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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대기업 '군대식' 교육 논란…아침 점호·서열 강조 매뉴얼

등록 2017.08.14 16:3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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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한 대기업이 신입 사원들에게 교육한 '엘리베이터 예절'. 2017.08.14.

【서울=뉴시스】한 대기업이 신입 사원들에게 교육한 '엘리베이터 예절'. 2017.08.14.

기업 대표에 90도 인사 '하나, 둘, 셋' 고개 숙인 채 기다려
교육 매뉴얼에 선·후배별 엘리베이터 탑승 위치 도표까지
"주말 근무는 신이 주신 선물"…수당 청구 힘든 분위기
회사 측 "수당 없는 야근 강요 일부 부서…고쳐나가는 중"

 【서울=뉴시스】채윤태 기자 = 한 대기업이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교육 연수 과정에서 정해진 교육 시간 전에 아침 점호를 실시하고, 늦거나 졸면 반성문을 쓰도록 하는 등 '군대식' 문화를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이 다수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14일 업계 등에 따르면 A기업은 최근 지방 연수원에서 진행된 신입사원 연수를 진행하며 정해진 교육 참석 시간인 오전 8시보다 훨씬 이전인 오전 6시30분까지 집합을 시켰다. 교육 담당 간부들은 신입사원들의 출결 여부를 일일이 확인한 뒤 운동장 구보 등 아침 운동을 진행했다. 신입사원들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참석해야 했다.

 교육 강연에는 정장을 입고 참석했는데, 그날 기온과 상관없이 재킷이나 넥타이 착용 여부를 개별적으로 선택하지 못하고 복장을 전체적으로 통일해야 했다. 강연 전에는 선배 사원들의 지시 하에 책걸상의 '오와 열'이 흐트러짐이 없도록 30분 넘게 맞추기도 했다. 강연에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하거나 잠깐이라도 졸다 발각되는 신입사원은 반성문을 써서 회사에 제출했다.

 예의와 규범을 중시하는 이 회사는 특히 회사 대표가 특강을 할 때는 신입사원들이 모두 동시에 "안녕하십니까"를 크게 외치며 90도로 고개를 숙인 후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센 뒤 고개를 동시에 올리도록 지시를 받았다.

 교육 매뉴얼을 통해서도 '서열'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았다. 엘리베이터 이용의 경우 교육 매뉴얼에는 "상급자가 먼저 탑승을 하고 하급자는 출입문 쪽에서 층수 버튼 누름. 내릴 때는 상급자가 내리도록 배려하는 것이 예의"라는 문구와 함께 '상급자'와 '하급자'의 자리를 그림으로까지 설명했다. 일상적으로 빈번히 발생하는 엘리베이터 탑승 상황에서도 선배와 후배의 역할을 명시한 것이다.

 신입사원 교육 기간 내내 평가 담당자가 사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점수를 매기고 아침 운동, 인사, 예절 교육 등 교육 참여에 소극적일 경우 감점을 가한다고 한다.

 A기업의 한 신입사원 B씨는 "하라니까 하긴 하는데 요즘 세상에 이런 것들을 시키나 싶어 화가 나거나 어이가 없어서 '피식'하고 웃곤 했다"며 "그러나 후배 입장에서 이런 문화를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남자(사원)가 많은 회사라 대부분 이런 군대문화에 쉽게 적응하긴 한다"며 "아무리 여성 비율이 적다고 대부분의 교육 내용이나 문화가 군대문화를 경험한 남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입사원 C씨는 "분명히 납득할 수 없는 점이 있긴 하다. 군대식 문화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면서도 "신입사원 입장에서 안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런 군대식 기업문화가 신입사원들에게만 강요되는 것은 아니다. 기성 사원들 사이에서도 선후배 관계의 예의가 강조되고 심지어 개인 사물함 검사까지 이뤄지는 등 수직적인 직장 문화 속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사원은 "군대 관물대 검사를 하듯이 근무시간에 개인 사물함을 때만 되면 검사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A기업 일부 직원들 말에 따르면 이 기업은 야근·휴일 근무를 장려하는 반면 수당 신청을 하면 눈치를 주는 분위기라 야근·휴일 수당을 신청하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한다. 사원 D씨는 "원칙적으로는 특근(야근·휴일 근무) 수당이 있다고 하는데 아무도 신청을 안 한다"고 전했다.

 심지어 한 선배 사원은 신입사원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주말을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주말에 일을 하면 남들보다 앞서나갈 수 있다"며 주말 근무를 종용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A기업 전·현직 직원들은 한 기업 정보 소셜미디어에 "21세기에 존재하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최악의 기업", "아직까지 수직적인 문화가 존재하는 기업. 군대문화가 남아있음", "군대문화와 70년대 직장문화를 고스란히 갖고 있는 곳", "상명하복 문화", "80년대 군대보다 더 빡센 군생활을 체험할 수 있음", "까라면 까라는 군대문화" 등 주로 군대문화에 빗댄 혹평을 남겼다.

 "잦은 야근에 수당도 없음", "야근이 심해 신입사원과 사원 대리급이 힘들어 함", "일과 삶의 밸런스를 기대하면 안됨. 자정을 넘기지 않으면 보통 10시~11시 퇴근. 사원 때부터 월 3회 정도 무급 토요일 출근", "야간근무가 많은 기업. 아침 7시반 출근해서 퇴근 정해지지 않고 야근 수당도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사무직은 안 줍니다" 등 야근·휴일 근무를 강요하지만 수당 신청이 어려운 현실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이런 사원 교육은 '군대문화'이기도 하고 너무 구시대적이다. 무조건 복종하라고 하는 근거 없는 갑질"이라며 "2017년도에 아직도 군대 문화에 기인한 이런 교육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전체주의적이고 민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박 노무사는 이 기업이 야근·휴일 근무를 강요하면서도 수당 신청이 어렵다는 일부 사원들 주장에 대해 "그것이 사실이라면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근로기준법은 최저기준인데 그것마저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조직 내 부당한 문화나 갑질을 드러내기 위해선 가진 모든 것을 다 걸고 해야 한다"며 "일하는 조직부터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사실상 고용 관계에 인질로 잡혀 신입사원이나 기존 사원들이 말을 잘 못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A기업 측은 "아침 점호가 아니라, 몇 주간 합숙하는 연수기간이기 때문에 아침 6시30분에 모여서 건강 유무를 체크한 것"이라며 "책걸상의 '오와 열'을 맞춘 것도 30분이 넘게 하진 않고 자연스럽게 한 것이다. 엘리베이터 에티켓 자료는 예의를 갖추자는 의미"라고 밝혔다.

 또 개인 사물함 검사에 대해선 "보안문제가 있으니 개인 서랍과 공용 캐비넷이 열려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지 개인 물품을 뒤지거나 하지 않는다"며 "일부가 부담스럽게 느꼈을지 몰라도 보안 사항이 있고 화재 예방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개인 물건을 뒤지는 경우는 없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수당을 신청하기 어려운 분위기임에도 야근·휴일 근무를 장려한다는 데 대해선 "옛날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도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게 하는(야근·휴일 근무를 강제하는) 부서나 선배들도 일부 있을 것이다. 그래도 회사 전체적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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