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유시민·안희정·관객도 눈물…이창재 감독 "노무현처럼 만든 영화"
【서울=뉴시스】영화 '노무현입니다'(감독 이창재)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감독 이창재)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주변 사람 72명과 1만2000분을 인터뷰한 뒤, 이를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영상과 함께 109분으로 추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은 뒤 "머릿속에서 늘 유서를 생각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를 아주 외롭게 두었다"고 말한다. 문 대통령은 특유의 무표정을 하고 있지만, 붉게 상기된 그의 얼굴에는 먼저 간 동지에 대한 다양한 감정이 스치는 듯하다.
유시민 작가는 웃으며 노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풀어내지만, 그의 눈에는 눈물이 차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마찬가지다. 웃으며 말하다가 결국 눈물을 쏟는다. 다른 인터뷰이들도 다르지 않다. 그들의 얼굴에는 그를 알고 그와 함께할 수 있었던 기쁨과 그를 떠내보낸 슬픔, 그리움과 미안함이 같이 있다.
'노무현입니다'에는 정말 사랑했던 사람을 향한 감정에 가까운 모습이 이 작품에 담겼다.
"'노무현입니다'는 노무현처럼 만든 영화다. '노무현 영화'이니까 노무현처럼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마 내 스타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작품일 것이다. 감독은 작품을 만들 때 자신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나. 나 역시 그렇다. 더 이성적이고, 더 분석적이고, 더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그게 내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다르다. 당신은 솔직한 사람이었으니까,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려운 말 싫어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말하려는 사람이었으니까, 영화도 시작하자마자 이화춘씨 인터뷰로 팡 때리고 시작하지 않나. 그런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아야 했다.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가 당신 영화 맞냐고 하더라. 하지만 그게 내겐 더 칭찬이다. 이창재 같은 게 아니라 노무현 같은 게 '노무현입니다'가 돼야 했다."
이창재 감독을 만나 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획은 2014년 10월, 본격적으로 인터뷰에 들어간 게 지난해 4·13 총선 직후였다. 기획 당시는 물론이고, 촬영을 시작했을 때, 그리고 촬영 도중에도 개봉을 전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후 최순실 사태가 터지고 나서도 이 작품의 미래가 불확실한 건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정말 극적인 개봉이 아닐 수 없다. 소감이 어떤가.
【서울=뉴시스】영화 '노무현입니다'(감독 이창재)의 한 장면.
-시사회 반응이 좋았다. 울고 웃는 분위기였다. 지난 4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반응이 매우 좋았던 걸로 알고 있다.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도 꽤 있고, 흥행을 예상하는 이들도 있다.
"이전에 했던 작업들을 돌이켜보면 참 쉽지 않았다. 소재가 호스피스 병동('목숨'), 비구니('길 위에서') 이랬으니까. 촬영하다가 막히면,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당신들이, 여러분들이 나를 통해서 할 말이 있으면 해달라. 단, 할 말이 없다면 날 멈추게 하라.' 이번에도 그렇다. 당신께서(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그렇게 하고 싶은 것 같다. 당신이 이렇게 보이고 싶은가보다, 생각한다."
-'노무현' 그 자체가 연출 방식이었다는 말로 들린다. 영화에는 눈물도 있고, 웃음도 있다. 그리움도 있고, 미안함도 있다. 다양한 감정들이 러닝타임 내내 교차한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너무 과장된 감정들이 작품 안에 가득 차 있는 게 아닐지 우려하기도 했다.
"인터뷰이 중 많은 분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관해 이야기할 때 참 힘들어했다. 엉엉 우는 분도 많았다. 그렇게 만들 수도 있었다. 우는 모습 줌인하면서. 그런데 노 대통령이 그런 사람은 아니지 않나. 그건 노무현스럽지 않다. 조금 울 수는 있어도, 통곡하며 슬퍼하는 사람은 아니었다.(웃음)"
-이미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창작자다. 자신만의 세계도 구축했다. 꼭 이 작품을 해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 아닌가. 이명박·박근혜 정권 하에서 노무현은 말해서는 안 되는 단어였으니까, 작품 활동에 피해가 갈 수도 있었을 거다. 뭔가 결정적인 계기가 있지 않고서는 만들 수 없는 작품이다.
