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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 추정 왕궁지서 대형 건물지군·의례용 유물 발견

등록 2017.11.21 10: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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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문화재청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가 금관가야 추정왕궁지로 알려진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다수의 대형 건물지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7년도 김해 봉황동 유적 조사구역 전경(북쪽에서). 2017.11.21. (사진=문화재청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문화재청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가 금관가야 추정왕궁지로 알려진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다수의 대형 건물지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7년도 김해 봉황동 유적 조사구역 전경(북쪽에서). 2017.11.21. (사진=문화재청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문화재청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가 금관가야 추정 왕궁지로 알려진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다수의 대형 건물지 등을 발견했다고 21일 밝혔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기존 조사 성과와 '김해군읍지(金海郡邑誌)' 중 수로왕궁터 기록을 근거로 금관가야 중심세력의 실체를 찾고, 그 실증적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2015년부터 매년 김해 봉황동 유적 내 추정왕궁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올 3월부터 시행한 2017년도 발굴조사에서는 그동안 파악하지 못했던 봉황동 유적(동쪽 지점)의 전체적인 층위 양상을 확인했고, 가야 시기 대형 건물지군 존재를 확인했다. 화로형토기, 통형기대(긴 원통을 세워둔 모양의 그릇받침), 각배(뿔 모양 잔), 토우 등 의례용으로 추정되는 유물을 다수 발견했다.

층위 조사에서는 현재 지표면으로부터 4.5m 아래에서 기반층을 확인했다. 문화층은 원삼국 시대 민무늬토기가 출토된 문화층, 가야 시기의 건물지와 소성유구(불을 사용한 흔적이 있는 시설물) 등이 중복된 문화층, 이후 통일신라 시기와 조선 시대까지의 문화층이 확인됐다.

가야 시기 문화층 조사에서는 다수의 대형 건물지가 발견됐다. 건물지들은 대체로 지름 10m 이상으로, 일정 구역 내에 밀집한 양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건물지는 3호 건물지다. 이 일대에서 가장 크고 기둥자리가 비교적 잘 남아 있는 벽주건물지다. 바닥은 타원형이다. 봉황대 진입로 개설구간의 46호 주거지(1999년, 부산대학교박물관 조사), 창원 신방리유적 5호 주거지(2005년,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 등에서도 비슷한 형태가 발견됐다. 이와 같은 대형 건물지군은 그동안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발견된 일반 생활유적과 차별화한 공간으로 활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뉴시스】 문화재청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가 금관가야 추정왕궁지로 알려진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다수의 대형 건물지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가야 시기 건물지군 중복 양상(서쪽에서). 2017.11.21. (사진=문화재청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문화재청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소장 김삼기)가 금관가야 추정왕궁지로 알려진 '경남 김해 봉황동 유적(사적 제2호)'에 대한 발굴조사에서 다수의 대형 건물지 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가야 시기 건물지군 중복 양상(서쪽에서). 2017.11.21. (사진=문화재청 제공) [email protected]

유물로는 의례용으로 보이는 유물인 화로형 토기, 통형기대, 각배, 토우 등이 다수 발견됐다.

화로형 토기는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김해 대성동고분군의 수장급 고분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한 모양이다.

통형기대는 막대기 모양 띠(봉상, 棒狀)가 부착됐는데 띠 전면에 일렬로 찍힌 둥근 고리무늬(원권문)와 몸체에 둘린 물결무늬, 엇갈리게 뚫은 사각형 구멍(투창) 등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독특한 형태다.

가야의 수장급 고분에서 주로 확인되는 유물로 생활 유적에서는 발견된 사례가 없다.

이 유물들은 전년도 발굴 조사에 출토된 차륜형(수레바퀴 모양) 토기, 구슬·곡옥 등 장신구류와 함께 봉황동 유적 출토지를 당시 점유하고 있었던 유력 집단의 존재를 시사하고 있다.

 이번 김해 봉황동 유적의 추정왕궁지 발굴 조사에서는 당시 유력 계층의 흔적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다. '가야의 왕궁'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지만, 상위 계층 존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유구와 유물이 지속해서 발견되고 있어 앞으로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연차적인 전면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 성격을 뚜렷하게 밝히고 이를 가야사 복원과 연구에 필요한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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