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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범 매직? 프로농구 원주 DB ‘무명의 반란’

등록 2017.11.21 09:3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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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상범 원주 DB 감독.

【서울=뉴시스】 이상범 원주 DB 감독.

【서울=뉴시스】박지혁 기자 = 2017~2018시즌 프로농구의 초반 화두는 단연 원주 DB의 돌풍이다. 14일 현재 8승4패를 기록, 서울 SK(11승2패)에 이은 2위에 자리하고 있다.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이탈, 얇은 선수층 등 최악의 조건에서 모두가 기대하지 않았던 성과를 내고 있다. DB는 대다수 전문가들이 비공식적으로 꼽은 ‘꼴찌후보’. 그러나 개막전에서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전주 KCC를 꺾더니 이후 놀라운 경기력으로 코트를 놀라게 하고 있다.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이상범(48) 감독과 DB의 돌풍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모두가 꼴찌후보라고 봤는데

“올해의 콘셉트는 ‘무명의 반란’입니다.” (신해용 원주 DB 단장)

농구계 관계자들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DB는 선수가 없는’ 팀이다. 12명 엔트리를 짜기도 어려울 만큼 자원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지난 시즌까지 주축이었던 허웅(24·상무)이 군에 입대했다. 윤호영(33)은 부상 후 재활로 전력에서 이탈해 시즌 초반에 코트에 서지 못했다. 팀의 간판 김주성(38)은 은퇴를 앞둔 노장이다. 주축 선수 대부분이 벤치 또는 D리그(2군)에서 뛰었다. 두경민(26), 김주성을 제외하면 프로에 데뷔한 이후 주전으로 뛴 선수가 아무도 없다. 신 단장의 말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상범 매직’일까. 이번 시즌을 앞두고 새롭게 사령탑에 오른 그의 지도하에 여러 선수들이 잠재력을 뽐내고 있다. 외국인선수 디온테 버튼(23)과 로드 벤슨(33), 두경민, 김주성이 중심을 잡은 가운데 서민수(24), 김태홍(29)의 기량 향상이 눈에 띈다.

2015년 드래프트 1라운드 9순위로 DB에 입단한 서민수는 197㎝의 파워포워드다. 동국대 시절 준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프로 데뷔 후 기회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 지난 시즌 23경기에서 평균 6분31초를 뛰며 1.9점 1리바운드를 기록했다. 당당히 한 축으로 성장했다. 이번 시즌 12경기에서 평균 8.1점 5.7리바운드 1.8어시스트를 기록 중이다. 평균 30분17초나 뛰었다.

김태홍은 2011년 드래프트 2라운드 2순위 출신이다. 전주 KCC에 입단했다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지난 시즌부터 DB 유니폼을 입었다. 출전시간이 지난 시즌 평균 4분20초에서 25분54초로, 평균 득점은 1.1점에서 10.8점(4리바운드)으로 껑충 뛰었다.

유성호(29), 맹상훈(23), 김영훈(25) 등도 꾸준한 출전 기회로 그동안의 설움을 풀고 있다.

2011~2012시즌 서울 삼성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유성호는 안양 KGC인삼공사, 울산 현대모비스 등을 거쳐 이번 시즌부터 DB에 합류한 ‘저니맨(이적이 잦은 떠돌이선수)’이다. 200㎝ 높이를 활용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가드 맹상훈은 실력보다 당돌한 신인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더 많다. 경희대 저학년 시절까지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4학년 때 부상을 당하면서 구단들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결국 2016년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4순위까지 밀렸다. 당시 지명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기량과 잠재력에 비해 지명 순위가 너무 처졌다는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이번 시즌 자신의 말을 지키는 모습이다.

한순철 DB 사무국장은 “엔트리에 있는 모든 선수들이 잘 싸우고 있다. 값지다. 특히 KCC와의 개막전은 최근 몇 시즌 동안 본 우리 팀 경기 중 최고였다”고 했다. 전통적으로 주전 의존도가 높았던 DB. 때문에 주축의 이탈이 전력 누수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보기좋게 빗나갔다.

▲“절실한 선수들, 악착같이 뛰어”

DB 선수들은 대부분 프로 진출 이후 주목받지 못했다. 고등학교~대학교까지 주축 선수로 뛰었지만 프로는 달랐다. 기량이 부족하거나 적응에 실패한 경우들이다. 그럼에도 이 감독은 시즌을 앞두고 “우리 팀을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닌가요.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겁니다”라며 은근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선수들의 ‘헝그리 정신’을 믿었다. 보수(연봉+인센티브) 기준으로 김태홍이 8000만원, 서민수가 6000만원, 유성호가 5000만원, 맹상훈이 4500만원, 김영훈이 4000만원이다. 한 해에 수 억원을 받는 ‘이름값 있는 선수들’과 다르다. 이 감독은 “그동안 출전시간이 부족해 코트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던 선수들이다. 코트에서 자신감 있게 하고 주눅 들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슛은 들어가지 않을 수 있고 실수할 수도 있다. 모든 선수들이 같은 마음으로 악착같이 뛰면 된다. 초반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 같다”고 했다.

1분, 1초의 출전 시간이 소중한 선수들은 일단 코트에 서면 몸을 아끼지 않는다. 다른 팀의 A감독은 “예를 들어 DB 경기를 보면 리바운드 경합에서 다 녹색(유니폼)만 보인다.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잘 무장됐고 코트에서 약속이 잘 지켜지는 모습이다”고 했다.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의 특성과 성향을 파악해 적재적소에 올바르게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새 팀명·새 감독 아래서 새로운 출발하는 DB

DB는 사실 이번 시즌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동안 우승 3회, 준우승 5회로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향후 몇 시즌은 팀 재건을 위한 쉼표로 생각했다. 전혀 예상 밖의 성과가 이어지는 셈이다.

DB의 원래 이름은 ‘동부 산성’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동부. 변화의 시즌이다. 시즌을 앞두고 DB는 “구단 명칭과 엠블럼 변경을 통해 구단 브랜딩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제2의 도약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고 했다.

감독도 새롭게 했다. 일본 고등학교에서 아마추어 선수들을 지도하던 이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여러 구단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던 이 감독은 자신이 있는 일본으로 날아온 한 사무국장과 “오늘은 일이 있어 함께 가지 못했지만 내일 당장 넘어 가겠다”는 신 단장의 전화에 DB 사령탑을 수락했다.

이 감독은 과거 인삼공사에서 성공적인 리빌딩과 함께 팀을 정상으로 이끈 경험이 있다. 지난 시즌 인삼공사 우승의 주역들은 대부분 이 감독이 모은(?) 자원들이다. DB는 인삼공사의 경우처럼 명가의 재건을 기대하고 있다.

DB의 돌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도 아직은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모두가 꼴찌라고 했던 DB의 반전 드라마가 주는 인상은 꽤 강하다. DB의 행보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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