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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시 소년 정현, 세계 테니스 차세대 선두주자로 우뚝 서다

등록 2018.01.22 20:4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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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시 소년 정현, 세계 테니스 차세대 선두주자로 우뚝 서다

【서울=뉴시스】 오종택 기자 = 약시 치료를 위해 테니스 라켓을 쥐었던 여섯 살 소년이 세계 남자테니스 차세대 주자로 우뚝 섰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22·한체대·삼성증권 후원·58위)이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그랜드슬램 대회 8강에 올랐다.

정현은 22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4회전(16강)에서 자신의 우상인 노박 조코비치(31·세르비아·14위)를 꺾고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이형택(42·은퇴) 이후 한국 테니스의 희망으로 떠오른 정현은 매년 성장을 거듭한 끝에 세계 테니스를 이끌어갈 영건으로 주목받는 위치까지 올랐다.

심한 약시인 정현은 어린 시절 치료를 목적으로 테니스 코트에 발을 들였다. 책 대신 눈이 편안해지는 초록색을 많이 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테니스 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아들을 초록색 테니스 코트에 세웠다.

부모는 아들이 공부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건강을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정현의 피는 속일 수 없었다. 테니스 집안에서 태어난 것을 증명하듯 재미에 푹 빠지며 주니어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2008년 오렌지볼 12세부와 에디 허 인터내셔널 12세부에서 우승했다. 2011년에는 오렌지볼 16세부 정상에 올랐다. 한국 선수 중 누구도 밟지 못한 과정을 차례로 밟아 나갔다.

【멜버른=AP/뉴시스】 노박 조코비치, 정현

【멜버른=AP/뉴시스】 노박 조코비치, 정현

2013년 윔블던 주니어 남자 단식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테니스의 미래임을 증명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복식 금메달을 따며 병역 문제까지 해결한 상태다.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는 단식 금메달을 수확하며 한국 테니스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해 'ATP 서배너 챌린저' 단식 결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남자 선수로는 이형택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랭킹 100위 안에 들었다.

각급 투어 무대를 누비며 경험을 쌓은 정현은 지난해 기량이 급성장했다. 5월 독일 뮌헨 BMW 오픈 4강에 들었고, 메이저 대회인 프랑스오픈 32강에 진출했다. 9월에는 개인 최고인 랭킹 44위까지 올랐다. 이형택의 한국 선수 최고 랭킹(36위)에 근접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11월에는 차세대 테니스 황제 자리를 노리는 21세 이하 또래 라이벌들이 출동한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에서 ATP 투어 통산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 선수가 ATP 투어 대회 정상에 오른 것은 2003년 1월 시드니 인터내셔널의 이형택 이후 14년 10개월 만이다.

그리고 불과 두 달여 뒤 정현은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썼다. 한국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대회 16강에 올랐다. 현재 58위인 세계랭킹도 이번 대회를 통해 역대 최고로 경신 가능할 전망이다.

신장 188㎝ 체중 87㎏의 좋은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테니스를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약점을 안고 있다. 고도 근시와 난시로 교정 시력이 0.6 미만이다. 일반인이 쓰면 빙글빙글 도는 두꺼운 안경을 써야만 한다. 안경 없이는 생활이 힘들 정도다.

약시 소년 정현, 세계 테니스 차세대 선두주자로 우뚝 서다

움직임이 격렬한 운동인 테니스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실내건 야외건, 조명이 있든 없든 코트 환경에 관계없이 고글을 꼭 써야 한다.

테니스 선수 중 고글을 착용하는 선수는 드물다. 고글을 쓴다고 해도 대부분이 보호 목적이거나 주간 경기일 때 눈부심을 막기 위한 용도다.

정현은 경기 중 땀을 닦기 위해 고글을 수백번 썼다 벗었다를 반복하는 불편 속에서도 모든 것을 실력으로 극복했다. 고글을 벗고 땀을 훔치는 모습은 어느덧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정현의 한걸음 한걸음은 한국 테니스의 역사다. 고글 속 그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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