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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아빠 충격에 기부·후원 문화 '찬물' 우려

등록 2017.10.11 11:5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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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여중생 딸 친구 살해·시신 유기 사건의 피의자 '어금니 아빠' 이모씨가 11일 오전 현장검증을 위해 서울 중랑구 사건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2017.10.11.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여중생 딸 친구 살해·시신 유기 사건의 피의자 '어금니 아빠' 이모씨가 11일 오전 현장검증을 위해 서울 중랑구 사건현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2017.10.11. [email protected]

희귀병 딸 수술비로 쓴다더니 고급차 돌려타
"후원금으로 호화생활? 기부하면 뭐해" 냉소
"배신감 이해하지만 조금 더 믿고 기부해야"
"정보공개 투명하게, 사용내역 꼼꼼히 밝혀야"

 【서울=뉴시스】이예슬 남빛나라 기자 = '어금니 아빠'로 알려진 이모(35)씨의 이중생활이 기부·후원 문화에 찬물을 끼얹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씨의 여중생 살인 사건이 자칫 불우이웃에 온정을 나누던 이들과 평소 기부에 긍정적 시각을 유지했던 잠재적 후원자들의 마음을 닫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 등에 따르면 방송 출연 등을 통해 희귀병으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했던 이씨는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차량 튜닝에 열을 올리는 등 호화로운 취미 생활을 즐겨온 정황이 드러났다.

 어려운 이들의 사연을 접하면 없는 살림에도 생활비를 쪼개 기부를 하곤 했던 상당수 시민은 이씨의 이중성에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딸 수술비 없다고 호소하더니···

 이씨가 '어금니 아빠'로 불리게 된 것은 십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얼굴 전체에 종양이 자라는 '거대 백악종'을 앓는 이씨와 그의 딸 이양(14)의 사연이 한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지면서다. 몇 차례의 수술을 반복하면서 잇몸을 모두 긁어내 어금니만 남았기에 '어금니 아빠'라는 별칭이 생겼다.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이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2014년 6월까지도 "딸의 수술비가 없다"며 치료비 모금 홈페이지 주소를 남겼다. (사진=이씨 트위터 캡쳐)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이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2014년 6월까지도 "딸의 수술비가 없다"며 치료비 모금 홈페이지 주소를 남겼다. (사진=이씨 트위터 캡쳐)


 방송 이후 시청자들이 성금을 전달하는 등 각계에서 후원의 손길이 이어졌다. 이씨는 2007년 '어금니 아빠의 행복'이라는 책도 썼다. 이 책의 판매 수익금 일부 역시 이양의 수술비를 지원하는 데 쓰였다.

 이씨는 부녀의 사연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06년 12월25일부터 약 일주일 가량 서울 중랑구 망우역에서 강원 강릉시 정동진까지 자전거로 국토대장정을 벌였다. 이 행사에는 이씨를 응원하기 위해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도 함께 했다.

 이씨는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딸의 근황을 설명하고 후원을 부탁하는 글을 자주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2014년 6월까지도 "딸의 수술비가 없다"며 치료비 모금 홈페이지 주소를 남겼다.

 이처럼 딸의 수술비가 없다며 시작했던 각종 모금 활동들은 점차 이씨의 호화 취미를 위해 쓰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조사 등에 따르면 이씨는 특별한 직업 없이 후원금으로 생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 결과 이씨는 본인 명의의 포드 토러스 차량과 누나 명의의 에쿠스, 형 지인이 소유한 BMW 스포츠유틸리티차(SUV)를 번갈아 타고 다녔다. 차량을 튜닝하거나 혈통견을 분양받고 이 개가 낳은 새끼를 비싼 가격에 팔았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이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딸의 근황을 설명하고 후원을 부탁하는 글을 자주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 딸을 후원해 달라는 취지의 카페를 개설하기도 했다. (사진 = 네이버 카페 캡쳐)

【서울=뉴시스】이예슬 기자 = 이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딸의 근황을 설명하고 후원을 부탁하는 글을 자주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 딸을 후원해 달라는 취지의 카페를 개설하기도 했다. (사진 = 네이버 카페 캡쳐)


 ◇기부문화에 악영향 끼칠까 걱정

 이씨가 후원금으로 풍족한 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부를 해도 필요한 데 쓰이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에 기부를 꺼리게 됐다는 이들도 있다. 이 때문에 정작 후원이 필요한 이들은 도움의 손길을 얻기 어려워 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원 김모(28)씨는 "이씨 사건을 접하고는 기부하고픈 마음이 더욱 작아졌다"며 "특히 최근엔 인터넷 공간에서 창구가 많아지다보니 개인 간 주선으로 모금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기에 기부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부자도 힘든 상황에서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돈을 내놓은 것일텐데 이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배신감이 굉장히 클 것"이라며 "이 배신의 감정 때문에 다음 기부를 망설이게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기부 문화가 자리잡지 않은 상태인데 선순환 고리를 끊을까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지난 8월 새희망씨앗 성금 유용 사태도 있었는데 기부자들의 피로도와 우려가 가중되는 사건들이 이어져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희망씨앗 단체 대표 윤모(54)씨는 지난 8월 후원금 128억원을 빼돌려 고급 외제차와 아파트를 구입하는 등 호화 생활을 누리다 구속됐다.

 비단 몇 가지 사건 때문에 기부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당부도 있다.

 비케이 안(Bekay Ahn) 한국기부문화연구소장은 "한 사건을 보고 기부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방식"이라며 "도움을 주면 결과 보고가 없으니 불신이 생기는 것인데 기부 문화에 관한 한 믿고 주는 것이 안 믿는 것보단 낫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부를 하고 싶다면 정보 공개가 투명한 기관을 선정하고 기관들도 기부자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사용 내역을 꼼꼼히 밝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모금회 관계자는 "기부자들은 연말 결산보고, 감사보고 등 정보공개가 투명한 단체를 선정할 필요가 있다"며 "기부금이나 정부 보조금, 사업수익 등을 낭비 없이 효율적으로 사용하는지 여부도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단체들도 성금 관리를 엄정하고 투명하게 하고 신뢰도를 위해 피드백을 하는 등 기부자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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