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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진 퀴어축제 조직위원장 "음란해서 불편? 사회 변화 '불편함'에서 시작"

등록 2017.07.23 15: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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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권현구 기자 = 퀴어문화축제 강명진 조직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7.23. stoweon@newsis.com

【서울=뉴시스】 권현구 기자 = 퀴어문화축제 강명진 조직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7.23. [email protected]

"퀴어축제, 사회에 성 소수자 존재 인지시키는 행사"
"행사 각종 아이템은 성을 객관적 직시하기 위한 방편"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표출하는 이가 선택하는 것"
"미디어 통해 제한된 이미지···다양한 모습 보여질 필요"
"軍 동성애 처벌 조항 없애고 차별금지법 제정해야"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퀴어(Queer)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무성애자, 남녀한몸, 퀘스처너(성 정체성에 의문이 있는 사람)를 포괄한다.

 한국 사회에선 낯설었던 이 개념이 최근 십 수년 동안 각종 사회운동과 대중문화 등을 통해 널리 전파되면서 대중에게도 꽤 익숙해졌다. 지난해 개봉해 약 430만명의 관객이 든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는 퀴어 영화도 상업적으로 흥행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함으로써 대중문화에서 퀴어의 개념이 비교적 친숙해졌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아직도 일반 성 소수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일상 생활에서 선뜻 드러내기 힘들다.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심지어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퀴어문화축제는 이처럼 우리 사회 안에서 마치 없는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 성 소수자들을 위한 일종의 '드러내기' 의식이다.

 2000년 1회 행사를 시작으로 올해로 벌써 18회째다. 해를 거듭할수록 행사의 규모가 커지고 이에 비례해 대중과 언론의 관심도 증폭돼 왔다. 본인이 성 소수자가 아니더라도 이들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함께 참여하는 시민들도 있지만 "왜 서울 한복판에서 음란하거나 선정적인 퍼포먼스를 하느냐"는 등의 불편한 시선도 공존한다.

 퀴어문화축제,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성 소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강명진(38)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을 지난 20일 서울 논현동의 한 극장에서 만났다.

 강씨는 2001년 제2회 행사부터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했다. 2001년 초 호주 시드니에서 '마디그라 게이 퍼레이드'를 본 적이 있는 그에게 지인이 축제에 참여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해서다. 그 이후로 17회째, 조직위원장으로서는 8회째 퀴어문화축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강씨는 본인을 게이라고 칭한다.

 강씨는 "사회 운동이란 것은 누구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사회에 불편함을 끼치고 불편함을 야기해야 인지가 된다"고 말했다. 문화축제에 굳이 '보기 불편하게' 성기를 본뜬 아이템을 등장시키거나 야한 복장을 입어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많은 사람들의 불평에 대한 답이다.

 퀴어축제는 1969년 발생한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국에서도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시절, 게이클럽이었던 스톤월 인(Stonewall Inn)을 뉴욕 경찰이 급습했고 이들은 경찰에 맞서 시위를 벌였다.

 다음해인 1970년 6월28일 뉴욕과 로스엔젤레스에서 게이 퍼레이드가 시작됐다. "나를 잘 봐달라"가 아니라 "내가 여기 있다"를 강조하기 위한 행진이었다. 성 소수자 이슈는 다수의 찬반으로 정의될 사안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활동이었다.

【서울=뉴시스】 권현구 기자 = 퀴어문화축제 강명진 조직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07.23. stoweon@newsis.com

【서울=뉴시스】 권현구 기자 = 퀴어문화축제 강명진 조직위원장이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 롯데시네마 브로드웨이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07.23. [email protected]

"이런 저런 논란이 없으면 전혀 관심을 못 받고 묻혀 버리는 것이죠. 성기의 형태를 차용한 각종 아이템들을 만드는 것도 성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왜 성기가 음성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돼야 하죠?"

 일부 참가자들의 요란스런 복장이 오히려 사회적 약자로서 성 소수자들이 박탈당하는 여러 권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의복은 사회의 관습, 혹은 억압의 틀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죠. 퀴어축제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행사입니다. 굳이 왜 그런 옷을 입느냐고 한다면, 굳이 못 입을 이유는 무엇인지 되묻고 싶네요.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건 표출하는 이가 선택하는 것이죠."

 특히 퀴어문화축제에 모인 이들은 평소엔 우리 옆집 사람이거나 직장 동료일 수 있다는 점에서 퀴어가 아닌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축제는 퀴어가 미국 드라마 여주인공의 게이 친구나 태국 패키지 여행에 포함된 쇼에서 접하는 트렌스젠더가 아닌, '당신 주위에도 존재하는 이웃'임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행위다. 그렇기에 퀴어에 대한 개념에 익숙지 않은 대중에겐 불편할 수도 있다.

 강씨는 대중문화와 미디어에서 생산하는 퀴어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제한적이라는 점도 아쉽다고 했다.

 "어찌 됐건 매체에서 보여지는 이미지가 큰 각인으로 남는 것인데 그걸 벗어나기 쉽지 않아요. 다양한 모습이 사회에 보여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문화 행사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죠. 축제 참가자들 중 선정적인 복장을 한 이들도 어떻게 보면 일부에 불과한데 사진으로 찍혀 배포·재생산되는 측면이 있어요. 덧씌워진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계속 소통이 필요하겠죠." 

【서울=뉴시스】 권현구 기자 =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출발한 '제18회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을지로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17.07.15. stoweon@newsis.com

【서울=뉴시스】 권현구 기자 = 1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출발한 '제18회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을지로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2017.07.15. [email protected]

지난 대선 과정에선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기자회견장에 무지개 깃발이 등장한 사건이 있었다.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소속 활동가 13명이 "동성애자 혐오 발언을 사과하라"며 기습 시위를 벌인 것이다.

 전날 밤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반대하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집요한 질문에 문 후보는 "반대한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무지개행동 활동가들의 시위는 대표적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 후보에게마저도 성 소수자 인권이 도외시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한 데서 오는 절망감의 표현이었다.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란 타이틀이 있어서 더욱 기대치가 높았고 사회 변화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당시 많이 실려있던 상황이었죠. 토론회에서의 발언이 명확치 않았고 해명도 마찬가지였지만 찬성 혹은 반대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개념에 대해 반대한다고 했으니 실망감이 컸겠죠. 성 소수자 문제를 다룬 적이 없었을 수 있고 인지를 못했거나 인지를 했어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러한 논란이 성 소수자 이슈를 큰 판으로 끌어낸 것에 대해서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강씨는 "당사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던 발언이지만 조금 더 많은 변화와 움직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성 소수자를 색출해 실형을 내릴 수 있는 군형법 92조 6항의 폐지와, 10년째 지지부진한 차별금지법 제정이 가장 시급한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강씨는 "퀴어문화축제는 특정인이 모여 한 가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모여 내가 살아가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를 추구한다"며 "이제는 대사관, 정당, 기업까지 참여하면서 연대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다름에 대해 존중하는 사회로 변화하기 위해 퀴어문화축제가 중요한 구심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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