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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숙·차진엽·김보라 "페미니즘 넘은 여성 안무가의 지형도 볼수있을 것"

등록 2017.09.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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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제2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에서 공연하는 무용가 전미숙, 차진엽, 김보라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 무용원에서 뉴시스통신사와 인터뷰 중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제2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에서 공연하는 무용가 전미숙, 차진엽, 김보라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 무용원에서 뉴시스통신사와 인터뷰 중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2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사회가 맥락을 만든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표현 자체가 페미니즘이 된다. 여성의 몸짓은 여성에 대한 관음·비하·혐오가 난무하는 남성중심 사회에서 의도와 상관없이 저항의 상징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이사도라 덩컨(1878~1927)이 맨발로 무대로 오른 건 여성무용수 자유를 위한 몸짓이었던 동시에 현대무용의 개척이었다. 미국의 현대무용가 도리스 험프리(1895~1958)는 "잠 자는 숲속의 미녀가 오랫동안 누워 있던 고상한 침대에서 박차고 일어났다"고 표현했다. 

전미숙(59)·차진엽(39)·김보라(35)는 공고화된 한국 무대를 박차고 일어난 걸출한 여성 안무가들이다. 페미니즘을 넘어 사람 그리고 사회 자체를 고민하게 만든다.  

한예종 스승과 제자 관계인 세 사람이 '2017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시댄스)'를 통해 뭉쳤다. 전미숙무용단의 이름으로 10월 25일~26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각자 작품을 통해 자신과 무대 그리고 사회를 톺아본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세 사람은 "활발히 활약하는 여성 안무가, 무용수가 많지 않는데 이번 무대가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는 자리였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30~40대 무용가들이 80%가 남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이들이 작품을 올린다는 것 자체만으로 무용·사회학적으로 방점이 찍힌다.

현대무용계 어른으로 자리매김하는 대신 동시대를 함께 하는 선배로서 젊은 감각을 뽐내고있는 전미숙, 진보적인 차진엽, 깊게 파고드는 김보라의 작업의 형태는 극명하게 다르다. 이로 인해 공연은 지금의 여성 안무가의 지형도를 톺아보는 지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미숙 '아듀, 마이 러브'

전미숙의 솔로 작품인 '아듀 마이러브'는 2001년 초연했다. 붉은 천, 앉은뱅이 밥상 같은 소품이 극의 분위기를 드러내고, 이미자의 '댄서의 순정'과 그에 맞춰 추는 춤이 전미숙의 심정을 대변한다.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제2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에서 공연하는 무용가 전미숙, 차진엽, 김보라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 무용원에서 뉴시스통신사와 인터뷰 중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2017.09.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제2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에서 공연하는 무용가 전미숙, 차진엽, 김보라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 무용원에서 뉴시스통신사와 인터뷰 중 밝은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2017.09.25.  [email protected]

세계 현대무용 인물 사전(1998·뉴욕)까지 등재된 그녀가 무대에서 춤을 춰야 하는 무용수로서의 존재감이 희석, 즉 은퇴까지 생각한 갈등을 담은 극이다. 근데 아이러니하게 2007년, 2009년, 2016년 공연하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전미숙은 "제 주변이나 자서전 같은 이야기로 경계를 짓고, 사회적 현상을 결합시켜 작품을 만든다"면서 "'아듀, 마이 러브'는 40대 중반의 나이에 춤꾼으로서 무대와는 '바이'(bye)를 하겠다는 결심에 올렸던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붉은 천, 저보다 큰 밥상은 무대가 제게 주는 압박감을 뜻했어요. 무대에서 무용수로서의 힘듦과 무게감을 드러내는 작품이었는데, 여성의 삶과도 맞닥뜨리게 됐죠. 보통 여성이 갖고 있는 가사의 노동과 공통분모가 생겼던 거죠."

전미숙이 페미니즘을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주변에서 그런 맥락을 읽었다. 최근 국내 초연한 전미숙무용단의 '바우(BOW)' 역시 '인사'라는 단순한 제스처와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그렸는데 사람들이 자연스레 사회적 의미, 이 속에 숨겨진 인간관계의 이중성과 아이러니를 포착한 것처럼. 전미숙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조직과 사회 그리고 나라 문화를 이야기하게 된다는 것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차진엽 '리버런 : 불완전한 몸의 경계'

차진엽은 외면상 가장 대중적인 안무가다. 엠넷 '댄싱9'의 심사위원으로 얼굴을 내비칠 당시 화려한 외모와 스타일로 일반 대중에 알려졌다.

하지만 작품 면에서는 가장 진보적인 안무가로 통한다. '2015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제작 공연인 '제5회 솔로이스트-여무(女舞)'에서 동갑내기 시각예술가 빠키(39·빠빠빠탐구소 대표)와 선보인 '리버런: 달리는 강의 현기증'이 대표적이다.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제2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에서 공연하는 무용가 전미숙, 차진엽, 김보라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 무용원에서 뉴시스통신사와 인터뷰 중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2017.09.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제2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에서 공연하는 무용가 전미숙, 차진엽, 김보라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 무용원에서 뉴시스통신사와 인터뷰 중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2017.09.25. [email protected]

제임스 조이스(1882~1941)의 '피네간의 경야'(Finnegan's Wake)에서 모티브를 따온 작품으로 반복되는 영상 패턴과 순환하는 무용 동작으로 빨려들 듯한 시각 쾌감을 선사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리버런 : 불완전한 몸의 경계'는 '리버런 : 달리는 강의 현기증'의 연작이다. 역시 빠키와 공동협업한다.

