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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스튜핏! 올~해는 그레잇!'…송년회 건배사 열전

등록 2017.12.17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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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스튜핏! 올~해는 그레잇!'…송년회 건배사 열전


지난해 송년회는 국정농단 등 정치 영향 받아
1차만 권하는 건배사, 젊은 직장인들에 인기
"소극적 저항 담겨…소통하는 직장문화 갈망"

 【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 직장인 이정현(35)씨는 이달 말 부서 송년회를 앞두고 고민에 빠졌다. 직장 상사들 앞에서 외쳐야 하는 '건배사' 때문이다. 대충 준비하거나 시대에 뒤처지는 건배사를 외쳤다가는 '센스없는 부서원'으로 분류될까 봐 걱정이다.

 이씨는 "친구들과의 송년회에서 건배사를 외치면 '아재'(아저씨) 소리를 듣지만 회사는 상황이 다르다. 돌아가면서 건배사를 외치는 문화가 강하다"며 "참신한 건배사를 외치면 상사의 주목을 한 번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송년회 시즌이다. 건배사를 준비해야 하는 직장인들의 고민도 커졌다.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고 회식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건배사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정 농단 사태의 주인공들이 대거 술자리로 소환됐다. '최순실'(최대한 마시자/순수히 마시자/실려 갈 때까지 마시자), '장시호'(장소 불문/시간 불문/ 호탕하게 마시자) 등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위하야'(박근혜는 하야하라), '퇴근해'(박근혜는 퇴진하라)도 유행했다.

'올해는 스튜핏! 올~해는 그레잇!'…송년회 건배사 열전

올해는 시대를 반영하는 건배사보다는 건강과 행복을 빌어주는 '덕담' 위주로 술잔이 돌고 있다. 전형적인 삼행시 형식의 '아이유'(아름다운/ 이 세상/ 유감없이 살다 가자), '채근담'(채식과/ 근력운동을 하고/ 담배는 끊자), '새우살'(새해에는/ 우리/ 살 빼자) 등이다.

 또 '우하하'(우리는/ 하늘 아래/ 하나다), '신대방'(신년에는/ 대박 맞고/ 방긋 웃자), '너나잘해'(너와/ 나의/ 잘나가는/ 새해를 위해), '여보당신'(여유롭고/보람차고/당당하고/신나게), '그래도'(그래/내일은/ 도약할 거야) 등 오래된 문구도 여전히 널리 쓰인다.

 그중에서도 최근의 유행어를 활용한 건배사가 술자리에서 환영받는다. 젊은 층 사이에서는 '올해(현재)는 스튜핏! 올~해(미래)는 그레잇'이라는 건배사가 종종 나온다. 소비습관을 분석해주는 TV 프로그램 '김생민의 영수증' 속 유행어인 '그레잇(Great·위대한)!'과 '스튜핏(Stupid·어리석은)!'을 활용한 것이다. 올해보다 다가올 해가 더 좋을 거라는 의미다.

 '골프는 굿샷, 술잔은 원샷', '우리는 개고생(우리는/ 개인 고객을/ 생명의 은인처럼 모시겠습니다), '새내기'(새내기를/ 내 새끼처럼/ 기르자) 등 유머가 곁들여진 건배사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해는 특정한 정치적 환경이 있다 보니 송년회나 건배사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며 "송년회는 인간관계, 행복, 건강 등을 중심으로 소통이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이제야 정상적인 송년회 모습을 찾았다"고 말했다.

'올해는 스튜핏! 올~해는 그레잇!'…송년회 건배사 열전


 경직되고 위계적인 직장문화에 '소극적으로' 반항하는 직장인들의 건배사도 등장한다. '119'(1가지 술로/ 1차까지만 하고/9시 전에 집에 가자), '222'(2가지 술을 섞지 않고/2잔 이상 권하지 않고/ 2차는 절대 없음), '892'(8시에서/ 9시까지 끝내고/ 2차는 없다), '초가집'(초지일관/ 가자/ 집으로! 2차는 없다) 등 회식 1차 문화를 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경제불황과 맞물린 건배사로는 '명품백'(명퇴조심/ 품위유지/ 백수방지)도 있다. 또 건배 제안자가 '응답하라'를 선창하면 동석자들이 '보너스'로 화답하기도 한다. 연말 보너스를 기다리는 직장인들의 마음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술자리를 즐기자는 취지로 '환영회'(환상적이고/ 영양가 많은 신나는/ 회식 자리로)를 외치기도 한다.

 구 교수는 "건배사를 통해 1차 회식이나 보너스를 유도하는 건 경직되고 위계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직장인들의 소극적인 저항"이라며 "새해에는 원활한 소통 등 새로운 직장문화가 자리잡길 갈망하는 직장인들의 심리도 내재돼 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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