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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작가로 산다는 것···홍순명 '장밋빛 인생'

등록 2017.09.25 15:40:57수정 2017.09.25 17: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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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홍순명, 다이아몬드 포레버-세실로즈. 2017. oil on canvas. 182x227cm

【서울=뉴시스】홍순명, 다이아몬드 포레버-세실로즈. 2017. oil on canvas. 182x227cm


 ■'이인성 미술상' 수상 기념 개인전
대구미술관, 회화·설치등 100점 전시

【서울=뉴시스】박현주 기자 = 전업작가 홍순명은 작년 10월 아프리카 르완다에 다녀왔다. 르완다에서는 1994년 후투족 출신 쥐베날 하브자리마나(Juvénal Habyarimana) 대통령이 전용기 격추 사고로 숨진 사고로 후투족과 투치족 간 종족 전쟁으로 제노사이드(genocide)의 비극을 겪은 나라다. 600만이 채 안 되는 인구 중 80만에서 100만 명 정도의 사람이 겨우 석 달 만에 학살당한, 거의 모든 국민이 경험한 민족적 참사는 이방인 작가에게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가까운 과거에 일어난 엄청난 슬픔의 현장에 서서 그는 예술가의 역할과 위치를 생각했다. "이런 사건 앞에서 예술이, 미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떠올렸다. 사후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혹시 그런 일을 방지하는데 일조할 수 있지는 않은지 자문했다."

제 17회 이인성 미술상(2016)을 수상한 홍순명(58)은 '사건 기록 작가'다. 시대의 고통과 아픔을 지나치지 않는다. 미술을 통해 사소함의 위대함을 전한다.

  동시대를 관통하는 그의 작품은 포장술이 강력하다. 민중미술가들이 거칠고 노골적이게 시대의 아픔을 표현한 것과는 달리, 아름답고 기묘하게 드러낸다. 모호하고 불분명하게 추상성으로 함축한 작품은 사회․정치적 쟁점들이 머금고 있는 풍경이다. 폭력과 부조리, 모순의 문제들이 화려한 색채와 형상으로 버무려 에둘러 비평한다.

 하지만 한 장르로 규정할수 없는 작가다. 1980년대 화단에 데뷔한 그는 한 우물만 파기보다는 다양한 실험을 섭렵했다. 회화 작업은 기본, 설치·판화·입체·미디어 아트·조각 등 광범위한 영역을 넘나들며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왔다.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홍순명의 작업 전체를 조망해 보면, 한 사람의 작가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궁극적인 이유에 대한 깊은 사유와 만나게 된다"고 했다. 또 미술평론가 김찬동은 "홍순명의 작품에서는 어두운 실상의 단편들이 장밋빛으로 슬프도록 화려한 색채로 드러난다"고 했다.
 
【서울=뉴시스】세월호 사건이나 밀양 송전탑 문제, 여수의 기름유출 사고처럼 구체적인 장소에서 현장의 기억을 담고 있는 오브제에 현장의 사건이나 풍경을 그린 '메모리 스케이프' 연작.

【서울=뉴시스】세월호 사건이나 밀양 송전탑 문제, 여수의 기름유출 사고처럼 구체적인 장소에서 현장의 기억을 담고 있는 오브제에 현장의 사건이나 풍경을 그린 '메모리 스케이프' 연작.


  장르와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홍순명의 작업 세계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됐다. 

  대구미술관(관장 최승훈)은  ‘이인성 미술상’ 수상 기념전으로 홍순명 개인전 '장밋빛 인생 La Vie En Rose'전을 26일 개막한다.‘이인성 미술상’은 한국근대미술사에 큰 업적을 남긴 대구출신 천재화가 이인성(1912~1950)의 작품세계와 높은 예술정신을 기리고 동시대 미술계 발전에 기여하고자 1999년 대구시가 제정한 상이다.

 홍순명은 이번 전시에서  최근 10년간의 주요 연작 100점(3500 pieces)을 대규모로 소개한다.

'사이드 스케이프(Side scape)', '메모리 스케이프(Memory scape)', '사소한 기념비(Ordinary Monument)',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등 4가지 주제로 선보인다.

'사이드 스케이프'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오랜 기간 동안 집중해 온 연작이다. 작가는 온·오프라인에서 수집한 언론보도 사진을 재편집한 후 뉴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보를 배제한 주변풍경을 담아낸다. 이를 통해 사건의 진실은 일반적으로 주목하는 대상이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사이드 스케이프'가 보도사진에서 발췌한 이미지를 사용한 작품이라면 '메모리 스케이프'는 각종 사고 현장에서 수집한 물건들로 조각과 회화가 결합한 작품이다. 작가는 내부의 오브제가 부식되어도 형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여러 겹 이상의 캔버스 천을 겹겹이 쌓아 붙여 만들었다.

'사소한 기념비' 시리즈는 세월호 사건 현장인 팽목항에서 수집한 사물들을 투명 랩으로 감은 오브제로 공기방울로 올라오는 희생자들의 마지막 호흡과 투명하게 응집된 분노, 추모의 감정을 담아낸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여있는 세월호 사건은 현재까지도 그 원인을 규명 중에 있지만, 홍순명은 이 사건을 바라봄에 있어 사건의 비리나 부조리를 직설적으로 파헤치기보다는 예술적 관조와 승화의 방식을 택하고 있다."(미술평론가 김찬동)

한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304점(35cmX40cm)이 모여 하나의 대형작품(280cmX1,520cm)을 이루는 ‘세월호 시리즈-건져진 세월호 외(2017)’를 처음 소개한다.

【서울=뉴시스】홍순명, 팽목, 2014년 4월 25일, 2016, oil on canvas, 218x291cm

【서울=뉴시스】홍순명, 팽목, 2014년 4월 25일, 2016, oil on canvas, 218x291cm


 미술평론가 임근혜는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에서 수천 개의 소품으로 연출되는 스펙타클한 스케일이 보여주는 힘은 지난 겨울, 우리 사회를 관통했던 분노와 희망을 상징하는 촛불과 불의의 권력에 저항하는 작은 몸짓들로 가득 찼던 광장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장밋빛 인생' 시리즈는 사건 주변부 뿐만 아니라 이면을 구성하는 광범위한 허위구조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분홍빛을 주조로 삼은 그림은 분명 지구상의 온갖 문제들을 담고 있는데, 사건과 무관한 그림처럼 보인다.

【서울=뉴시스】홍순명, 바르다크. 2009년 8월 3일. 2009. oil on canvas. 180x305cm

【서울=뉴시스】홍순명, 바르다크. 2009년 8월 3일. 2009. oil on canvas. 180x305cm


 유대인 수백만 명을 학살 수용소로 이송시킨 ‘아돌프 아이히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에 종사했던 영국의 대표적인 제국주의자 ‘세실 로즈’, ‘4대강’ 등 어두운 실상의 단편들을 장밋빛으로 슬프도록 화려하게 표현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대구미술관은 전시기간 매일 오후 2시, 4시(1일 2차례)작품 설명을 연다. 작가의 예술세계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아티스트 토크가 11월 4일 오후 3시 열릴 예정이다. 전시는 2018년 1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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