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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혼란과 광기에 드러나는 사랑···'마더!'

등록 2017.10.18 12:50:39수정 2017.11.15 14: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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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혼란과 광기에 드러나는 사랑···'마더!'


(이 기사에는 영화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마더!'(감독 대런 애러노프스키)는 당황스럽다.

 평화를 깬 이방인에 대한 의심에서 시작하는 전형적인 스릴러처럼 보였던 이 작품은 정상 범주를 벗어난 인물들을 차례로 등장시키고, 그들이 만들어낸 비전형적인 상황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이어붙이며 충격적이고 대담하게 내달린다.

  환시와 환청에 시달리는 듯한 극도의 혼란과 당혹을 121분간 견디고 나면 다시 당황스러운 질문이 마음 속에 들어앉는다. '아, 이게 대체 다 무슨 이야기란 말인가.'

 애러노프스키의 영화는 언제나 파괴적이었다. 데뷔작인 '파이'(1998)에는 괴작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이후 내놓은 두 편의 걸작 '레퀴엠'(2000)과 '블랙 스완'(2010)도 다르지 않았다. 한 편은 나약한 인간에게 닥친 비극을, 또 다른 한 편은 인간 내면에 자리한 욕망의 광기를, 한 번 보면 잊기 힘든 이미지에 담아 관객을 찍어눌렀다.

 방식은 달랐지만, 그의 영화는 인간 존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같았다. '과시와 과잉'이 따라붙는 그의 연출은 인간을 가장 솔직하게 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혼란과 광기에 드러나는 사랑···'마더!'


 영감이 메말라버려 고통스러워 하는 시인(하비에르 바르뎀)은 새로운 작품 활동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한 남자를 집 안에 불러들인다. 아내(제니퍼 로런스)는 둘만의 공간에 낯선 사람을 부른 그 행동이 마뜩잖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재기를 바라며 받아들인다.

 그런데 남편을 찾아온 이 남자, 수상하다. 남편과 너무 잘맞는 것도 미심쩍고, 우연히 본 그의 짐가방에 남편 사진이 있는 것도 이상하다. 의심은 점점 커지는데, 이 남자는 자신의 아내까지 집으로 끌어들인다. 여자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부부를 점점 더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남편에게는 그런 기색이 없다.

 '마더!'에서도 애러노프스키의 방식은 다르지 않다. 그는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전복(顚覆)해 인간에 다가간다.

 아담과 이브 그리고 선악과, 카인과 아벨 그리고 인류 첫 번째 살인 등의 상징을 알아차리는 건 어렵지 않다. 모든 사건이 집에서만 벌어지고, 집 주인은 창조자 시인이며(그는 남자를 자식처럼 보살피고, 여자에게서는 관대한 분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아내가 집을 낙원(paradise)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것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애러노프스키의 야망은 인류를 2시간짜리 영화에 담아내는 것이다.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인류의 탄생과 그들이 걸어온 길을 최대한 압축해 폭발시키며 관객을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형제의 살인 이후 집에서 벌어지는 파국은 보는 것 그대로다.

 집은 무질서로 가득찬다. 온갖 쾌락이 자리하고, 약탈·방화·강간·납치·테러·전쟁 등 인류가 저질렀으며 현재도 자행하는 온갖 폭력이 '지금 여기', 집 안에서 벌어진다. 종교마저 폭압으로 변질된지 오래다. 아내가 꿈꾸던 낙원은 이제 소돔과 고모라다. 한꺼번에 닥쳐 당황스러울 뿐 이 충격은 모두 인류가 행한 일들이다.이때 한 가지 질문이 다시 자리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혼란과 광기에 드러나는 사랑···'마더!'


 "내가 처리할게."(I got it) 아내는 일이 생길 때마다 문제 해결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그는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무력감에 통곡한다. 카메라는 오직 아내를 따른다. 그를 비추거나 그의 시선만 담는다. 그러니까 관객은 오직 아내의 시각으로 모든 사태를 지켜본다.

 관객도 무기력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해석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내를 인간에 의해 훼손된 대자연으로, 하나님과 예수에 가려졌던 마리아의 목소리로 봐도 무관하다. 중요한 건 아내가 남편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건들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결정적인 목격자라는 점이다.

 인간(아내)이 파국을 목도하고 고통에 몸부림 칠 때 신(남편)은 침묵한다. 애러노프스키 감독은 잔인하지만 그게 인간이고, 이 세계의 정체가 아니냐고 말한다.

 이기적인 신은 자신의 창조 행위에만 관심이 있을 뿐 그 창조가 빚은 어떤 불행에도 책임지지 않는다(아내는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제 신은 없고 남겨진 건 오직 괴로워하는 인간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이런 난장판에는, 이런 난장판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아"라는 말로 마무리한 것으로 '마더!'를 이해할 수도 있다. 절망하는 아내에게 남편은 용서를 이야기할 뿐이다.

[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혼란과 광기에 드러나는 사랑···'마더!'



 이제 아내는 남편에게 아들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한다(이 설정은 하나님이 아들인 예수를 세상에 내려보낸 것을 상징한다). 더이상 어떤 희망도 없는 것일까.

 애러노프스키는 멈추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간다. 남편은 아들을 뺏아기 위해 말한다. "난 그의 아버지야."(I'm his father)라고 말하자 아내가 외친다. "난 그의 엄마야!"(I'm his mother!) 이 난장판 속에 남은 건 결국 사랑이다. 우리는 신을 아버지(father)라고 부르며 의지한다. 그러나 세상을 그나마 유지하게 하는 건 아버지의 창조가 아니라 엄마(mother!)의 사랑이다. 영화가 아내의 사랑(heart)을 통해 세상을 복원하게 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손정빈의 클로즈업 Film]혼란과 광기에 드러나는 사랑···'마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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