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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의 더블데이트] 이상으로 맺어진 인연···김연수·오세혁

등록 2017.09.14 18:28:43수정 2017.11.14 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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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연수 & 오세혁. 2017.09.14.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연수 & 오세혁. 2017.09.14.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 서울예술단 가무극 '꾿빠이, 이상'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작가 김연수(47)와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36)은 2015년 4월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처음 만났다. 이상의 집은 시인 이상(李箱·김해경·1910~1937)이 3세부터 23세까지 생의 대부분을 보낸 큰아버지 집 터의 일부를 개조한 것이다.

 2001년 이상의 삶을 모티브로 삼은 소설 '꾿빠이, 이상'을 내놓은 김 작가가 당시 이곳에서 '이상과 13인의 밤'이라는 타이틀로 연 행사를 기획했다.

 오 작가는 김 작가의 초청으로 당시 이 기획에 참여했다. 13명의 지인에게 이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부탁했고 그것을 기록했다. 13이라는 숫자는 이상의 시 '오감도'에서 따온 것이다.

  14일 오후 이상의 집에서 다시 마주한 김 작가와 오 작가는 '꾿빠이, 이상'을 모티브로 삼은 서울예술단의 가무극(뮤지컬) '꾿빠이, 이상'으로 약 2년5개월 만에 재회했다. 서울예술단이 김 작가에게 '꾿빠이, 이상'의 뮤지컬화를 제안했고, 오 작가에게 각색과 작사를 맡기면서 인연이 다시 이어졌다.

소설은 이상의 유품인 '데드마스크'에 대한 진위를 중심으로 이상의 삶과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며 그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단순한 정의로 규정할 수 없는 이상 그리고 그의 삶을 다룬 만큼 공연 역시 평면적인 형태를 거부했다. 무대와 객석 그리고 형식마저 파괴하는 '이머시브 공연(Immersive Theatre)'이다.

 21일~30일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데 이곳은 무대와 객석의 변형이 가능한 블랙박스 시어터다.

김 작가는 "뮤지컬은 스토리를 소비하는 장르가 아니에요. 제 소설을 스토리 위주로 만들었으면 부정적이었을 텐데 실험적으로 접근하셔서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김연수 & 오세혁. 2017.09.14.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연수 & 오세혁. 2017.09.14.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뮤지컬 '꾿빠이, 이상'은 관객들이 특정한 장소에서 한 방향으로만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아닌, 돌아다니면서 여러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 또는 삶을 보내는 배우들을 관찰 또는 그들의 삶에 빠져들게 한다. 세명의 이상들을 제외한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 1호 속 '13인의아해'들을 연기하는 배우 또는 무용수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스스로 삶을 산다.

오 작가는 처음부터 이머시브 형태의 공연을 고민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서울예술단에서 연기, 무용 등 각자 특기가 있는 단원들을 동등하게 대해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는데 소설 '꾿빠이, 이상'이 이 형식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소설에도 나오지만 이상이 신화적인 인물로 남을 수 있었건 비밀이 있어서예요. 모호해서 잘 알 수 없어서죠"라면서 "그를 명확하게 만들수록 작품이 이상해지더라고요. 데드마스크가 있다고 하지만 그게 있었는지 누가 떴는지 모르고 마지막 얼굴을 누가 봤는지도 모르죠. 그런 점이 잘 드러났으면 했다"고 전했다.

오 작가는 작품을 각색하는 초반에는 이상의 독백만으로 30쪽을 채웠다. 이후 오루피나 연출, 김성수 음악감독, 여신동 무대 디자이너와 함께 의견을 주고 받으며 무용, 노래, 드라마에 방점을 찍을 부분을 나눴다. "그렇게 하다보니 입장이 동등해지더라고요. 더 즐겁게 신나게 논의를 하며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서울=뉴시스】 김연수, 작가 2017.09.14.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연수, 작가 2017.09.14.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김 작가는 장편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소설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 등을 통해 마니아층을 보유한 스타 작가다. 본명이 김영수인 김 작가는 영 대신 사용한 필명(筆名) 연(衍)도 이상이 쓴 소설 '단발'의 남자 주인공의 이름에서 따올 정도로 그의 팬이다. 영문학과를 나왔지만 이과였던 고등학교 때부터 이상을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김 작가는 "제가 처음으로 좋아한 문인이에요. 이과생이던 때라 문학을 안 좋아했어요. 문학이 교과서에서 해석되는 것에 대해 도전 의식이 안 느껴졌었다"면서 "그러다 이상을 읽고 이해하기가 어려워 흥미를 갖게 됐다"고 했다.

