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안 뺐으면 우린 다 죽었어···이런 물난리는 처음이야"
【청주=뉴시스】이병찬 기자 = 17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의 한 상가 주택에서 집 주인 박용석(71)씨가 처참한 방 안을 들여다 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박씨 집은 전날 청주 지역에 내린 폭우로 무심천으로 연결된 우수관이 역류하면서 침수됐다.2017.07.17. [email protected]
우수관 역류로 단층 상가주택 침수피해를 당한 충북 청주시 모충동 박용석(71)씨는 전날 물난리를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17일 오전 그는 수마가 할퀴고 간 40년 보금자리 문 앞에 힘없이 주저앉아 연신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박씨는 "35년 전인가, 무심천 다리 무너지고 북한 김일성이가 쌀도 보내줬던 그때도 물이 방 안까지 차오르지는 않았는데, 기술이 좋아졌다는 지금 이러면 이거 뭐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거 아니여?"라며 혀를 찼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놀러 온 손자(9)와 단란한 휴일 오전을 보내던 박씨 부부는 도로와 접한 점포 문턱까지 물이 차오를 때까지도 설마 했다. 집 안에서 기르던 개와 고양이들이 미리 동요했지만 무시했다.
오전 11시께 점포 미닫이 문턱을 넘은 흙탕물은 순식간에 방 문턱을 넘어 방 안 거실장까지 집어삼켰다. 다급해진 박씨는 일단 가전 제품 코드부터 모두 뺐다. 감전 위험 때문이다.
그는 "만약에 잠자는 시간에 물이 들어왔으면 우리 부부와 손자는 전기에 다 죽었을지도 몰라"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구조대가 타고 온 고무보트로 기르던 동물과 함께 겨우 탈출했다.
손자 가슴 높이까지 차오른 물 때문에 옷가지와 가구는 물론 지난해 어버이날 아들이 선물한 안마 의자와 전기요금이 아까워 제대로 켜지도 못했던 에어컨, 세탁기, 보일러 등 살림살이가 모두 못쓰게 됐다.
【청주=뉴시스】이병찬 기자 = 17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의 한 주택에서 집주인 박용석(71)씨가 집 안 정리를 하고 있다. 박씨 집은 전날 청주 지역에 내린 폭우로 무심천으로 연결된 우수관이 역류하면서 침수됐다[email protected]
"보상은 기대도 안 혀···집이 죄다 무너져야 나라에서 1000만원인가 줬다는데 보상은 무슨···"이라는 체념섞인 말을 하고 돌아선 그는 침수를 겨우 면한 가족사진을 다시 벽에 걸며 또다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청주지역에는 지난 15~16일 302.2㎜에 달하는 많은 비가 내렸다. 충북도는 청주시와 괴산군에 202가구 441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모충동 등 청주 시내에는 1시간당 최대 86.2㎜ 폭우가 쏟아졌다. 무심천 변 저지대에 있는 박씨가 사는 동네는 무심천으로 연결된 우수관이 역류하면서 삽시간에 침수됐다. 불어난 무심천 물 때문에 우수관을 통한 배수가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청주 무심천 변 주택가가 장맛비에 침수된 것은 1980년 여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무심천은 1936년과 1940년 홍수로 두 차례 범람한 적이 있다. 이번에도 범람 우려가 커지면서 주민 대피 준비 상황까지 갔으나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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