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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의 스크리닝]'브이아이피'와 남북 그리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스포일러 有)

등록 2017.09.09 06:50:00수정 2017.11.15 13: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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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영화 '브이아이피'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 영화 '브이아이피'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서울올림픽'이 성황리에 막을 내린 뒤인 1988년 10월 한 사건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다.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미결수 12명이 집단 탈주, 그중 지강헌 등 4명이 권총으로 무장한 채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한 가정집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였다.

경찰과 대치 중 일당 중 지강헌은 저격을 당한 뒤 병원에서 사망했다. 안광술, 한의철은 권총으로 자살했다.

2005년 이성재, 최민수 주연 영화 '홀리데이'(감독 양윤호)의 모티브가 됐던 '지강헌 사건'이다.

이 사건을 통해 유명해진 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돈이 있으면 죄가 없고, 돈이 없으면 죄가 있다'는 뜻으로 대한민국 사법 현실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주장이었다.

탈주범 중 한 명인 강영일이 동생 강모씨한테 보낸 편지에 등장했으며, 지강헌 역시 지상파 방송이 인질 사건 현장을 생중계할 때 이를 목이 터지라 외쳤다.
 
사건은 비록 비극적으로 일단락했지만, 그들이 남긴 유언과도 같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은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다.



경제적으로 2017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약 3만 달러로 이미 선진국 문턱에 섰고, 정치적으로는 군부독재를 국민의 힘으로 종식한 것은 물론 올바른 정치를 펼치지 못 한 대통령을 국민의 분노로 탄핵해 권좌에서 물러나게 만든 나라다.

그런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공감을 얻는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서울=뉴시스】영화 '홀리데이'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영화 '홀리데이'의 한 장면.


그러나 하나 더 생각해보자.

"어떤 자가 부하들을 동원해 벌건 대낮에 길에서 여고생을 납치해 집단 성폭행하고, 끔찍하게 살해한다. 심지어 그 가족까지 모두 살해한다. 그런데 그는 이런 사건을 한두 번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치안 당국이 범인을 특정하고 수사에 나섰는데 모종의 외압으로 수사가 종결된다. 한직으로 밀려난 해당 수사관은 부하들과 함께 살해당할 위기에 몰린다."

이런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다들 고개를 가로젓는다.

"제아무리 재벌 아들, 아니 대통령 아들이라도 저런 극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빠져나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고 단언한다.

다시 "북한이라면?"이라고 물으면 거의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는 반응을 보인다.

지난 8월23일 개봉한 장동건, 김명민, 박희순, 이종석 주연 '브이아이피'(감독 박훈정)의 스포일러성 줄거리다.

줄거리를 더 언급하면 이렇다.

"북한 최고위 간부의 아들인 '김광일'(이종석)은 탈북 후 국가정보원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공동 기획으로 극비리에 한국으로 망명해 국정원의 '보호'를 받는다.

얼마 뒤 서울 서남부 지역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관할 경찰서 수사팀장인 '채이도'(김명민)가 김광일이 범인임을 파악하고 그를 뒤쫓지만,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의 비호로 김광일은 번번이 수사 선상에서 벗어난다."

그렇다. 김광일이 바로 '그자'다.
 
영화를 보면 국정원이 정치적 이유로 김광일을 감싸지만, 경찰이 '증거'를 들이밀며 그를 체포하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 한다. 대한민국은 엄연히 법이 있고, 그래도 상식이 통하는 나라여서다. 

반면 북한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그려진다. 같은 끔찍한 범죄를 자행하고도 무소불위 권력을 등에 업은 덕에 김광일은 무사할 수 있었다.


【서울=뉴시스】 영화 '브이아이피'의 한 장면.

【서울=뉴시스】 영화 '브이아이피'의 한 장면.



정말 그럴까. 북한에도 '법'이 있는데.

물론 영화가 과장해 그렸을 수는 있으나 북한은 '1인 독재 국가'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최소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대한민국보다 더 강하면 강하지, 약하지는 않을 것이다.

새터민들이 증언한 북한 내 수많은 인권 유린 사건들을 고통스럽게 떠올릴 필요가 없다.

불과 30여 년 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였지만, 독재국가였다. 당시 권력이 작용해 억울하게 묻혔다 훗날 전모가 드러난 사건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해보면 현재 북한 상황을 가늠하고도 남는다.

'브이 아이 피'는 영화다. 즉, '허구'다.

잘 아는데도 보는 내내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는 나라 상태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북한이 핵무기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요즘이다. '예방 전쟁을 할 것이냐' '핵 인질이 될 것이냐'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아야 할 상황으로 점점 치닫고 있다.

그래서일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구시대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있지만, '비정상의 정상화'를 하든, '적폐 청산'을 하든 국민 힘으로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도 되는 내 나라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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