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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위원장 "상봉 신청 13만명…다 만나려면 500년"

등록 2018.01.11 07: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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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가족위원장 "상봉 신청 13만명…다 만나려면 500년"


1세대 이산가족 생존자 6만명…80세 이상 62%
"가족 상봉은 보여주기 이벤트…로또 당첨 수준"
"만나도 기약없는 이별로 상실감·후유증 앓아"
"상봉보다는 생사 확인 우선시하는 합의 절실"
"민족의 아픔…'이산가족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서울=뉴시스】박영주 기자 = "1세대 이산가족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80세가 넘으신 분들이 많으신데 가족의 생사라도 알고 싶은 거죠. 만약 돌아가셨다면 제(祭)라도 지내며 인간적 도리를 다하고 싶어 하는 마음뿐입니다."

 이상철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은 11일 뉴시스와 통화에서 "이산가족 대부분이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이산가족 상봉 협의가 되지 않은 점을 안타까워했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는 고향을 북에 두고 온 실향민으로 구성된 사단법인으로 1982년에 설립됐다. 이상철 위원장은 황해도 평산 출신인 아버지가 1952년 부산 피난 당시 낳은 이산가족 2세대다. 2006년부터 12년째 위원장을 맡으면서 북한 가족들의 생사 확인과 이산가족 재결합 등을 돕고 있다. 
 
 앞서 우리 정부는 지난 9일 진행된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한 측에 2월 설 명절을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 하지만 북측은 "남북 간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원칙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풀어나가자"고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 제안에 대한 즉답을 회피한 것이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이 인도적인 차원으로 남북 경색 국면을 푸는 데 많은 기여를 했다"면서 "올해는 평창올림픽이 그 역할을 하다 보니 이산가족 상봉 문제가 뒷전이 된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이산가족들은 이번 공동합의문에 상봉 문제가 빠진 것에 대해 크게 실망은 하지 않은 듯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 2015년 10월 이후 오랜 기다림이 지속됐던 만큼 기대는 했지만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는 게 이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15년 10월까지 20차례 진행됐다. 이 가운데 성사된 건수는 4185건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이산 가족들은 나이를 먹거나 세상을 떴다. 통일부에 따르면 13만1344명(2017년 기준)의 이산가족 중 생존자는 5만9037명에 그쳤다. 90세 이상이 1만1183명(18.9%)이며 80~89세가 2만5266명이다. 생존자 중 80세 이상이 61.7%로 과반이 넘는다.

 이 위원장은 "우리가 20차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극소수"라며 "이산가족 신청한 사람이 13만명이 넘는다. 이들이 다 만나려면 500~600년이 걸린다. 어느 세월에 이산가족들이 다 만날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은 보여주기식 이벤트에 불과하다. 당사자들조차 '나한테는 순서가 오기 힘들 거야'라는 자조 섞인 생각을 많이 한다"며 "이산가족 상봉은 '로또 당첨'과 같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상봉을 경험한 이산가족들 역시 기약 없는 이별로 인한 상실감이 더 크게 다가오면서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강산=뉴시스】최동준 기자 =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이소근 씨가 시동생 박경님 씨를 만나 기뻐하고 있다. 2015.10.24.  photocdj@newsis.com

【금강산=뉴시스】최동준 기자 = 이산가족 상봉행사 2회차 첫날인 24일 북한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단체상봉에서 남측 이소근 씨가 시동생 박경님 씨를 만나 기뻐하고 있다. 2015.10.24. [email protected]


 이 위원장은 이산가족이 상봉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한 만큼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벤트성에 불과한 이산가족 상봉보다는 생사 확인이 우선시될 수 있는 남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산가족들은 만약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면 기일이라도 알아서 제사를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크다"며 "예라도 다하고 싶은 마음인 거지 70년의 세월이 흐른 만큼 굳이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접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정치적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남북 고위급정상회담을 앞두고 일각에서 흘러나왔던 북한의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가동 제안설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다.

 이 위원장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와 직결되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면서까지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할 이유는 없다"며 "북쪽이 정치적인 입장을 드러낸다고 해서 우리가 같이 호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산가족 문제는 민족의 아픔"이라며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두고 범국민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만큼 '이산가족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산가족의 날은 매년 8월12일이다. 대한적십자사가 남북의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촉진하고 남북통일의 염원하기 위해 1982년 제정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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