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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봉준호 "메시지보다는 그저 즐겨주시길"

등록 2017.06.29 10:07:42수정 2017.06.29 12: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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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봉준호 "메시지보다는 그저 즐겨주시길"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육식을 비판하는 게 아니에요. 오늘날 자본주의가 점점 더 놀라운, 고도의 경지로 발전하고 있잖아요. 누군가는 더 나빠지고 있다고 할텐데…. 이 '대량생산·대량소비'의 흐름 안으로 동물까지 들어왔다는 거죠."

 봉준호(48) 감독은 신작 '옥자'를 이같이 설명했다. 영화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슈퍼돼지에 관한 이야기다.

 초국적 기업 미란도 코퍼레이션은 이 동물을 세계 26개국 축산업자에게 맡겨 키우게 한다. 미자(안서현)·희봉(변희봉)과 함께 한국의 산 속에서 살고 있는 옥자도 미란도의 작품 중 하나다. 미란도의 CEO 루시(틸다 스윈턴)는 슈퍼돼지를 가공해 식품으로 팔기 직전, 홍보의 일환으로 가장 아름답게 자란 슈퍼돼지를 미국 뉴욕에서 공개하기로 한다. 옥자가 미란도 직원들에 의해 납치당하자 미자는 옥자를 집으로 데려오기 위해 직접 뉴욕으로 향한다.

 "안개가 낀 날이었어요. 이수교차로를 지나고 있는데, 고가도로 밑에 낄 정도로 큰, 그러면서 내성적인 동물을 본 거죠. 시무룩한 얼굴이었는데, 누가 괴롭혀서 여기까지 왔을지 생각한 겁니다."

 크고, 조금은 억울하게 생긴 동물의 이야기로 봉 감독은 세계를 이야기한다. '세계'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다. 그는 옥자와 미자의 여정을 통해 현재 이 세계를 추동하는 시스템을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방위적으로 비판한다. 그 안에 담긴 한 단어는 역시 '생명'이다.
'옥자' 봉준호 "메시지보다는 그저 즐겨주시길"



 "오늘날의 도축 시스템, 이 가공할 만한 시스템이 인간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지 게 아니라는 거죠. 결국 돈을 벌기 위한 거잖아요. 그렇다면 이건 동물 입장에서 보면 최신식 홀로코스트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거죠." 봉 감독은 '옥자'의 의미에 대해, "이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일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애완견을 안고 마트에 가서 돼지고기를 사잖아요. 아주 재밌는 상황인 거죠.(웃음)"

 '옥자'가 봉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되는 건 명쾌함 때문이다.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등의 연관검색어는 언제나 '해석'이었다. '옥자' 또한 치밀한 각본이 돋보이는 작품이지만, 전작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그 주제의식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봉 감독 또한 "명쾌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가족과 같은 동물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이야기는 앞서 어떤 영화도 다룬 적이 없다. 만약 내가 한국전쟁을 영화화한다면 레이어도 많아지고, 복잡해지고, 모호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옥자'는 처음 만들어진 이야기다. '1번 타자'로서 명쾌한 스윙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등 봉 감독의 전작들의 연관 검색어는 '해석'이었다. 관객은 철저하게 세공된 그의 작품에서 봉준호의 의중을 읽어내려고 했다. '옥자' 또한 제작 단계부터 '거대 동물'을 가지고 그가 또 어떤 이야기를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그러나 봉 감독은 "난 NGO가 아니다. 메시지가 급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어떤 이미지가 있으면 그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다가 메시지가 나올 수도 있는 거죠. 초반에는 그저 충동에 따라 이러저리 휘날릴 뿐이에요. 전 주제나 메시지를 위해 영화를 찍는 게 아닙니다. 전 결국 엔터테인먼트를 찾고 있어요. '옥자'는 이 메시지를 담을 수밖에 없는 소재였던 겁니다."
'옥자' 봉준호 "메시지보다는 그저 즐겨주시길"



 '옥자'는 개봉 전부터 수많은 논란에 휩싸였다. 경쟁부문에 진출한 칸국제영화제에서는 온라인 스트리밍 영화를 영화로 볼 수 있느냐를 두고 벌어진 이른바 '넷플릭스 논쟁'에 휩싸였다. 국내 개봉을 앞두고는 국내 극장들과 상영 방식을 놓고 '극장·온라인 동시 상영 논란'이 있었다. 영화가 작은 극장 위주로 개봉을 확정하자 '옥자'에 밀려 상영 시간이 줄어든 독립영화계의 빈축을 샀다.

 봉 감독은 "마치 재개봉을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했다. "아직 이 영화를 체험한 사람보다는 논의한 사람이 많아요. 이제 오감으로 체험하는 분들이 더 많아지겠죠. 사실 이 영화가 담은 메시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이 사랑스러운 돼지를 따라가 보시길 바랄 뿐입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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