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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체육 현장을 가다]‘야구 없이 못살아’···여성 야구단 ‘히로인즈’

등록 2017.10.18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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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성야구단 히로인즈 선수들이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야구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연습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10.17.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성야구단 히로인즈 선수들이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야구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연습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10.1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희준 기자 = 지난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야구공원. 유니폼을 챙겨입은 여성들이 하나 둘 다이아몬드로 모여들었다.

 서울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지원을 받는 여성 야구단 히로인즈다.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선수들은 30여분간 러닝과 스트레칭을 했다. 누구 하나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러닝과 스트레칭을 마친 뒤에는 캐치볼을 시작했다. 서로 자세를 알려주면서 캐치볼을 하는 이들에게서 프로 선수 못지 않은 진지함이 느껴졌다.

 히로인즈는 서울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추진해 지난해 4월 창단한 여성 야구단이다.

 히로인즈 감독을 맡고 있는 이호상 서울시야구소프트볼협회 국장은 "야구가 남자들에게 특화돼 있는 운동이다. 하지만 생활 체육이라면 여자들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취지에서 만든 여성 야구단이 히로인즈"라고 전했다.

 선착순 마감으로 25명까지 모집했는데, 50명이 넘게 지원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는 것이 이호상 국장의 말이다. 이 국장은 "지금도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여건상 인원을 늘리는 것이 힘들어 25명 정도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히로인즈'라는 이름은 선수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결정한 것이다. 총무인 이병희씨는 "히어로즈의 여자 버전의 뜻이 히로인즈"라고 설명했다.

 히로인즈 선수들은 주말에 모여 훈련을 한다. 토요일에는 자율적으로 나와 3~4시간 정도 훈련하고, 일요일에는 정기훈련을 한다. 정기훈련은 5시간 정도 진행된다.

 주말에는 여자 야구 선수지만, 평일에는 각기 다른 삶을 산다. 고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기혼자까지 있는 만큼 면면이 다양하다. 회사원부터 체육학 박사과정 중인 대학원생, 스포츠 강사도 있고, 학원 선생님, 수의사가 직업인 선수들도 있다. 공군 소령과 초등학교 교사, 가수도 히로인즈 선수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성야구단 히로인즈 김영애 선수가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야구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2017.10.17.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성야구단 히로인즈 김영애 선수가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야구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2017.10.17. [email protected]

◇과정은 다르지만 한 마음 "야구가 직접 하고 싶어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온 만큼 선수들이 히로인즈에 들어오게 된 계기나 과정은 서로 다르다.

 하지만 이유는 한결같다. 야구가 너무 좋아서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하려고 나섰다는 것이다.

 서울시립대에서 체육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정하나(31)씨는 "운동을 취미 이상으로 빠져서 하는 경향이 있었다. 스키를 타러 가려고 휴학을 한 적도 있다"며 "그러다 2010년 잠실구장에서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의 프로야구 경기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야구 팬으로만 지내다 1년 뒤 동호인 야구를 시작했고, 히로인즈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이영수(42)씨는 "야구를 워낙 좋아했다. OB 시절부터 두산 팬이다. 그런데 직접 해보고 싶었다. 고등학생 아들이 야구부에 들고 싶다는 것을 내가 무척 반대해서 못하게 했는데, 아들이 직접 신청해 줘 히로인즈에 들어오게 됐다"며 웃었다.

 이어 "남편, 아들이 야구를 좋아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고 말했다.

 나리라는 이름으로 '안아줄게요'라는 곡도 발표한 가수 설나리(25)씨는 "중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좋아했다. 음악을 한다고 야구에 대해 잊고 있다가 20세가 된 후 다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그래서 야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야구 때문에 아예 진로를 바꾼 이도 있다. 티볼 강사, 사회인 야구 심판으로 활동 중인 김영애(34)씨다.

 음향제작을 전공하고 9~10년 동안 관련 일을 하던 김영애씨는 다른 동호인 야구에서 취미로 야구를 시작했다가 진로를 아예 바꿨다.

 김영애씨는 "원래 마케팅을 배워서 야구 관련 일을 하고 싶었는데 마케팅 전공을 하지 못해 야구는 취미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음향 관련 일은 내가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된 것을 재가공하는 일이었다. 그런 것이 아닌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회가 적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싶었고, 동호인 야구를 하면서 야구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야구 심판 자격증과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며 "야구 심판은 남자가 많은데 여자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진로를 완전히 바꾸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성야구단 히로인즈 정하나 선수가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야구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투구 연습을 하고 있다. 2017.10.17.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성야구단 히로인즈 정하나 선수가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야구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투구 연습을 하고 있다. 2017.10.17. [email protected]


 ◇직접 야구하는 매력 "어려워져도 하나씩 해나가는 재미"

 히로인즈 선수들은 야구를 보는 것과 직접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말하는 '직접 하는' 야구의 매력은 뭘까.