기계와 인간의 육체가 무한한 반복 속에서 변형되는 과정을 통해 다양한 모순과 왜곡된 시선에 대해 저항한다. '피네간의 경야'는 마지막 단어가 '더'(The)로 끝나고, 책의 첫 문장은 '리버 런(Riverrun)'으로 시작한다. 처음과 끝이 순환하는 맥락이다.

차진엽은 "연속되는 순환 구조는 삶의 비유에요. 삶과 죽음을 반복하고 그것은 여성의 몸으로 이어져요. 출산과 잉태하는 몸으로"라면서 "생명이 죽고 태어나는 걸 반복하는 몸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했다.

"'불완전한 몸의 경계'라는 작업은 몸을 기호화해서 몸에 대한 탐구를 하는 작업이에요. 기계와 몸에 대한 관계를 이분법이나 대립으로 보는 것이 아닌, 두 가지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둘의 관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작심하고 여성성을 탐구한 작품은 아니다. 다만 차진엽이 완벽한 도형이라고 생각하는 원의 형태에 자궁을 가지고 있는 여성의 곡선을 담아 반복되는 패턴을 그리고, 비체계적인 움직임을 통해 원의 상징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차진엽은 이와 함께 자신이 이끄는 콜렉티브에이와 영국의 어레이(Array)가 함께 만드는 '미인:MIIN'을 10월 13일부터 18일까지 문화비축기지 탱크1 파빌리온과 탱크2에서 선보인다.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 파괴·소비화된 여성의 미(美)를 다룬다.

차진엽은 "남성, 여성으로서 애써 구분하기보다 저는 그냥 제 이야기, 제 몸에 대한 탐구에 집중한다"면서 "제 몸에 대한 관심이 많다 보니 몸이 어디서 왔는지 심리적으로 궁금할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에서 만들어놓은 시선에 비판적인 것이 있어 표현하지 않으려고 해도 보여지는 부분이 있죠. 관객들이 이 작품에서 여성작가 또는 차진엽 그리고 또 다른 무엇을 보실 지 궁금해요."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제2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에서 공연하는 무용가 전미숙, 차진엽, 김보라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 무용원에서 뉴시스통신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7.09.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제2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에서 공연하는 무용가 전미숙, 차진엽, 김보라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 무용원에서 뉴시스통신사와 인터뷰하고 있다. 2017.09.25. [email protected]

◇김보라 '100% 나의 구멍'

김보라는 현대무용과 다른 장르 간의 벽을 허물며 무용계에 '보라처럼'이라는 말을 유행시킨 블루칩이다. 남편 김재덕과 각자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부부 생활로 젊은 세대에서 워너비로 떠올랐다.

그녀의 작업은 여성을 목적어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주어가 여성이다 보니 저절로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에 비판적으로 읽힌다.
 
신작인 '100%나의구멍'은 2011년 초연한 작품이자 '안무가 김보라'를 알린 '혼잣말'을 중심으로 한 변이시리즈 중 하나다. 각종 구멍을 중심으로 한 '되기'(becoming)라는 과정을 통해 몸을 인식하는 기존 방식에 질문을 던진다.

김보라는 "이번 작품 제목의 구멍은 몸의 구멍일 수 있고 저의 안 보이는 구멍일 수 있으며 또한 허점이라는 구멍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녀는 무엇보다 기본으로 돌아가고자 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으로 돌아가기 위한, 첫 시작이라고 할까요. 안무가의 정체를 채우기 위해 빈 공간을 그대로 비우는 거예요. 그래서 '무엇을 표현한다' '나를 표현한다'기 보다 '어떻게 표현할까 '어떤 방법을 사용할까'가 중심이 됐죠."

자신을 비우는 걸 택하다보니  본인이 안무가임에도 다른 안무가들을 초빙하는 방법을 차용했다. 김보라가 퍼포머가 되는 셈이다. 그녀와 작업한 안무가, 무용수들의 단편이 김보라에게 입혀지는 것이다. 일종의 역할 바꾸기다.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제2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에서 공연하는 무용가 전미숙, 차진엽, 김보라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 무용원에서 뉴시스통신사와 인터뷰 중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25. amin2@newsis.com

【서울=뉴시스】전진환 기자 = 제2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에서 공연하는 무용가 전미숙, 차진엽, 김보라가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 무용원에서 뉴시스통신사와 인터뷰 중 밝은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09.25.  [email protected]

김보라는 이 작업을 '김보라 되기'로 표현했다. 그녀는 "기본, 즉 김보라로 돌아살갈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이 방법이 치밀하게 계획대로 된다면 대중과 다른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보라가 생각하는 대중과 소통은 대중과 발을 맞춰가는 것이 아닌, 재미있고 색다른 방법을 통해 관객을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래서 안무가·퍼포머·관객 또는 관객과 무대에 대한 경계를 허무는 작품을 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독창적인 작업 방식에, 여성 안무가가 주체가 됐다는 이유로 여성주의라는 수식을 붙이기도 한다.
  
김보라는 "최근 학교에서 여성 활동 연구서 창간호에 여성주의 관점의 에세이를 써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제 작업을 '여성주의'로 나누려고 하다 보니 못 쓰겠더라"면서 "제가 여성이니 작업, 경험, 생활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에서 그 부분이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무자들이 진정성을 말할 때가 많잖아요. 같은 맥락일 수 있는 데 그걸 목적으로 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나야죠. 그걸 목적으로 하는 순간 저초자도 구태의연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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