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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교도소에서 3공수 대대별로 시신 암매장'

등록 2017.10.23 14: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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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 기념재단이 23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기념재단 시민사랑방에서 '옛 광주교도소 5·18 암매장 발굴 관련 브리핑'을 열었다. 김양래 재단 상임이사(오른쪽)와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이 옛 교도소 전경을 보며 발굴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2017.10.23.  sdhdream@newsis.com

【광주=뉴시스】신대희 기자 = 5·18 기념재단이 23일 오전 광주 서구 치평동 기념재단 시민사랑방에서 '옛 광주교도소 5·18 암매장 발굴 관련 브리핑'을 열었다. 김양래 재단 상임이사(오른쪽)와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이 옛 교도소 전경을 보며 발굴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2017.10.23.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배동민 기자 = 1980년 5월 광주교도소에서 계엄군이 각 대대별로 암매장을 자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증언과 기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5·18기념재단은 23일 오전 재단 시민사랑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옛 광주교도소의 암매장 추정 장소에 대한 발굴 조사 일정과 암매장 추정 근거를 공개했다.

 이날 공개한 증언과 기록은 5·18 때 광주교도소에서 3공수여단이 각 대대별로 시신을 암매장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당시 3공수여단은 교도소 서쪽에 15대대, 북쪽에 16대대, 동쪽에 13대대, 남쪽에 12대대가 주둔해 있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암매장 장소로 꼽히는 곳은 교도소 북측 담장 바깥쪽 전체 300m 중 폭 3~5m, 길이 117m 구간이다.

 80년 5월 당시 공수부대의 순찰로 인근 부지로 일부는 농장으로 사용했으며 3공수여단 16대대가 주둔했다.

 3공수여단 본대대장이었던 김모 소령은 1995년 5월29일 서울지검 조사에서 '교도소 담장에서 3m 정도 이격해 매장했다', '잡초가 우거졌고 논과 밭, 그리고 500m 전방에 낮은 능선이 있다', '관을 사용하지 않았고 가마니로 시신 2구씩 덮고 묻었다', '5월23일 오후 6시부터 약 2시간에 걸쳐 전남대에서 광주교도소로 호송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3명을 포함해 12구의 시체를 매장한 사실이 있다'고 진술했으며 약도까지 첨부했다.

 80년 5월 광주교도소에 수용돼 있던 최모씨는 "일반 수인들은 오후 5시면 모두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밖으로 나올 수 없다. 모범수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비교적 자유로웠다. 어느 날 교도소 담장 밖으로 포크레인이 작업하는 것을 보았다. 두 군데 지역이었는데 움푹 들어간 계곡처럼 내려오는 곳이었다. 당시 모범수 사이에서는 시신을 묻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서쪽 담장 밖의 경우 5·18 당시 교도소에 주둔했던 제3공수 15대대의 김모 하사가 암매장 사실을 증언했다.
 
 김 하사는 지난 9월19일 '1980년 5월22일 새벽 전남대에 연행돼 있던 시민이 120명을 광주교도소로 이송, 고속도로 방향으로 조준사격해 전복된 차량의 시신을 수습하고 하루 정도 방치했으나 시신 부패로 5~7구를 가매장했다'고 기념재단에 제보했다.

 김 하사는 당시 시신 매장을 15대대장이 주도했다고 밝혔다.

 교도소 남쪽의 경우 3공수 제11대대 소속 이모씨가 증언한 곳이다. 이씨는 8명을 직접 묻었다고 증언했다.

 이 부근 '교도소장의 관사 앞'에서는 계엄군이 철수한 직후인 1980년 5월30일 땅에 묻혀 있던 8구의 시신이 수습됐던 곳이다. 교도소 남쪽은 3공수 11대대와 12대대가 주둔했다.

 이에 대해 김 상임이사는 "5·18 때 3공수가 각 대대별로 암매장을 자행했다는 것을 말해준다"며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오는 30일부터 발굴조사에 들어간다. 5·18 진실 규명 차원에서 복원과 보존을 염두에 두고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교도소는 5·18 당시 3공수여단과 20사단 병력들이 주둔했던 곳이다. 5·18 직후 교도소 관사 뒤에서는 시신 8구, 교도소 앞 야산에서는 시신 3구가 암매장 상태로 발견됐다.

 계엄사령부가 발표한 80년 5월31일 '광주사태 진상 조사' 문건에는 이른바 '교도소 습격 사건'으로 민간인 27명(보안대 자료 28명)이 사망했다고 기록돼 있다.

 단순계산으로도 16~17명의 신원과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최소 52명이 교도소 내에서 사망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재단은 광주교도소 외에 7공수여단이 주둔했던 제2수원지 상류쪽과 화순 너릿재 인근 등도 올해 내 발굴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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