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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1000만의 부담···'군함도'

등록 2017.07.25 08:56:06수정 2017.11.15 14: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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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1000만의 부담···'군함도'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군함도'(감독 류승완)는 흔히 말하는 여름 블록버스터의 요건을 갖춘 작품이다. 순제작비 220억원·총제작비 300억원을 투입한 규모, 황정민·송중기·소지섭 등 연기력과 스타성을 두루 갖춘 배우들의 출연, 이른바 흥행 감독의 연출(류승완 감독 '베테랑'(2015) 1341만명), 여기에 현재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폭발력 있는 소재인 일제 강점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그렇다. 제작 단계부터 이 작품에 '1000만'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닌 것도 무리는 아니다.

 영화는 관객의 기대감을 일정 부분 충족한다. 군함도 탄광의 모습을 보여주는 압도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제작비의 크기를 짐작케 하고, 류 감독의 연출력을 인정하게 한다. 군함도를 재현한 거대한 세트가 그 자체로 인상적이며, 후반부 대탈출 장면 또한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은 물론 웃음과 눈물을 모두 잡으려는 시도 또한 나쁘지 않다. 군함도라는 비극의 역사를 기억하는 자료로서 역할을 하고, 조선인들이 촛불을 들어올리거나 욱일기를 반으로 자르는 장면 등 의도가 다분한 장면들로 감동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군함도'는 이렇듯 즐길 게 있는 영화이지만,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3) '베테랑'(2015) 등 최근 7년 간 이어진 류승완 감독의 빛나는 필모그래피를 생각할 때 다소 실망스러운 면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앞선 세 영화는 상반된 분위기와는 다르게 인상적인 캐릭터·명확하고 간결한 서사·속도감 있는 전개·경쾌한 편집이라는 교집합으로 관객의 시선을 스크린에 고정시켰다. 그러나 신작은 어디에 힘을 줬는지 불명확한 작품이다. 다시 말해 '군함도'는 다양한 요소에 분산된 힘을 통합하지 못해 결정타를 날리지 못한다.

[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1000만의 부담···'군함도'


 1945년, 일본 나가사키현의 섬 하시마(端島) 탄광에서는 조선인의 강제 노역이 이뤄지고 있다. 군함도(軍艦島)는 이 섬의 모양이 군함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 경성에서 악단을 꾸려가는 강옥, 종로를 주름잡던 주먹 칠성 등은 이곳에 끌려와 온갖 고초를 당하며 탄광에서 일한다. 한편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자 광복군 소속 무영은 군함도에 잠입해 독립군 주요 인사를 빼내는 작전을 수행한다. 그 와중에 이들은 일제가 탄광 안에 조선인들을 가둬놓고 폭파시키려고 한다는 걸 알아채고 목숨을 건 탈출을 시도한다.

 일제 시대의 흔한 이분법을 약화한 건 이 작품이 거둔 성과다. 영화는 '가해자 일제·피해자 조선인'이라는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생존을 위해 혹은 가족을 위해 동족을 얼마간 착취하기도 하는 인간들을 그린다. 황정민이 연기한 강옥이나 소지섭이 맡은 칠성도 그런 인간 중 하나다. 일본인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이 나쁜 인간들로 그리지 않고, 덜 나쁜 인간과 더 나쁜 인간을 구분하며, 일본인보다 더 극악한 조선인도 함께 담는다. 클라이맥스 직전 장면에서 조선인의 피해 의식을 꼬집는 강옥의 대사는 이 작품이 소위 '과장된 애국주의의 덫'을 피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게 한다.

[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1000만의 부담···'군함도'


 시각적인 측면에서 일제의 수탈과 조선인의 고통을 몰아 담은 탄광 시퀀스는 '군함도'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폐소공포증을 일으킬 정도로 꽉 들어찬 공간 속에서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고 분진과 가스에 시달리며 작업하는 조선인들의 모습은 굳이 말초적인 잔혹함을 보여주지 않고서도 시대의 아픔을 느끼게 하는 명장면이다. 흑백 화면 속 밝은 빛과 뿌연 연기, 온몸에 내려앉은 석탄 가루와 땀에 절은 몸뚱이들은 일제 강점기를 그것 자체로 상징한다는 점에서 뛰어나다.

 이런 신선함들을 퇴색하는 건 군함도에서 벌어지는 온갖 드라마를 모두 펼쳐보이겠다는 과도한 욕심이다. '군함도'는 일제의 만행을 고발한다. 조선인 간 내분도 보여준다. 군함도가 어떤 곳이며, 어떻게 조선인을 수탈했는지도 설명한다. 강옥과 칠성과 말년의 캐릭터와 그들의 아픔을 그린다. 무영이 이끌어나가는 첩보전도 담아내고, 칠성과 말년 사이에서 싹트는 애정도 건드린다. 또 말년으로 대표되는 일본군 성노예의 비극적 삶도 훑고 지나간다. 영화는 사실상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모두 펼쳐보이는데, 러닝타임 132분은 이 모든 걸 담아내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1000만의 부담···'군함도'


 몇몇 매우 관습적인 설정들은 차치하더라도 영화가 앞서 쌓아온 모든 뜨거운 에너지가 후반부 조선인 대탈주 장면에서 폭발하지 못하는 건 두고두고 아쉬운 부분이다. 각 에피소드들은 결국 '조선인의 고통'이라는 큰 항목으로 묶어둘 수 있겠지만, 워낙 다양한 이야기들이 산발적으로 전개되다보니 구체성이 떨어지는 서사로 인해 관객은 어디에도 감정을 온전히 싣지 못한다.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황정민은 역시나 자기 몫을 다한다. 특히 김수안과의 호흡은 부녀 연기를 이야기할 때 언제라도 언급될 정도로 뛰어나다. 송중기는 특유의 무게감으로 영화를 이끌고, 소지섭과 이정현은 이들만이 가진 특유의 카리스마로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그리고 이들 주연 배우들과 동고동락하며 군함도의 비극을 만들어낸 조·단역배우들 모두 박수받아 마땅한 연기를 했다.

[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1000만의 부담···'군함도'


 '군함도'는 류승완 감독의 역작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류 감독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류승완 아닌 다른 감독의 작품이었다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겠지만, 결국 류승완이기에 남기는 아쉬움이다. 그만큼 한국영화계가 류 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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