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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서해순'의 탄생…무책임한 폭로극이 부른 파장

등록 2017.11.11 15: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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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박창환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2계장이 10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고 김광석 딸 사망' 관련 서해순 씨에 대한 '유기치사, 사기의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경찰은 '혐의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7.11.10.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박창환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2계장이 10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고 김광석 딸 사망' 관련 서해순 씨에 대한 '유기치사, 사기의혹'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경찰은 '혐의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7.11.10. [email protected]


"전과 13범 서씨 오빠가 김광석 죽여" 음모론
"사이코패스·지옥에 가라"···온갖 악플 들끓어
여론에 편승 클릭 수 높이려는 보도에도 비판
"미디어가 진실이라고 하면 현실로 받아들여"
"이상호 기자, '팩트 체크' 제대로 하지 않아"

 【서울=뉴시스】박영주 안채원 기자 = '남편과 딸을 죽인 가족 살인마, 희대의 악녀.'

 가수 고(故) 김광석 씨의 아내 서해순(52)씨는 많은 국민들에게 이렇게 인식돼 있다. '마녀'의 이미지는 갈수록 강화됐고, '살인마'라는 꼬리표도 계속 따라 다녔다.

 서씨는 두 달여간 집중적이고 폭 넓은 수사를 벌인 경찰로부터 유기치사 및 소송사기에 관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무책임한 폭로와 마녀사냥에 이미 사회적 매장을 당한 뒤였다.

 서씨 무혐의 관련 기사에 달린 수많은 댓글은 대부분 '수사 결과를 못 믿겠다' '물증이 없을 뿐 서해순이 범인' '이상호 기자를 응원한다' 일색이다. 부검의를 비롯한 전문가들과 주변인들의 숱한 진술 및 증언에도 불구하고 서씨에 관한 사회적 낙인은 기정사실이 돼 서씨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아마도 평생 '주홍글씨'로 남겨질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낭설로만 떠돌던 '김광석 타살' 의혹을 처음으로 공론화해 불을 지핀 것은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광석'이 지난 8월30일 개봉하면서부터다. 이 기자는 영화를 통해 서씨가 패륜으로 점철된 희대의 악녀임을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증거는 없이 정황만으로 서씨를 남편 살인범으로 지목했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딸 서연 양의 사망에 대한 의혹을 받고 있는 가수 고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 씨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2017.10.12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딸 서연 양의 사망에 대한 의혹을 받고 있는 가수 고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 씨가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email protected]


 여기에 9월20일 딸 서연양이 10년 전 사망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지면서 의혹은 거의 확정으로 나아갔다.
 
 서연양 사망이 세상에 알려진 다음 날 김씨의 친형 광복씨는 서울중앙지검에 서씨를 유기치사·소송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이 기자는 같은 날 서울중앙지검에서 국회의원을 대동한 채 기자회견를 열었다.

 이 기자는 "사망 당일부터 20년이 넘도록 취재한 결과 김광석은 자살이 아니었다"면서 "영화는 김광석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이용하고 나아가 그가 죽은 뒤 시부모에게 욕설을 서슴지 않으며 남편의 저작권을 빼앗아내는 악마적 모습을 보여드린다"고 서씨의 구체적 '범죄사실'을 만천하에 공표했다.

 이 기자는 "서씨가 김씨 부모를 협박해 저작권을 빼앗아버렸다" "서연이 몫의 저작권도 온전히 손에 쥘 수 있었다"고 법률적 사실관계를 자의적으로 단정한 뒤 "서씨는 악마의 얼굴을 하고 가로챘던 저작권을 빼앗길까 두려워했다. 살인 혐의자가 백주대로를 활보하며 음원 저작료를 독식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고 더할 나위 없이 직설적으로 '악마 서해순'을 지목했다.

 검찰에 고발장이 접수된 지 이틀 만에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번 사건을 이첩 받아 재수사에 나섰다.

 서씨를 향한 여론의 냉혹한 시선은 갈수록 확산됐다. 서씨는 급기야 자신을 둘러싼 의혹들을 반박하기 위해 종합편성채널 JTBC '뉴스룸'에 출연했다. 그러나 생방송에서 손석희 앵커의 질문에 횡설수설하거나 동문서답하는 모습을 시청자들이 목격함으로써 여론의 심증은 더욱 증폭됐다.

 그 사이 '김광석'은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로는 이례적으로 관객 10만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서씨의 방송 출연 이후 인터넷 상에서는 각종 설들이 난무했다. "전과 13범인 서씨의 오빠가 김씨를 죽였다", "서연 양이 급성 폐렴인데도 일부러 신고를 늦게 했다", "서씨는 김씨와 결혼 전 낳은 아이를 죽이고(영아살해) 유기한 전적이 있다", "서연양이 외국에서 방치되고 학대 당했다" 등 음모론이 나돌았다.

 "미국으로 당장 꺼져라", "뻔뻔함에서 사이코패스 향기가 느껴진다", "죽은 남편과 딸이 정말 이른 시일에 너를 지옥으로 보낼 것이다" 등의 악플이 들끓었다.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박창환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2계장이 10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고 김광석 딸 사망' 관련 서해순 씨에 대한 '유기치사, 사기의혹'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경찰은 '혐의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7.11.10.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고승민 기자 = 박창환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2계장이 10일 오전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고 김광석 딸 사망' 관련 서해순 씨에 대한 '유기치사, 사기의혹'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경찰은 '혐의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2017.11.10. [email protected]


 결국 서씨가 경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면서 근거없는 무차별 폭로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하는 의견들이 잇따르고 있다. 충분한 사실관계 확인없이 의심을 사실로 규정하면서 집단적 '마녀사냥'과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주인공으로 서씨 변론을 맡게 된 박훈 변호사가 "김광석 형 광복씨의 무리한 주장을 이상호 기자가 아무런 검증 없이 나팔을 불면서 서해순씨를 연쇄 살인범으로 몬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씨 측은 이 기자와 광복씨 등을 상대로 명예훼손 및 무고죄로 법적 대응을 할 것임을 예고했다.

 여기에 언론의 자기반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확한 사실을 검증해서 전달해야 하는 언론이 오히려 타살 의혹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여론에 편승해 '클릭 수'를 높이려는 고질적 보도 행태가 되풀이됐다는 비판도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무책임한 폭로로 인한 '마녀사냥'의 문제점이 심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온라인 환경에서 속보 경쟁, 클릭 수 등에 얽매인 보도들이 사실에 대한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서 서씨를 둘러싼 무분별한 논란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국민대 사회학과 최항섭 교수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미디어가 진실이라고 하면 논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고 현실로 믿어버린다"면서 "서씨는 법적으로 무혐의 처리가 됐지만 국민에 의해 한국에서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죄가 씌워졌다"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는 "공식기관의 신뢰가 무너진 상태에서 인터넷상에서 구축된 사회적 진실로 한 사람에게 사망을 선고했다"며 "인터넷이 가진 가장 큰 부작용이 나타난 사례가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이어 "앞으로도 경찰 공식 발표 내용이 아닌 또 다른 루머들을 조합해 서씨가 혐의가 있다고 설득하는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도준호 교수는 "이상호 기자가 오버했다. (김씨 사망을 둘러싸고) 미심쩍은 사항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런 식으로 쏟아내 버리면 어떡하나"라면서 "저널리즘의 기본인 팩트 체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 교수는 "팩트체킹은 언론의 사회적 순기능이자 사회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박창호 교수는 "자칫 잘못하면 수사기관까지 여론의 압박에 시달려 사실에 입각한 결과를 못 내놓는 경우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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