묏비나리는 매 맞아 죽어가던 나를 일으켰던 달구질이요 을러대기야.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 것을 내것, 네 것하면서 따질 이유가 없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가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 2017.05.17. [email protected]

임을 위한 행진곡 모태 백기완作 옥중시 '묏비나리'
 "묏비나리는 피눈물로 쓰고 목숨으로 쳤던 아우성"
 "누구나 어디서나 임을 위한 행진곡 흥얼거릴 수 있어야"
 "5.18 기념만해서는 안 돼…객관적으로 인정받아야"
 "촛불정신으로 탄생한 정권, 권력 아닌 민심 이바지해야"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임을 위한 행진곡은 국가주의적인 탄압을 받아 왔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행사장에서만 부르게 하지 말고, 모든 민중과 시민사회·국가기관·학교·공무원 가리지 않고 부르고 흥얼거릴 수 있도록 해야 해."

 16일 오전 11시10분 서울 종로구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난 백기완 소장의 목소리에는 울림이 있었다. 85세 노구의 백 소장은 연신 어조를 높였다 낮췄다 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과 그 모태가 되는 장편시 '묏비나리', 그리고 5·18 정신에 대해 역설했다.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2017.05.17 (사진 = 광주광역시 홈페이지)  s.won@newsis.com

【서울=뉴시스】심동준 기자 =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2017.05.17 (사진 = 광주광역시 홈페이지)  [email protected]

 "지난해까지만 해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사실상 5·18 행사장에서 다 같이 부르지 못하게 했어. 이번에 제창할 수 있게 한 것은 잘한 일이야. 그런데 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어. 그동안 체제적으로 죽여오고 인정하지 않았던 5·18을 되살려야 해."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국민이 애창한 노래다. 지난 2003년 5·18 민주화운동 첫 기념식에서부터 2008년까지 본행사에서 제창됐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종북 시비'에 휩싸이면서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는 식전 행사에서 일부 인원만 부르도록 제한됐다.

 문재인 정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릴 제37주년 기념식에서 제창할 수 있도록 했다. 9년 만에 다시 5·18 기념식 본행사에서 참석자 모두가 한 목소리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된 것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 모태 묏비나리…"나를 일으킨 달구질이요 을러대기"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 소장의 옥중 장편시인 '묏비나리'에서 파생됐다. 소설가 황석영과 대학 가요제 출신 김종률은 1982년 3월 노래극 '넋 풀이·빛의 결혼식'에 쓰기 위해 묏비나리의 구절을 일부 빌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만들었다.

 백 소장은 1932년 1월24일 황해남도 은율에서 태어나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한 뒤 박정희·전두환 정부에 반대하는 운동의 최전선에서 섰다. 이 과정에서 1974년 2월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지목돼 옥중고도 치렀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제창곡으로 다시 지정된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인 백기완 소장은 “묏비나리는 매 맞아 죽어가던 나를 일으켰던 달구질이요 을러대기야.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 것을 내것, 네 것하면서 따질 이유가 없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가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 2017.05.17.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제창곡으로 다시 지정된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인 백기완 소장은 “묏비나리는 매 맞아 죽어가던 나를 일으켰던 달구질이요 을러대기야.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 것을 내것, 네 것하면서 따질 이유가 없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가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 2017.05.17. [email protected]

 그는 1979년 11월24일 서울 중구 명동 YWCA 강당에서 열린 위장결혼식을 주도해 계엄법을 위반한 혐의로 붙잡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수감 생활동안에는 호되게 고문당했다. 묏비나리는 1982년 10월 형무소에서 탄생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묏비나리는 매 맞아 죽어가던 나를 일으켰던 달구질이요 을러대기였어. 이런 노랫말에 의존하지 않았으면 나는 죽었어. 몸무게가 80㎏가 넘을 땐데 38㎏까지 떨어졌어. 그때 내가 매일 중얼거리면서 감옥에서 썼던 입으로 쓴 시가 묏비나리야. 피눈물로 쓰고 목숨으로 아우성 친 거지."

 ◇"비나리는 민중의 문학, 임을 위한 행진곡 마음껏 부를 수 있어야"

 백 소장은 묏비나리가 민중이 문학하는 방식인 '비나리'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묏비나리에서 나온 임을 위한 행진곡도 마찬가지다. 그는 비나리를 '일꾼의 달구질이자 을러대기'라고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마음껏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묏비나리는 내 입에서 나온 거지만 형식은 민중의 것이야. 그걸 좀 더 널리 읊조릴 수 있고, 그런 형식으로 글도 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는 거야. 임을 위한 행진곡, 묏비나리를 제한 없이 부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짜 예술과 창작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 방법이야. 기념식에서만 부른다, 이러는 건 정치적 실천에 이르지 못하고 행태에 머무르는 거지."

