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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술" "그놈의 건배사"…송년회가 고역인 직장인들

등록 2017.12.16 12:4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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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술" "그놈의 건배사"…송년회가 고역인 직장인들

"과음에 건배사, 장기자랑까지 송년회가 스트레스"
작년 이맘때는 '촛불' 영향 자제 분위기…원상복구
"늦은 시간까지 강압적 '상사와의 시간' 부담 당연"
"구성원들 의견 반영해서 다양한 문화로 대체해야"
 
 【서울=뉴시스】 유자비 기자 =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회사에서 근무하는 김모(33) 대리는 이달 들어 연일 잡힌 연말 모임에 몸도 힘들고 머리도 지끈지끈하다.

 회사 송년회와 부서 신입직원 환영회가 하루걸러 예정돼 있는 데다 거래처들과의 송년모임까지 일정이 빼곡하게 잡혀있다. 

 김 대리는 "이기지 못할 술을 마시는 것도 고역인데 차례로 외쳐야 할 건배사와 혹시 시킬지도 모르는 장기자랑을 준비해야 하는 건 더 스트레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본격적인 송년회 시즌에 돌입하면서 직장인들의 피로감이 가중되고 있다. '부어라 마셔라' '먹고 죽자'는 식의 술판 송년회는 줄이는 추세라고 해도 윗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인들은 여전히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지난 4일 성인남녀 12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송년회를 계획하고 있다'란 응답이 68.4%로 나타났다. 지난해 조사결과(53.6%)보다 15% 포인트 상승했다. '송년회를 하지 않을 것'이란 응답은 8%에 그쳤다.

 특히 송년회에서 '술모임을 가지겠다'는 답변이 74.3%로 나타나 가장 높았다. 지난해 72.5% 비중을 차지해 1위였던 '간단한 식사'는 48.8%로 20%포인트 넘게 떨어졌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촛불집회 등 진중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왁자지껄한 모임을 자제했던 시민들이 올해 다시 송년회를 늘리며 연말 기분을 내는 것으로 풀이된다.

"맨날 술" "그놈의 건배사"…송년회가 고역인 직장인들


 하지만 상당수 직장인은 송년회 자리가 부담스럽다고 토로한다. 식사와 담소보다는 음주 중심인데다 윗사람들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건배사나 장기자랑을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참석자 전원에게 건배사를 시키는 걸 즐기는 상사들이 늘어 "그놈의 형식적인 건배사는 왜 자꾸 강요하는지 심리를 모르겠다"는 직원들이 부지기수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이모(29)씨는 토요일에 잡힌 회사 송년회에 한숨만 나온다. 주말에 개인 일정을 빼야 하는 것도 화가 나지만 상사들이 만족할 만한 건배사와 노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연말 건배사', '송년회 노래 추천'을 검색하고 있지만 적절한 게 보이지 않는다"며 "회사 송년회가 끝나면 부서 회식도 예정돼 있어서 자정은 넘겨야 집에 갈 것 같다. 1인 1건배사를 하며 마실 폭탄주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속이 쓰리다"고 털어놨다.
 
 중소기업 직원 최모(28·여)씨도 "술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계속 거절하기엔 눈치가 보여 결국에는 주량보다 과음을 하게 된다"며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것도 상사들이 고려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설문조사플랫폼 두잇서베이가 지난 6일부터 3일간 288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7송년회'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절반 이상(56.3%)이 송년회 참석에 "부담된다"고 밝혔다.

 가장 큰 이유로 '과음하는 분위기'(27.7%)가 꼽혔다.  '크고 작은 장기 자랑'과 '송년사, 신년사 등 멘트 준비 부담'을 토로하는 비중도 각각 12.9%, 7.7%를 차지했다.

 이처럼 술자리가 달갑지 않은 직장인이 늘면서 점심식사로 대체하거나 등산, 영화 관람 등 이벤트성 송년회를 추진하는 상사들도 적지는 않다.

 서울 한 식당에서 매니저를 맡고 있는 신모(41)씨는 "아내가 20~30대 직원들이 술자리를 싫어한다고 조언해 점심에 간단한 송년회를 가졌다"며 "직원들이 만족해한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송년회 아이디어를 내라는 주문을 받은 직원들은 부담이 더 커졌다는 하소연을 내놓기도 한다. 한 대기업 이모(38) 과장은 "회식으로 영화 관람을 갔다가 영화가 끝난 뒤 아쉬워하는 상사 표정에 결국 맥주를 마시러 간 적이 있다"며 "어차피 귀가는 늦어지는 게 매한가지다"라고 푸념했다.
 
 이정서 한국사회문제연구원 수석부원장은 "직장인들에게 송년회 자리는 늦은 시간까지 남아있어야 하는 상사와의 시간"이라며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술자리가 길어지고 조직문화 속성에 따라 차츰 강압적인 분위기가 돼 부담스러워진다"라고 진단했다.

 그는 "송년회는 한해 업무를 정리하며 새로운 포부와 각오를 다지는 의미 있는 화합의 장이 돼야 한다"며 "시대 변화에 발맞춰 조직 구성원들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술자리가 아닌 카페에서 차 마시기, 등산 등 다양한 문화로 대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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