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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종로 여관 참사…가난해서 위험한 사람들

등록 2018.01.25 18:29:24수정 2018.01.30 09:4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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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채윤태 기자 = 방학을 맞아 서울 여행을 왔다가 '저렴한 숙소'를 찾았던 세 모녀, 청계천 맞춤정장 '미싱 시다', 저소득층 장기 투숙자.

 지난 20일 새벽 3시께 술에 취해 여관 주인에게 성매매 여성을 불러달라고 하다 거절당한 유모(35·구속)씨가 '홧김'에 지른 불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이다.

 부인과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희생자 김모(55)씨의 사촌형 김모(64)씨는 "여관에서 잔 사람들은 다 형편이 어려운 이들이었다. 살아보려고 아등바등한 서민들에게 관심을 둬달라"고 호소했다. 왜 종로 여관 참변은 서민, 빈곤층에게 찾아왔을까?

 서울장여관은 남녀노소 누구나 묵고 가는 숙박시설은 아니었다. 주민들 말처럼 까맣게 타버린 이 '서울장여관'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저소득층이었다. 서울장여관은 하루 1만5000원~2만원, 한 달에 보증금 없이 45만원을 내고 잘 수 있는 이른바 '달방'이었다.

 저렴한 만큼 방은 단출하다. 서울장여관 객실은 한 방이 6.6~10㎡(2~3평) 정도 크기에 불과하다. 각 객실에는 최소 크기의 욕실이 달려있다. 인근 주민들도 "저렴한 쪽방"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 방에는 침대조차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문제는 편의시설은 물론 기본적인 안전설비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으며, 비상구마저 자물쇠로 잠겨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유일한 출구였던 정문에는 유씨가 붙인 휘발유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새벽 3시께 깊이 잠들어있던 투숙객들을 깨울 수 있는 화재경보벨이 설치돼 있긴 했지만, 생존자들에 따르면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고장나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현행법상 전체면적 600㎡ 미만 소규모 숙박시설이나 소방시설법이 시행된 2004년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소방법을 적용받지 않는다. 서울장여관은 1964년 사용 승인이 난 건물로 50년도 넘은 건물이기 때문에 소방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따라서 서울장여관은 몹시 노후한 상태였음에도 스프링클러, 화재경보장치, 비상구 설치 등의 소방안전시설 설치 의무가 없었다. 게다가 소방안전점검을 정기적으로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0명의 투숙자 중 유일하게 "불이야"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깬 최모(53)씨는 탈출할 길이 없어 결국 2층 창을 넘어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낙하 충격으로 발꿈치와 허리 등에 골절상을 입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서울장여관보다 2~3만원 비싼, 시내 웬만한 모텔에서 방화 또는 화재가 일어났다면 이렇게 큰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재경보벨이 울렸을 것이고, 투숙객들은 잠에서 깨 비상계단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서울장여관은 오래됐다는 이유, 작다는 이유로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나아가 희생자들은 결국 '가난해서, 여비가 넉넉지 않아서' 참사의 희생자가 된 셈이다.

 사망한 김씨의 사촌형은 "사건사고는 언제나 발생할 수 있지만 인재를 최대한 막는 게 국가의 일이다.  숙박업소에 스프링클러가 있어야지, 옛날 건물이라도 비상구를 만들어둬야지…"라고 탄식했다.

 소방법의 허점이 이번에 처음으로 드러난 것은 물론 아니다. 전통시장 화재, 달동네 화재는 끊임없이 연례 행사처럼 일어난다.

 정부나 지자체 담당자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현상일까. 매번 개선하겠다, 개정하겠다는 약속을 되풀이하더라도 '가난할 수록 더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는 비극적 명제를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가난할 수록 더 보호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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