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품격' 이기주 "당신의 입이 아닌 귀를 내어주라"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지금 우리는 '말의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온당한 말 한마디가 천 냥 빚만 갚는 게 아니라 사람의 인생을, 나아가 조직과 공동체의 명운을 바꿔놓기도 한다.

 말 잘하는 사람을 매력 있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풍토는 갈수록 확산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날카로운 혀를 빼 들어 칼처럼 휘두르는 사람은 넘쳐나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폭포수처럼 쏟아내며 좌중을 들었다 놨다 하는 능변가는 홍수처럼 범람한다.

 '언어의 온도'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이기주 작가가 에세이집 '말의 품격'을 냈다. 경청·공감·반응·뒷말·인향·소음 등의 24개의 키워드를 통해 말과 사람과 품격에 대한 생각들을 풀어냈다.

 말과 문장이 지닌 예리함을 통제하지 못해 자신을 망가뜨리거나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들이 비일비재하다.

 작가는 책에서 말에도 귀소 본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기는 커녕 손해를 입지 않으려면, 더러운 말이 마음에서 떠올라 들끓을 때 입을 닫아야 한다. 말을 죽일지 살릴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말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오지만 천 사람의 귀로 들어간다. 그리고 끝내 만 사람의 입으로 옮겨진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수많은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적절한 말과 행동을 건네야 하는데, 이때 본질적인 해결책은 다름 아닌 상대방의 말 속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26쪽)

 "인간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다. 일부 언어학자는 성인의 최대 집중력이 18분이라고 주장한다. 18분 넘게 일방적으로 대화가 저개되면 아무리 좋은 얘기일지라도 참을성 있게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92쪽)

 저자는 서문에서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나'를 읽는 것"이라며 '말의 품격'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스스로 자신의 말과 세계관에 대해 끝없이 질문을 떠올렸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책을 덮은 뒤 때로는 당신의 입이 아닌 귀를 내어주면서 상대의 마음을 얻었으면 한다"며 "당신의 가슴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진심을 건져 올려 그것으로 상대의 아픔을 어루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했다. 232쪽, 1만4500원, 황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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