"결정적인 트리거(trigger)가 있었던 건 아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과거에 당신을 덮어놓고 비난했던 적이 있었다. 미안했다. 참 미안했다. 그래서 노제(路祭) 때 안 입던 양복을 입고 나갔던 거다. 그런데 그걸로 해소가 안 되더라. 시중에 나온 노무현 관련 책을 문재인 대통령이 쓴 '운명'까지 다 읽었다. 그때 좀 피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뭔가 비겁한 것 같더라. 노 전 대통령이 죽은지 4~5년이 지나고 있는데, 그에 관한 제대로 된 영화 하나 없는 거다. 아무도 못하고 있었다. '변호인'이 전부인데, 그건 노무현의 시작을 그린 작품이지 않나. 노무현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 위해서는 그 이후의 삶을 담을 필요가 있었다. 사실 '목숨'(2014) 전에 하려고 했는데,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다가 '목숨'을 끝내놓으니까, 그 작품을 통해 워낙 극한에 있는 분들을 자주 만난 뒤였기 때문에 이상하게 두려움이 없어진 상태였다."
【서울=뉴시스】영화 '노무현입니다'(감독 이창재)의 한 장면.
"인간 노무현이다. 노무현을 카메라 앞에 앉힐 수는 없으니까, 주변 분들을 인터뷰하기로 한 거다. 그 분들을 통해서 노무현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그런 기록들이 글로 쓰여진 건 있기는 한데,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관한 깊이 있는 영상은 없다시피 하다. 인터뷰이 한 분 한 분이 모두 노무현으로 보이는, 노무현이 되는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인간 노무현에 대한 답을 찾았나.
"어떻게 한 마디로 말하겠나. 그래도 하나를 꼽아본다면 실존적이라는 거다. 사람이 어려우면 생존을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은 평생 실존을 생각했다.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가. 그건 바로 진실된 사람이었을 거다. 그 부분에 있어서 노 대통령은 결벽증적이었다. 인터뷰에 그런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하나 소개해줄 수 있나.
"극 중에 문재인 대통령이 유서를 읽는 장면이 있지 않나. '너무 많은 사람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그게 노무현이다. 진실되지 않은 실존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욕망이 강하니까 절대 남에게 신세를 못진다. 쓰지 못한 인터뷰 중에 노 대통령 동창이 말해준 일화가 있다. 노 대통령이 사시 공부하려는데, 책 살 돈이 없어서 한동안 울산에 가서 노가다를 했다더라. 4~6개월 정도 하다가 다치는 바람에 고향에 내려온 거다. 그때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해서 함바집에 밥값을 못내고 왔다.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닌 일인데, 당신은 돈을 벌어서 기어코 갚았다더라. 이런 거다. 그렇게는 자기가 못 사는 거다. 단순히 밥값이 문제가 아니고 뭔가 거짓같은 느낌, 그걸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세상을 떠난 이유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참 많이 고통스러웠을 거다."
-오프닝 시퀀스 후 첫 번째 인터뷰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노무현 변호사 시절 그를 감시했던 역할을 한 안기부 요원 이화춘씨 인터뷰였다. 왜 그가 가장 먼저 나와야 했나. 문재인도 있고, 유시민도 있고, 안희정도 있고, 이광재도 있지 않나.
【서울=뉴시스】영화 '노무현입니다'(감독 이창재)의 한 장면.
-마지막 장면 또한 기억에 남는다. '노무현입니다'라는 제목에 참 잘 어울리는 엔딩 시퀀스였다. 노 대통령이 콧노래를 부르며 홀로 거리를 걷는 그 모습에 참 묘한 감동이 있더라. 왜 그 장면이 이 영화의 마지막이어야 했나.
"가장 끌렸던 장면이다. 무조건 이 장면이 엔딩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편집이 잘 안 되고, 일이 잘 안 될 때 이 장면을 봤다. 그리고 참 많이 울었다.(웃음)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이 작품을 어디로 끌고 가야하는지 다시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잘가요 노무현'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이 다큐멘터리의 목표가 그거다. 인간 노무현을 제대로 보여주고, 이제 조금씩 그를 보내는 것. 이 작품이 그 시작이 됐으면 했다. 정말 잘 보내주고 싶었다. '안녕히 가세요', 이 느낌을 엔딩에 담고 싶었다."
