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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맨부커상 수상작 폴 비티 '배반' 출간

등록 2017.10.17 16: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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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맨부커상 수상작 폴 비티 '배반' 출간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나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 흑인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때는 우리가 정말로 뭔가 잘못했을 때뿐임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그래야만 우리가 흑인이지만 동시에 무죄라는 인지 부조화에서 벗어날 수 있고, 교도소에 가게 된다는 사실이 어떤 면에서는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31쪽)

미국 소설가 폴 비티(55)의 2016년 맨부커상 수상작 '배반'(The Sellout)이 국내 번역·출간됐다. 비티는 맨부커상을 받은 최초의 미국인이다.

'배반'은 비티의 네번째 소설로,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교외 마을을 가상의 무대로 삼아 노예제와 인종분리 정책의 복구가 시도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흑인이다. 그는 은근히 차별받느니 차라리 노골적인 노예 생활을 하던 옛날이 낫다는 판단하에, 노예 제도와 인종 분리 정책을 부활시키려고 한다.

버스에 백인 우대석을 설치하고, 백인이라곤 아무도 살지 않는 흑인 마을에 가상의 백인 전용 학교를 세우는가 하면, 공공 도서관의 이용 안내판을 '일요일~화요일: 휴관, 수요일~토요일: 10시부터 5시 30분까지 개관'에서 '일요일~화요일: 백인 전용, 수요일~토요일: 유색 인종 전용'이라고 바꾸어 버리기도 한다. 마을을 구하기 위해서다.
 
로스앤젤레스의 어느 맑은 아침, 눈을 떠보니 '디킨스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이 사라지고 없었다. 공식 발표도, 신문 기사도, 저녁 뉴스 방송도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마을이 사라지자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 누군지도 알 수 없게 돼버린 것 같았다.

원래부터 우범 지대였던 디킨스시는, 디킨스시가 아니게 된 다음부터 더 난장판이 되어 버렸고, 혼란에 빠진 마을을 구하려던 주인공은 우연히 인종 분리 정책이 사람들을 단합시키고 온순하게 만드는 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2016 맨부커상 수상작 폴 비티 '배반' 출간

"디킨스를 되살려 내는 방법도 바로 인종 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 나누던 공동체 감정이 학교로 퍼질 것이고, 그다음에는 도시 전체로 스며들 것이다. 인종 분리 정책이 남아공 흑인들을 결집시켰다면, 디킨스에서도 똑같은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228~229쪽)

"흑인 남자가 이렇게 말하면 믿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나는 물건을 훔쳐 본 적이 없다. 세금이나 카드 대금을 내지 않은 적도 없다. 극장에 표 없이 숨어 들어간 적도, 상업주의와 최저 임금제에 무심한 편의점 점원이 거스름돈을 더 주었을 때 그냥 받아 간 적도 없다. 빈집을 턴 적도 없다. 주류 가게에서 강도질을 한 적도 없다."(9쪽)

옮긴이 이나경씨는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배웠건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친근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자주 튀어나오는 단어들이 주는 어감, 풍자와 조롱, 연민과 슬픔, 공감을 오가는 다양한 온도 차를 갖는 화자의 태도, 그 태도가 만드는 미묘한 차이의 말투, 그리고 노예 제도와 링컨으로부터 로자 파크스에서 LA 폭동,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까지 미국 흑인 역사와 문화에 대한 방대한 인용, 언급은 모두 이 작품이 지니는 매력이자 미덕이며, 한편으로는 번역의 한계를 절감하게 해준 요소였다"고 말했다.

비티의 맨부커상 수상 소감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쉽게 화를 내고 낙담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괴롭히곤 한다. 그러나 글을 쓸 때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확신에 차 있으려고 한다. 이 책은 어려운 책이다. 쓰기 어려웠다. 읽기 어렵다는 것도 안다. 모든 사람들이 나름의 각도에서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408쪽, 열린책들, 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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