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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씨 북송 추진위원회 발족

등록 2017.07.25 11: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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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본부 등이 25일 오전 광주 동구 YMCA 백제실에서 '장기 구금 양심수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 대표자회의 결성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 화해와 인도·인권적 차원에서 광주지역 유일한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90)씨의 북송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2017.07.25. sdhdream@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본부 등이 25일 오전 광주 동구 YMCA 백제실에서 '장기 구금 양심수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 대표자회의 결성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 화해와 인도·인권적 차원에서 광주지역 유일한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90)씨의 북송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2017.07.25.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광주지역 유일한 비전향 장기수인 서옥렬(90)씨의 북송을 추진하는 위원회가 꾸려졌다.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본부 등은 25일 오전 광주 동구 YMCA 백제실에서 '장기 구금 양심수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 결성'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 화해와 인도·인권적 차원에서 서씨의 북송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자회견은 인사말, 경과보고, 서옥렬씨 소개 영상(제작 김경자 독립영화 다큐 감독) 상영, 기자회견문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추진위원회는 회견문을 통해 "시대의 양심으로 고뇌하고 조국을 사랑했던 서 선생은 험난한 민족의 풍랑 맨 앞에서 맞바람 맞으며 90년을 살아온 노인이 됐다"며 "30대에 장벽이 가로막힌 남북을 오고 간 혐의로 2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사상 전향 강요로 고문을 받으며 고단한 삶을 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봄 서 선생은 심장질환 등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며 "그의 질긴 목숨은 살아 생전 처자식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은 인간적인 소망의 실타래가 너무도 간절했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어떤 이념도 사상도 장벽도 잠시 걷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행복을 지키려 노력하는 국가의 통 큰 아량을 기대한다"며 "서 선생의 한 많은 인생, 세상과 이별하기 전에 부디 북쪽 가족 품에 안겨 마지막 가는 길 평온하게 눈감을 수 있게 인간적인 조치가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송환을 호소했다.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본부 등이 25일 오전 광주 동구 YMCA 백제실에서 '장기 구금 양심수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 대표자회의 결성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 화해와 인도·인권적 차원에서 광주지역 유일한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90)씨의 북송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2017.07.25. sdhdream@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본부 등이 25일 오전 광주 동구 YMCA 백제실에서 '장기 구금 양심수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 대표자회의 결성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 화해와 인도·인권적 차원에서 광주지역 유일한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90)씨의 북송을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2017.07.25.  [email protected]


 추진위원회는 광주지역 주요 기관장, 국회의원, 구청장 16명과 시민·사회·여성·종교·노동계 대표자 75명 등 총 91명을 공동대표로 선임할 계획이다. 

 청와대·통일부에 송환 촉구 서한을 보내고 이산가족 상봉 신청, 온·오프라인 송환 청원운동도 할 예정이다.
 
 서씨는 1927년 전남 신안군 팔금면 팔금도에서 5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6·25한국전쟁 당시 고려대 경제학과를 중퇴하고 월북해 인민군에 입대했다.

 1953년 인민군 전역 뒤 강원도 천내군 중학교에서 교원 생활을 하다 동료 교사와 결혼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1958년 12월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59년 원산교원대학 교원으로 재직하며 정치·경제·지리·역사 등을 교육했다.  

 1961년 8월9일 공작원으로 남파됐다. 한 달 뒤 월북하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구형과 선고를 합해 사형 소리만 6번을 들었지만, 최종 판결에서 무기징역형을 받아 '쌍무기수(무기형이 두 개)'가 됐다.

 1961년 9월부터 1990년 9월까지 광주·대전교도소 등지의 독방(0.75평)에서 옥살이를 했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 민주질서에 어긋나지 않게 살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29년 만에 출옥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거동이 불편한 상태다.
 
 한편 추진위원회에는 6·15시대 길동무 '새날', 광주기독교교회협회 인권위원회, 광주민족자주평화통일중앙회의, 광주전남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범민련광주전남연합, (사)우리민족, 서옥렬선생 후원모임, 전대기련 동우회, 광주진보연대,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광주전남추모연대, 민주노총광주본부, 광주전남민주동우회, 오월 어머니집,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민중연합당·정의당 광주시당, 통일의병 광주전라본부,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시민주권행동 등이 참여했다.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광주본부 등은 오는 25일 광주 동구 YMCA 백제실에서 '서옥렬 선생 송환추진위원회(준) 결성' 기자회견을 연다고 23일 밝혔다. 사진은 광주지역의 유일한 비전향 장기수 서옥렬(90)씨가 지난 21일 광주 북구 자신의 집에서 27년간 쓴 일기장을 펼쳐보고 있는 모습. 2017.07.25. sdhdream@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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