-이번엔 인터뷰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클로즈업이 쓰였다. 결국 인터뷰이의 미세한 감정을 담으려는 의도일 것이다. 제대로 본 건지 모르겠지만, 유시민 작가의 눈에는 계속 눈물이 맺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뷰 당시 유 작가에게서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봤다. 그래도 우리는 뷰파인더로 보고 있으니까 다 보인다.(웃음) 실제로 눈물이 맺혀 있더라. 흐르지는 않았다. 사실 눈물 흘릴 만한 질문이 꽤 있었다. 유 작가는 끝까지 참았다. 참는 것처럼 보였다. 참 독하다고 생각했다. 제일 독한 인터뷰이였다. 본인 말처럼 아직도 앙금이 남아있고, 분노가 남아있어서 더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반대로 문 대통령의 그런 침통한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세 시간 정도 진행했을 거다. 물어볼 수 있는 거 다 물어봤다. 뒤에 있던 약속을 취소했고, 마치고 나서도 빠진 게 있으면 또 부르라고 했다. 최우선적으로 해주겠다고 했다. 눈물도 보였다. 두 번 정도 눈물을 보였는데, 눈물이 흐르면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닦고 오더라. 유 작가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유 작가가 독했다면, 문 대통령은 자기 절제가 매우 강한 분처럼 보였다."
【서울=뉴시스】영화 노무현입니다
"특히 노무현·문재인 두 분이 변호사를 할 때 곁에 있던 분들이 노무현 이야기 못지 않게 문재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했던 분의 이야기다. 두 분은 일곱살 차이다. 오래 함께 일했으니까 충분히 형님 동생 할 수 있는 사이였는데, 노 변호사가 평생 말을 편하게 안 했다고 하더라. 항상 깍듯이 존대하고, 문 변호사가 말 편하게 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분이 처음 동업할 때 당시 잘나가던 노 변호사가 초짜 문 변호사와 수입을 5대5로 나누자고 한 일화는 유명하지 않나. 노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처음 보자마자 알아봤다고 생각한다. 첫 눈에 나의 동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을 놓지 않고, 수입도 반으로 정확히 나누고 싶었던 거다."
-평생 동지였지만,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정말 다른 사람 같다.
"그 사무장님이 해줬던 얘기다. 두 분 사무실이 마주보는 구조인데, 한 쪽에서는 큰소리가 나고 욕설이 들리는데, 다른 한 쪽은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게 조용해서 가끔씩 누가 있는지 확인해야 할 정도였다는 거다. 그런데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는데, 일을 시킬 때 사람을 사무실로 부르는 게 아니라 꼭 직접 찾아가서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노무현입니다'는 굳이 나누자면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각종 노무현 에피소드 인터뷰와 2002년 경선이다. 전자는 인간 노무현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고, 후자에는 정치인 노무현도 함께 담겨있다. 의아한 건 정치인 노무현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왜 하필 경선이냐는 거다. 다이나믹한 걸로 따지면 그 해 대선도 만만치 않았고, 대통령이 된 후 탄핵 정국도 있었다.
"기획의도는 두 가지 단어였다. 노무현이라는 사람과 시민이다. 대선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한 예로 정몽준과의 단일화 문제를 놓고도 민주당 내에 정말 많은 의견들이 있지 않았나. 그리고 그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고민해야 했던 노무현이 있다. 인간 노무현보다는 정치인 노무현이 보이는 상황이다. 또 시민도 사라진다. 그러나 경선은 다르다. 오직 저 두 단어로 표현 가능하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매력이 사람들을 끌어당겼고, 그들의 힘으로 꼴찌가 1등이 됐다. 당시를 기억하는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시민의 힘만으로 대선 후보가 된 사례라고 말한다. 그런 폭발적인 에너지는 다시 보기 힘들 거라고도 한다. 이 시민혁명이 곧 노무현이었으니까, 그 정신이 가장 잘 살아있는 경선이 중심이 돼야 한 거다."
-당시 경선 자료가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서울=뉴시스】영화 '노무현입니다'의 이창재 감독.
-제목은 왜 '노무현입니다'인가.
"내가 지은 제목은 아니다. 난 사실 '바람과 나'로 하고 싶었다. 제작사나 홍보사 모두 말리더라. 재미없다고.(웃음) 당신이 하신 말씀 중에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라는 게 있다. 그걸 생각했다. 바람을 거슬러 가는 새, 또 노풍이라는 말도 있었다. '바람과 나'가 딱이라고 생각했다.(웃음) 난 여전히 그 제목을 더 좋아한다."
-관객이 이 작품을 어떻게 봤으면 하나.
"전주에서 이 작품을 억지로 보게 됐다는 한 분이 전화를 했다. 본인이 왜 노무현을 싫어하는지 한참을 말했다. 그리고나서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더이상 인간적으로 그를 미워하지는 않다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노 대통령의 정치적 공과는 분명히 있다고 선을 그었다. 난 그정도를 바란다. 이분처럼 말해준다면 내게는 가장 큰 찬사가 될 것이다. '노무현입니다'를 본 분들이 노무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으면 한다. 그를 싫어했던 분들은 더이상 그를 싫어하지 않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게 당신도 원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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