 실제로 그는 민중 속에서 묏비나리를 만난 적이 있다. 1983년 2월 대구에서 열린 '기독교예장 청년대회'에서였다. 그는 당시 청년들이 일제히 일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을 듣고 한동안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제창곡으로 다시 지정된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인 백기완 소장은 “묏비나리는 매 맞아 죽어가던 나를 일으켰던 달구질이요 을러대기야.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 것을 내것, 네 것하면서 따질 이유가 없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가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 2017.05.17.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제창곡으로 다시 지정된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인 백기완 소장은 “묏비나리는 매 맞아 죽어가던 나를 일으켰던 달구질이요 을러대기야.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 것을 내것, 네 것하면서 따질 이유가 없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가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 2017.05.17. [email protected]

 "나는 지금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는다거나 묏비나리를 읊으면 소름이 끼쳐. 감옥 안 독방에서 춥고, 못 먹고 얻어맞고. 그런 것들이 기억나. 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누가 부른다거나 노래가 나오면 눈이 뜨거워져. 지금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뭔가 억압받는 기분이야. 내 입에서 나온 묏비나리지만 내가 마음 높고 읊조릴 수 없었잖아. 지금도 마찬가지야."

 백 소장은 이런 묏비나리와 임을 행진곡의 '원작자'로 불리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민중의 외침인 비나리를 개인 소유물이라는 관점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나만 비나리 한 게 아니야. 일꾼들이 다 비나리 했지.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 것을 내 것, 네 것 하면서 따질 이유가 없어. 내 비나리가 아니라 민중들의 전통이란 말이야. 많은 비나리 중 백 아무개 할아버지가 했던 것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 억압이 자율규제 낳아…부를 자유 보장해야"

 백 소장은 묏비나리와 임을 위한 행진곡, 그 속에 담긴 5·18 민주화 운동 정신이 사회·구조적으로 억압받았다고 여겼다. 억압으로 생긴 자율규제가 국민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들었다는 해석도 했다. 표현에 대한 자기검열은 기회주의적인 동시에 체제 내적 정서의 소산이라고 봤다. .

 "정부 시책뿐만 아니라 국가주의가 지금도 임을 위한 행진곡과 5·18을 탄압하고 있어. 얼마나 못 부르게 했는지, 우리가 자율적으로 부르지 않을 때도 많아. 시민사회에서 촛불시위하는 사람들은 일부러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기회를 만들지 않았어. 시민을 더 많이 모으기 위해 일부러 안 불렀어. 노래를 싫어한 게 아니라 탄압이 심하니 자율적으로 규제했다는 거야. '어떤 말을 하면 불이익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는 이런 것들은 기회주의적이야. 체제의 지배적 정서의 포로가 됐다고 볼 수도 있어. 어디서든 마음껏 불러도 좋다, 그렇게 해야 그간 5·18 항쟁과 임을 위한 행진곡에 가해진 억압을 해제할 수 있는 거야."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제창곡으로 다시 지정된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손 인사를 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인 백기완 소장은 “묏비나리는 매 맞아 죽어가던 나를 일으켰던 달구질이요 을러대기야.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 것을 내것, 네 것하면서 따질 이유가 없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가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 2017.05.17.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제창곡으로 다시 지정된 가운데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명륜동 통일문제연구소 사무실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손 인사를 하고 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인 백기완 소장은 “묏비나리는 매 맞아 죽어가던 나를 일으켰던 달구질이요 을러대기야. 투쟁의 현장에서 나온 것을 내것, 네 것하면서 따질 이유가 없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모두가 자유롭게 부를 수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 2017.05.17. [email protected]

 백 소장은 촛불집회 이후 새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일침도 가했다. 그는 묏비나리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를 자유를 보장해 5·18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직언했다.

 "5·18을 기념만 해서는 안 돼. 기념하자고 했던 것은 아니잖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물론 5·18에 대한 역사적, 국가적 평가도 달라져야해. 그 거대한 민주화 운동 때문에 지금 이 땅이 있다는 것. 이러면 5·18을 객관적으로 인정하게 되는 거야. 그러려면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풀어줘야 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누구라도 마음대로 부르고 흥얼거려도 된다, 정부가 보장한다, 이런 선언을 해야 한다는 거야."

 백 소장은 '마지막 충언'이라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이끌었던 촛불집회 얘기를 꺼냈다. 그는 지난해 10월29일부터 지난 4월29일까지 열린 촛불집회에 빠짐 없이 출석했다. 지팡이를 짚고 쩔뚝거리면서 화장실을 들르게 되면 본대회를 놓칠까 싶어 집회 전 물조차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

 "촛불시위 현장에 가보면 사람들이 다 그렇게 즐거워 했어. 자기를 놓았더라고. 자기를 붙들면 돋보이려고 하면서 스스로의 노예가 되는 거거든. 그런데 촛불시위에서는 다 놓았어. 수십만이 빼곡하게 걸어가면서도 다들 즐겁대. 그 거리 자체를 자기 것으로 하려하지 않았던 거야. 이게 촛불 시민의 정신이고 힘이었다 이 말이야. 그로 인해 정권이 새로 탄생했으면 권력만 잡으려거나 유지하려고만 해서는 안 돼. 민심에 이바지하려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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