 수의사로 일하면서 히로인즈 야구 선수로 활동하는 이병희(37)씨는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병희씨는 "모바일 게임을 할 때 어려워져도 하나씩 깨는 재미가 있지 않나. 직접 야구를 하는 것도 그런 느낌"이라며 "이것 하나를 성공하면 또 다른 것을 하고싶어진다. 하나씩 해나가는 희열을 느낀다"고 전했다.

 정하나씨는 "팀 운동이지만, 개인운동이기도 하다. 기록이 남으니 다른 선수들과 비교도 할 수 있다"며 "수치를 통해 내가 얼마나 하는지가 나오는 것도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영애씨는 "야구가 순간적인 집중력이나 판단력이 중요하다. 그게 조금씩 좋아지는 재미에 야구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주부로 살다가 야구를 시작한 이영수씨는 "요즘 야구가 유일한 낙"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영수씨는 "이 나이에 새로운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이곳에서 연령대가 다양한 친구들을 만났다. 내 자신을 찾아가는 느낌이다"며 "팀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언니 잘한다'는 말을 듣는다. 주부가 된 이후 처음 듣는 말이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영수씨의 소개로 히로인즈에 입단했다는 이경숙(44)씨는 "힘들고 어렵지만,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도전한다는 것이 즐겁다"며 "야구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 이것이 매력"이라고 전했다.

 ◇"여자 야구 저변 넓어졌으면" 열정으로 뛰는 히로인즈

 프로야구 800만 관중 시대가 열렸지만, 여자 야구 저변은 아직 열악하다.

 서울시야구소프트볼협회의 지원을 받는 히로인즈는 그나마 다른 여성 야구단보다 나은 편이지만, 훈련 장소나 친선경기 상대를 구하는 것은 늘 힘겨운 일이다.

 이호상 국장은 "여건이 되는 곳을 찾아가 훈련을 하니 훈련 장소는 때에 따라 바뀐다. 사회인 야구 준결승, 결승을 하면 오후에 시간이 비어 그런 곳에서 훈련을 많이 한다"며 "그냥 흙바닥인 빈 공터에서 할 때에도 있다. 그럴 때에는 체력 훈련만 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주장 정민지(30)씨는 "워낙 여자 야구팀이 적어 친선경기를 잡기가 어렵다. 남자 사회인 야구의 경우 리그도 많고, 친선경기를 할 팀도 많은데 여자 야구는 그렇지가 못하다"며 "친선경기를 할 장소와 팀을 한꺼번에 구하는 것이 힘들다"고 털어놨다.

 정하나씨도 "여자 야구는 선택지가 별로 없다. 여자 야구팀은 기회가 한정돼 있다"며 "직접 경기를 해야 재미있고, 실력도 알 수 있는데 경기하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열정은 대단하다.

 이호상 국장은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한다. 열정만 놓고 보면 왠만한 사회인 야구를 하는 남자들보다 더하다"며 "남자들은 경기를 하는 것을 좋아할 뿐 훈련을 한다고 하면 많이 모이지 않는다. 하지만 히로인즈 선수들은 매주 주말 거의 대부분이 모여 훈련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성야구단 히로인즈 정민지(왼쪽부터), 김영애, 정하나, 이영수 선수가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야구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연습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10.17.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여성야구단 히로인즈 정민지(왼쪽부터), 김영애, 정하나, 이영수 선수가 15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야구장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마친 후 연습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7.10.17. [email protected]

이날 훈련에서도 선수들의 열정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몸이 좋지 않아 훈련을 함께 할 수 없는데도 훈련장을 찾은 설나리씨는 '훈련 도우미'를 자청했다.

 설나리씨는 "오랫동안 팀에 나오지 않으면 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훈련 사진을 찍는 등 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찾아서 하려고 나왔다"며 "못하는 동안 눈으로라도 훈련 모습을 보고, 귀로라도 들어야 나중에 따라갈 수 있다"고 열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히로인즈 선수들은 자신들의 열정이 여자 야구의 저변이 더욱 넓어지고, 한층 체계적으로 발전하는 데 힘이 되길 바랐다.

 이병희씨는 "미국 센트럴파크에서는 혼성팀으로도 경기를 많이 한다. 자연스럽게 즐기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라며 "한국도 여자가 야구를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하나씨도 "유니폼을 차려입고 밖에 나오면 다들 쳐다본다. 멋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여자가 야구를 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며 "여자가 야구를 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일반적이지는 않은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민지씨는 "국내 여자 야구가 열악하지만, 그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실업팀이 생기는 등 여자 야구 선수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작게는 지원이나 후원이 많아져 걱정없이 즐겁게 야구 할 수 있는 여성 동호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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