"이상 작품을 읽으면서 그 전에 문학에 대해 갖고 있던 전제를 버리게 됐죠. 문학이라는 것이 이해를 못해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느낀 거예요. 도전의식을 준 거죠. 그 때부터 문학에 매료됐어요. 이해가 불가능한 것, 그것이 제 삶이나 저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 거죠. 모두 답을 알고자 하지만 결국 답은 얻기 어렵잖아요. 그것을 어떻게 보유하는지에 대한 과정이죠. 그런 점으로 인해 이상에 대해 빠지게 됐죠."

오 작가는 현재 대학로에서 가장 잘 나가는 창작자다. 극단 걸판의 상임 작가인 그는 현재만 해도 연극 '프론티어 트릴로지'의 윤색, 연극 '라빠트르망'의 각색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초 '제1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그에게 연출상을 안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재연도 앞두고 있다. 

그런 그가 이상에 빠진 건 초등학교 때 이상의 수필 '권태'를 읽으면서부터다. 그는 "어쩜 인생이 이렇게 권태로울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린 나이이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다양한 것을 해왔고 지금도 틈틈이 '권태'를 읽어요. 이상은 제게 인생의 권태를 예감하게 해준 작가"라고 했다.

【서울=뉴시스】 오세혁, 극작가 2017.09.14.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오세혁, 극작가 2017.09.14.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김 작가는 뮤지컬로 옮겨지면서 작품이 변형될 거라고 당연히 생각됐지만 소설 '꾿빠이, 이상'뿐만 아니라 이상의 원래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데드마스크와 새의 상징성만 가지고 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했다.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 응급실에서 아마추어 이상 연구자인 서혁민이 젊은 이상을 만나는 환상 장면, 동경 유학생들이 이상의 데드마스크를 뜨는 장면도 남겨줬으면 했다. 오 작가는 김 작가와 논의를 하지 않았는데도 각색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 흔적들을 남겨놓았다.
 
김 작가는 "인생은 찾을 수 없어요. 불만족이 모인 것이 현실이죠. 이상이 그걸 보여줬어요. 인생은 그걸 받아들이는 과정으로 불만족한 상태고 그것이 현대인이 처한 상태"라고 짚었다. "그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문학이 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김 작가의 작품은 낭독 공연으로는 여러 번 올려졌으나 정식으로 무대화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앞서 그의 단편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극단 슈퍼마켓가계도가 2013년 창단공연으로 문래예술공장에서 선보인 바 있다.

【서울=뉴시스】 김연수 & 오세혁. 2017.09.14.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김연수 & 오세혁. 2017.09.14.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우연히 만난 작가 장정일이 그에게 희곡운동을 역설, 희곡을 써서 연극 무대에 올리려는 계획도 세웠던 김 작가는 "소설은 생각인데 (희곡의) 대사는 설명을 하고 치고 들어와야 해서 강렬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뮤지컬은 전혀 달라요. 작가의 눈으로 봤을 때는 서사가 단순하고 선이 굵은데 그것이 제일 먼저 보이죠. 영화를 볼 때도 제 한계가 나오죠. 소설로는 그걸 쓸 수는 없어요. 그래서 영화 시나리오, 연극 대본을 선뜻 써보겠다고 하는 것이 어려워요."

다만 1930년대 초반 항일유격 근거지인 북간도에서 벌어진 민생단 사건을 다룬 자신의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2008)는 희곡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했다. 김 작가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쓸 수밖에 없던 작품이라, 내부의 시선으로 극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어서 희곡으로 옮기고 싶다"고 했다. 오 작가 역시 '밤은 노래한다'를 공연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하자 김 작가는 경쟁자가 생겼다고 웃었다.

  말년에 북한에서 살며 시를 정식으로 발표하지 않은 시인 백석에 대해 궁금해 그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김 작가는 최근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단편 '거기 까만 부분에'를 발표하고, 장편 '바다 쪽으로 세 걸음'도 준비 중이다. 동시에 사진전 등 다양한 행사를 통해 다른 장르의 대중과 만나는 일도 열심을 내고 있다.
 
  "원래는 소설만 쓰고자 했는데 이제 제안하시는 행사를 거절하지 않아요. 그런 식으로 만나 보면 다른 식으로 확장이 되더라고요. 전시장에 제 작품을 글로 직접 쓰는 작업을 했는데 책으로만 보던 것과는 다른 감상 지점이 보이더라고요. 다음주에 뮤지컬 '꾿빠이, 이상'을 보게 될 텐데 역시 그런 지점에서 기대가 커요. 보고 나서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저 자신도 예측을 할 수 없어요. 다른 자극 같은 것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김연수 작가는 수필, 소설, 시뿐 아니라 건축 등에 관심을 가지며 경계를 넘나든 이상처럼 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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