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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욱 "’황제’ 자부심...찾아가는 영화 상영 동감"

등록 2017.12.08 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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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민병훈 감독, 피아니스트 김선욱. 2017.12.08.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민병훈 감독, 피아니스트 김선욱. 2017.12.08.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음악을 카메라에 담아내는 감독의 눈이 흥미로웠다."

8일 오후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영화 '황제' 간담회에서 '젊은 거장'으로 통하는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옆에서 지켜보면서 좋은 경험이 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10월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선을 보인 민병훈·이상훈 공동 감독의 영화 '황제'는 김선욱을 주인공으로 클래식 음악과 예술영화의 조우를 이뤄냈다는 평을 받는다.

김선욱의 영화배우 데뷔작이다. 특기할 만한 점은 김선욱의 출연 분량이 전체 러닝타임(88분)의 절반에 가까운데 다른 배우들과 달리 그는 대사 한 마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영화에서도 본업인 피아노 연주에 열중한다. 리허설 모습, 도심에서 독주회를 여는 모습, 이탈리아 등지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모습이 묵묵히 담겼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비롯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등 김선욱이 연주하는 음악은 또 다른 인물처럼 극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김선욱은 "클래식 연주자로서 다른 장르와 협업을 꿈 꾸던 음악가는 아니었다"고 했다.

민병훈 감독이 지난 2013년 정명훈 지휘로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과 김선욱이 협연한 베토벤의 '황제'를 듣고 김선욱 연주가 주가 되는 영화를 찍고 싶어한 것이 계기가 됐다.

김선욱은 처음에는 출연 제의를 수락하기가 조심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왜냐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무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안감이 아니라 저 스스로가 저를 봤을 때 낯설음도 처음에는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민병훈 감독, 피아니스트 김선욱. 2017.12.08.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민병훈 감독, 피아니스트 김선욱. 2017.12.08. [email protected]

하지만 배우 김선욱이 아닌 연주자 김선욱의 모습을 담겠다는 민 감독의 말을 듣고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김선욱은 "저한테 배우의 영역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저는 저이면 됐다"면서 "저답게 하는 것을 원했고 음악도 제가 연주하고 싶은 음악을 주로 작업했다. 음악 활동을 하는 걸 촬영 할 때도 변함없이 배려를 했주셨다"고 전했다.

영화 촬영을 끝낸 후에도 생전 처음 겪는 일을 맞닥뜨려야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인터뷰를 비롯해 수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했던 것이다.

김선욱은 "인터뷰에 야외 연주에 정신이 없었다"면서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좋은 경험이더라. 하지만 똑같은 일을 반복하라고 하면 안 할 거 같다"고 웃었다. "클래식과는 다른 문화라는 걸 느꼈다. 파급력도 세고 많은 대중이 좋아하더라. 역시 대중의 한 사람으로서 신기하고 대단했다"고 했다.

김선욱은 앞서 '황제'가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라고 말한 바 있다. 정말이냐는 물음에 "나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 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어 "영화는 제가 좋아하는 장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과 업으로 하는 것은 다르다"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황제'는 공개 이후 '치유의 영화'로 입소문이 나고 있는데 본인 역시 마찬가지냐고 묻자 "제가 연주하거나 인터뷰 한 모습을 다시 보는 건 불편하다"고 털어놓았다.

"부끄러워서 불편한 것이 아니다. 저는 연주할 때가 익숙하다. 영화랑 라이브 연주가 근본적으로 다른 건, 연주는 그 순간만이 존재하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라고 여겼다.
【서울=뉴시스】 영화 '황제' 스틸 이미지. 2017.12.08. (사진 = 민병훈 필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영화 '황제' 스틸 이미지. 2017.12.08. (사진 = 민병훈 필름 제공) [email protected]


"연주를 하는 2시간 안에 일어나는 일들은 예측을 못하고 어떻게 변할 지도 모른다. 오후 8시 공연을 위해서 하루 종일 긴장 상태로 있다. 끝나면 허무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예술품과는 다른 종류의 희열이 있다. 이미 연주한 걸 다시 듣는다는 건 제게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음악을 듣는 것에 대해 고민해왔다는 김선욱은 "'들어주세요'라고 강요한다고 해결되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많은 분들이 일을 마치시고 공연에 오시는데 여러 변수가 생길 수 있다. 티켓을 예매하고 한 공간에 오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사회나 경제 등 다른 분야에서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음악가는 열심히 공부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최근 세계적인 베이스 연광철과 함께 한 '독일 가곡의 밤'으로 음악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던 김선욱은 "성악가랑 작업하면서 언어가 주는 따듯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기인 목소리만이 줄 수 있는 고급스런 음악감상을 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고 웃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서면서 그날처럼 긴장이 됐고 행복한 적도 없었다. (세계적인 거장인 연광철 앞이라) 벌벌 떨면서 연주를 했고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하지만 너무나 행복했다."

영화 '황제'는 김선욱 출연과 함께 민 감독이 멀티플레스의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극장 개봉을 하지 않아서도 주목 받고 있다.

대신 이른바 '찾아가는 영화 프로젝트'를 진행, 관객이 신청한 곳이라면 어디든 영화와 감독이 찾아가 영화를 상영한다.

【부산=뉴시스】권현구 기자 =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14일 오후 부산 해운대 비프빌리지 야외무대에서 열린 영화 '황제'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2017.10.14. stoweon@newsis.com

【부산=뉴시스】권현구 기자 =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14일 오후 부산 해운대 비프빌리지 야외무대에서 열린 영화 '황제' 토크콘서트에 참석해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2017.10.14. [email protected]

이미 지난 3일 클래식 음악 동호회 회원들의 모임 '풍월당'에서 2회 상영을 했으며 22일에는 파주에 위치한 '포도나무 하우스 콘서트', 내년 1월 10일에는 통영의 예술 단체 관람과 더불어 클래식을 가까이서 즐기게끔 만들기 위한 피아니스트 박창수의 프로젝트 '더 하우스콘서트' 등 단체 상영이 줄지어 예약된 상태다.
 
'더 하우스 콘서트'의 단골 손님이기도 한 김선욱은 "기본적으로 작은 연주회장을 좋아한다 "면서 "더 하우스 콘서트나 영화 '황제'처럼 새로운 길을 먼저 개척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민 감독의 상영 방식에 대해 동의한다면서 "영화가 철학을 갖고 수많은 고민 끝에 나온 작품이라는 걸 알기에 영화에 참여한 사람으로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민 감독은 "제가 본 선욱 씨, 서울시향, 정명훈 지휘자의 모습은 한편의 영화였다"면서 "치유를 받았고 이 느낌을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상영 방식을 택한 목적은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선한 영향력의 회복이라는 목적에 영화가 부합했냐 안했냐는 관객이 판단할 부분이지만 선한 목적으로 만든 건 확실하다. 선욱씨 까지 나와 자존감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민 감독은 멀티플렉스 극장에 대해 쓴소리도 했다. "몇 개의 영화가 2600개 스크린 중 2000개 이상을 가져간다는 건 굳이 말 하지 않아도 이상한 일"이라면서 "정부와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도 영화계의 고질적인 행태는 여전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황제'를 새벽 시간에 상영하겠다는 건 끼워팔기에 불과하다"면서 "우리 영화에 대한 권리가 아닌 관객의 볼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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