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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PD "세상에 감탄할 것이 많으니 힘을 내세요"

등록 2017.06.30 09: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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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미스트라 여행 중인 정혜윤 PD(사진=정혜윤 PD)

【서울=뉴시스】 미스트라 여행 중인 정혜윤 PD(사진=정혜윤 PD)

■그리스 여행하며 쓴 편지모아
 '인생의 일요일들' 에세이 출간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일요일 아침의 게으른 시간 속에서, '언제였더라! 그때 참 좋았었는데' 하고 저절로 떠오르는 기억들, 그 기억들 속에서 근심은 힘을 잃고 사라진다. 현실의 속박들도 잠시 사라진다. 졸음 속에서 여행을 한다. 미소와 즐거운 회상, 기쁨이 함께한다. 시들지 않는 즐거움이 함께한다. 마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시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갈망한다. 이렇게 기억 속에 떠오른 날들을 인생의 일요일이라고 이름 붙였다."(8쪽)

정혜윤 CBS 라디오 PD가 최근 낸 에세이 '인생의 일요일들'(로고폴리스)의 일부 구절이다.

'인생의 일요일들'에는 총 39통의 편지가 담겼다. 방송 섭외를 거절한 사람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는 대신 정 PD 부탁으로 숲 이야기를 보내면서 인연은 시작된다.

정 PD는 “방송 섭외를 하려고 어떤 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렸는데, 그 선생님은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았다"며 "그래서 이메일로 답장을 보내왔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은 인터뷰보다 다른데 관심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 때 들려준 선생님 말씀이 솔깃했어요. 선생님의 관심사는 최선을 다해 살다가 사라지는 것, 잘 사라지는 것이었어요. 특히 숲에 자주 간다고 하셨어요. 저는 그렇다면 인터뷰 대신 숲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은 진짜로 숲 이야기들을 보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이야기들을 읽어가는동안 점점 제 가슴이 뛰기 시작했어요. 편지 안에는 깨끗한 마음과 증류된 마음, 자아가 아니라 다른 사물을 차분히 관찰하는 조용한 시선이 가득했어요. 글 속에서 숲만 남고 사람은 발자국 소리와 함께 사라져갔어요.”
정혜윤 PD "세상에 감탄할 것이 많으니 힘을 내세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이야기로 답장을 쓰고 싶었던 정 PD는 2015년 여행했던 그리스에서의 기억을 편지로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선생님처럼 숲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본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쓰기 시작했어요. 답장을 쓰는 내내 행복감을 느꼈어요. 왜냐하면 저에게 기쁨을 주는 것, 제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것을 어떻게든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어요. 글 쓰는 내내 좋아하는 것들이 전해주는 에너지에 고양되었어요.”

지난해 12월부터 2017년 2월 첫 주까지 주로 일요일에 썼기에 편지는 '일요일의 편지'가 됐고, 그 속에 담은 나날들은 '인생의 일요일들'이 됐다.

"어머 어쩌지, 사는 게 쉽지가 않구나,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많은 분들이 이런 생각들을 한 적이 있을 거에요. 일, 사랑, 인간관계, 자신만의 문제는 늘 우리를 혼란스럽고 골치 아프게해요. '인생의 일요일들'은 그때 어떻게든 힘을 얻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이자, 가장 어렵고 슬픈 일을 가능하면 더 좋은 일로 바꿔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책에서 그녀는 그리스의 기억과 매일의 일상생활을 교차시키며, 삶을 잘 겪어내는 법과 다친 마음을 스스로 치유하는 법을 찾는 '생각 여행'을 한다.

"2015년에 그리스를 갔는데, 당시 저 역시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에 젖어있었어요. 여러모로 지치고 힘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제 눈 앞에 있는 것은 찬란한 빛, 그리고 생명력 넘치는 숲, 황금색으로 반짝거리는 바다였어요. 세상은 너무나 아름다워보였어요. 슬픈 마음에 힘을 주는 모든 것들이 다 있었어요. 저는 갑자기 동공이 확장되고 넋을 잃고 놀란 다음에 힘을 얻었어요. 사회 속의 인간이 아니라 아름다움 속에 서있는 인간으로 세상과 만났기 때문이었어요. '아름다운 것이 도처에 널려있으니, 감탄할 것은 많으니 힘을 내세요!'라고 온 세상이 말하는 듯 했어요.”
【서울=뉴시스】 그리스 아테네 플라카 거리에서의 정혜윤 PD 모습(사진=정혜윤 PD)

【서울=뉴시스】 그리스 아테네 플라카 거리에서의 정혜윤 PD 모습(사진=정혜윤 PD)

아름답고 강렬한 그리스의 풍광에서 힘을 얻기도 했지만, 정PD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리스 도처에서 만난 평범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얻는다.

 미코노스에서 만난 로마 여인 조안나에게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대는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자신을 시험해보시오"는 그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겪은 슬픈 일, 괴로운 일, 고통스러운 일이 다 모여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터키인 커피장수 장과 한 말이다. 그리스의 끝 마니의 폐허에서 만난 임모털맨이 들려준 이야기 "불멸은 미래를 계획하지 않아요. 불멸은 부끄럽지 않을 일만 계획해요."
 
정 PD는 "힐링을 표방하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어느 페이지를 펼치거나 한결 기분이 나아지고 밝아지고 가벼워지기를 꿈꾸면서 썼다"면서 "책의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는 정체성"이라며 "우리를 힘들게 하는 정체성 말고 스스로 기뻐하면서 택하는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살기가 조금 더 편안해지는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간 많은 에세이를 냈던 정 PD는 앞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꼭 써보고 싶다고 했다. 2007년 '침대와 책'을 시작으로 독서 에세이 '삶을 바꾸는 책 읽기'를 비롯해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사생활의 천재들', '여행, 혹은 여행처럼', '마술 라디오', 르포 '그의 슬픔과 기쁨' 등을 펴냈다.

 "나를 진짜 감동시킨 사람들은 누군가의 친구가 되는 것의 가치, 힘들 때 같이 버티고 견디는 것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을 숨쉬고 살게 만드는 사랑, 덜 힘들게 만드는 사랑, 버티게 해주는 사랑,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꿈꾸게 하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 르포 형식이 될 것 같다."
【서울=뉴시스】 그리스 아테네 플라카 거리에서 정혜윤 PD(왼쪽)가 식당주인과 함께 찍은 사진(사진=정혜윤 PD)

【서울=뉴시스】 그리스 아테네 플라카 거리에서 정혜윤 PD(왼쪽)가 식당주인과 함께 찍은 사진(사진=정혜윤 PD)

정 PD는 '김어준의 저공비행',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김미화의 여러분',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세월호 유족들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정치 팟캐스트 '파라다이스 조선 정치 옹알이' 등과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성 짙은 국내외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CBS 특집 다큐멘터리 '불안'으로 제40회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 CBS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으로 제 43회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 2012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우수상, 2013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우수상, 제10회 한국 방송프로듀서상 작품상, 제18회 한국 방송프로듀서상 작품상등을 수상했다.

상복과 일복이 많은 정혜윤 PD는 아직도 욕심이 많다. "이 방송이 있어서 그래도 살만했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방송을 만들고 싶다"는 그녀는 "어떤 사람이 힘든 일을 겪을 때 둔감한 사람이고 싶지 않다"고 방송인으로서 정체성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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