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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숙 "작곡가가 나서고 인기 많으면 수상한 것"

등록 2017.06.29 12:40:35수정 2017.06.29 14: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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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2017.06.29. (사진 = Priska Ketterer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2017.06.29. (사진 = Priska Ketterer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작곡가는 작업이 이해가 되기까지 기다려야죠. 대중적인 인기로 인해 티켓 오픈했다고 바로 매진되고 하면 그것이 오히려 수상한 거예요. 호호. 대신 창작하는 사람들은 수명이 길기 때문에 여유가 있어요."

최근 광화문에서 만난 진은숙(56) 서울시향 상임작곡가(공연기획 자문역)는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한국에서 덜 조명된 것 같다는 물음에 웃으며 이같이 답했다.

현대음악의 대가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통하는 진은숙을 조명하는 무대가 마침내 국내에서 처음 마련된다. 롯데문화재단이 오는 7월1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치는 '우리시대 작곡가 : 진은숙'이다.
 
작곡 분야의 노벨상으로 통하는 그라베마이어상(2004)을 비롯해 쇤베르크상(2005), 모나코 피에르 대공 작곡상(2010) 등 작곡계 최고 권위상을 휩쓴 진은숙은 매번 발표하는 작품마다 이목을 끌며 해외 주요 오케스트라들로부터 창작곡을 위촉 받았다.

진은숙을 상징하는 것 중 하나는 지난해 10주년을 맞이한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프로젝트 '아르스 노바'. 한국교향악단 최초의 본격적인 동시대음악 프로젝트로, 척박하던 국내 현대음악 시장의 반경을 넓혔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정 청중이 많아졌어요. 한국 클래식음악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로 점점 자신만의 자리 같은 걸 찾아가고 있죠. 그런 면에서 고무적이에요. 사실 해외에서도 흔한 프로젝트가 아니거든요. 중요한 건 제 '아르스 노바'가 아니라는 거예요. 서울시향의 공적인 프로젝트죠."

2006년부터 서울시향 상임작곡가로 활약한 진은숙은 지난해부터 이 오케스트라의 기획자문역(Artistic Advisor)까지 겸임하고 있다.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연간 프로그램 구성과 투어의 기획뿐 아니라 아티스트 섭외 등을 지원하는 자리다.

"제가 오히려 배우는 것이 많아요.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주력하다보면 새로운 음악을 듣느라, 슈만 교향곡 2번 같은 곡은 부러 찾아 듣을 시간은 없거든요. 근데 어릴 때 듣던 고전 음악을 다시 들으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있어요. 현대음악도 더 큰 음악 안에서 바라보게 됐죠. 그래서 행복해요."

작곡, 즉 창작은 창작자의 주변 환경과 심리적인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몇 년 동안 정명훈 전 예술감독과 박현정 전 대표 이사의 갈등 등 서울시향 안팎의 상황이 진은숙의 마음을 어수선하게 했다. 그녀 역시 "몇년 동안 상당히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서울=뉴시스】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2017.06.29. (사진 = Priska Ketterer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2017.06.29. (사진 = Priska Ketterer제공) [email protected]

"창작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무슨 일을 많이 하거나 관계가 되면 안 돼요. 은둔하면서 창작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일이 많아졌죠. 그래서 일상에서 디스플린(discipline·수련)을 해요. 몇 년 동안 힘들었지만 덕분에 '멘탈 트레이닝'이 됐죠. 이제 웬만한 일에 놀라지도 않고, 아주 강해졌어요."
 
2015년 말 정명훈 전 예술감독이 자리를 내려놓은 직후 특히 작년에 서울시향 사운드의 완성도가 예전보다 못하다는 시선도 나왔다. 하지만 티에리 피셔와 마르쿠스 슈텐츠, 두 수석지휘자를 영입한 뒤 다시 밀도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업계에서 지배적이다.

진은숙도 지난 22~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친 정기공연 '마르쿠스 슈텐츠 사이클 II: 브루크너와 슈만'에 대해 호평하며 이에 동의했다.

"서울시향이 정말 잠재력이 큰 오케스트라라는 걸 깨달았죠. 눈 감고 들었을 때는 서양 유명 오케스트라와 다르지 않더라고요. 수년 동안 겪은 풍파를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이번 '우리시대 작곡가 진은숙' 공연 1부에서는 진은숙이 4세 때부터 매료된 피아노를 위한 작품 '에튀드'와 그의 유일한 피아노 협주곡(20년 전)을 선보인다.

2부에서는 지난 2007년 6월 독일 뮌헨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세계 초연된 첫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오직 서울 공연을 위한 콘서트오페라 버전으로 편곡, 연주한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진은숙 작품 해석에 정평이 나있는 지휘자 일란 볼코프가 내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피아니스트 김선욱도 힘을 보탠다.

"볼코프는 독특하고 정확한 지휘자인데 스탠더드한 것뿐만 아니라 현대적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믿음이 있어요. 김선욱은 제 협주곡을 재탄생시켜준 연주자죠. 피아노의 소리와 음색의 깊이를 구조적으로 끌고 가는 힘이 대단합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콘서트오페라 버전에서 앨리스 역을 소프라노 레이첼 길모어, 공작부인 역을 메조 소프라노 제니 뱅크, 매드 해터 역을 바리콘 디트리히 헨셀이 맡았다.

【서울=뉴시스】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2017.06.29. (사진 = Priska Ketterer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진은숙,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2017.06.29. (사진 = Priska Ketterer제공) [email protected]

지난해 개관한 롯데콘서트홀 개관 기념 창작 위촉곡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 역시 성공적으로 세계 초연,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진은숙은 오는 11월 베를린필 위촉곡을 선보인다.

특히 거장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올해 베를린필과의 마지막 아시아 투어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 곡을 골라 주목 받고 있다. 진은숙은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처럼 우주를 소재로 삼은 곡인데 이 곡처럼 듣기 쉽거나 아름다운 곡은 아니라고 웃었다.

사실 진은숙은 우주를 사랑하는 작곡가다. 과거 클래식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왜 세금으로 지원을 하냐는 일부 우문에 "우주 탐사 역시 내가 은하계에 가서 살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면 할말이 없지만 거기서 얻어지는 의식, 학문과 진리에 다가가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진은숙은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10년 만인 올해 초 독일 함부르크 엘베 강변에 완성된 콘서트홀 '엘프필하모니'의 예를 들며 다시 강조했다.

"독일 신문 사설에 엘프필하모니 관련 내용이 나왔어요. 당초 계획한 예산보다 10배 가량이 든 콘서트홀인데, 테러 위협과 불안한 정치 등 독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문제가 많기 때문에 더더욱 콘서트홀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죠. 베를린 택시 기사분들도 본인들은 연주회를 가지 않지만 엘프필하모니 같은 공연장은 필요하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즉 클래식음악은 철학, 물리학처럼 많은 사람이 이해를 못할 수는 있지만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더욱이 음악은 전문 학문 분야보다 대중과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공유를 하죠. 그런 분야에는 성숙한 시민의식 같은 것이 필요해요. 위대한 과학자의 연구는 노벨상을 타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잖아요. 그 사람의 공으로만 생각하고 자신보다 잘난 사람은 싫다는 식의 태도는 오히려 발전을 저해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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